지난 3월 16일 한일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배상 방안을 밝히면서 강제동원 과거사 해결 문제가 초미의 국민 관심사로 떠올랐다. 과연 일제강점기 말기 징병과 징용 등 강제동원으로 끌려간 우리 지역 피해자는 얼마나 될까? 지역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기록은 있는가?
일제는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여 국가총동원체제로 개편하고,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인을 강제동원하였다. 2004년 강제동원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 청원자료에 의하면, 국내 지역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남양군도 등에 총 787만9,708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강제동원은 노동자와 군속, 근로보국대, 근로정신대 등 징용 노무동원, 징병을 통한 병력동원, 위안부 등 성동원으로 구분한다.
일본은 고의적으로 관련자료를 없애는 등 정확한 자료를 내놓지 않아 강제동원 피해자 규모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700여만명은 중복된 숫자로 실제 피해자가 200만명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1940년 조선인 인구를 2천6만여명으로 보면, 당시 한국인 13명 중 1명이 강제동원 피해를 입은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가기록원이 구축한 <강제동원자 명부(https://theme.archives. go.kr)>에는 총 168만5,732명이 등재되어 있는데, 중복 등재된 명단을 제외하면 118만1,984명이다. 이 명부는 전체 피해자의 일부일 뿐이다.
현재 <강제동원자 명부>에는 본적지 기준으로 양양군 2,031명, 속초시 8명, 고성군 1,450명, 간성군 8명 등 총 3,497명이 등재되어 있다. 이 중에는 중복된 이름이 다수 있다. 강제동원 피해가 발생한 1940년대를 기준으로 양양군은 속초시와 고성군 토성면, 죽왕면을 포함한 지역이며, 고성군은 분단으로 갈린 남북 고성군을 모두 포함한 지역이다. 이 명부에는 1957년 우리 정부가 피해 신고를 받아 작성한 <왜정시피징용자명부(倭政時被徵用者名簿)>가 포함되어 있다. 해방과 전쟁 후인 1954년 정식으로 대한민국에 편입된 양양·고성지역은 타 지역에 비해 강제동원 피해 신고가 적을 수밖에 없다.
<강제동원자 명부>에는 우리 지역 강제동원 피해 사망자가 다수 확인된다. 일본은 해방 후부터 지난 2019년까지 모두 17차례에 거쳐 군인·군속 등에 강제동원된 한국인 유골 2,409위를 봉환했다. 민간단체를 통해 강제동원된 노무자 등에 대한 유골 봉환도 50차례 이뤄졌는데, 약 2,600여위로 추정된다. 정부기관을 통해 유골봉환이 이뤄진 강제동원 사망자는 양양군 12명, 속초시 6명, 고성군 4명이 확인된다. 특히 양양군 유골봉환은 강현면에 집중되어 있는데, 석교리 마을이 7명이다. 명부에 나오는 사망자는 속초를 포함한 양양군 340명, 고성군 159명으로 주로 군인과 군속으로 나온다. 이들 사망자는 중복 기재된 경우가 많아 실제 사망자는 대폭 줄어든다.
양양군민 31명 남양군도 팔렐리우섬에서 희생 당해
전쟁터에 강제동원된 한국인 노무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여주는 사진. 밀리 환초에서 일본군에게 반란을 일으킨 한인노무자 193명 중 살아남은 68명 중 일부가 미군이 제공한 보트를 타고 있다. 사진 설명에는 ‘한국인 노예 노동자(Korans members of slave laborers)’라고 적혀 있다. 미국문서기록관리청 공개 사진.
강제동원 피해 사망자 중에는 격전지인 태평양 일대에서 사망한 이들이 가장 많다.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태평양 일대, 남양군도 등에 강제동원되었다. 1957년 피해자 신고를 받아 정부가 작성한 <왜정시 피징용자명부>에는 양양 출신 중에 남양, 남양군도, 남양군도비행장, 남양싱가폴, 남양도라크섬, 남양싸이판조선소, 하와이철공장 등 태평양 일대로 동원되었다는 피해자가 30명에 이른다. 이중 남양도라크섬과 조선소로 끌려갔다는 피해자만 7명이다. 도라크섬에서 사망한 양양 사람까지 합하면 모두 10명에 이른다.
1971년 일본으로부터 제공받은 <피징용사망자연명부>에는 강제동원되어 사망한 한국인 2만1,692명이 등재되어 있다. 여기에 양양군 출신 61명, 고성군 출신 35명이 사망자로 등재되어 있는데, 96명 대부분이 군에 고용된 노무자인 군속으로 주로 남양군도와 필리핀 등 태평양 일대에서 사망했다. 1957년 집계한 태평양 일대 노무강제동원 피해자 신고가 사망자수보다 훨씬 적은 걸 보면, 양양군에서 강제동원 피해 신고가 많이 누락되었다.
명부를 살펴보면 양양군 피징용자 31명이 남양페리류섬에서 한꺼번에 사망했다. 사망자는 모두 20대 청년으로 군인이 아니라 군노무자인 군속이다. 남양페리류섬에서 사망한 한국인 270명 중에 강원도 출신이 98명이며, 이중 횡성군 33명, 양양군 31명, 금화군 17명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양양군 31명 중에는 속초읍 속초리 출신이 7명으로 가장 많다.
남양 페리류섬은 필리핀 남쪽에 있는 국가 팔라우의 펠렐리우(Peleliu)섬이다. 태평양전쟁 때 ‘펠렐리우전투’라고 미군과 일본군이 두 달 반 동안 치열한 격전을 벌인 곳으로 일본군 1만명이 사망했고 미군도 6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일본은 이 섬에 비행장을 건설하는데 한국인 노무자 500명을 동원했다. 노무자들은 비행장만이 아니라 군사시설을 구축하는데 동원되었으며, 전투 중에 고립된 섬에서 미군 공격으로 사망하거나 열악한 식량 사정으로 굶주려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양양 군노무자 37명 남양필리핀에서 포로로 붙잡혀
또한 고성군 출신 7명과 양양군 출신 3명이 남양트루크(도라크) 섬에서 사망했다. 남양트루크(truck)는 태평양 캐롤라인제도 미크로네시아의 섬이다. 트루크섬에는 조선소가 있어 한국인이 많이 강제동원되었는데, 이곳에서 사망한 한국인 군노무자 281명 중 강원도 출신이 69명에 이른다. 필리핀 루손섬, 민다나오섬과 사마르섬, 메로욘군도, 괌, 길버트 다라와섬, 뉴기니섬, 유황섬(이오섬), 바시해협 등 태평양 일대에서도 양양 출신 군노무자들이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남양군도 일대에 강제동원된 군속은 군 소속은 명분일 뿐 노예나 다름없는 강제노역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미군이 기록한 문서와 사진에 의하면, 1945년 3월 태평양 밀리환초섬에서 한국인 군속 노무자 193명이 강제노역과 식량난에 반란을 일으켜 일본군에게 집단학살 당하고 68명이 미군에 의해 구조되었다. 태평양 일대에 끌려가 노예노동에 시달리고 간신히 살아난 노무자들은 다시 미군 포로가 되어 일부는 전범으로 몰려 처형되고 징역형을 살기도 했다.
미군이 작성한 포로명부인 <부로명부>에도 양양군 출신 37명이 남양필리핀에서 체포된 걸로 나온다. 남양군도 등에서 미군 포로가 된 한국인들이 하와이 수용소에서 만든 <자유한인보>에도 양양출신 포로 13명의 이름이 나온다. 이들 대부분은 군인이 아닌 군노무자로 확인된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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