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1학년이었던 1972년, 그해 여름방학에는 2박 3일 일정으로 음악 캠프를 갔다. 장소는 낙산해수욕장이었는데, 클라리넷, 테너색소폰, 트럼펫, 드럼 등 악기도 몇 가지 챙겨갔다.
선배 형들 식사 당번은 1학년 후배들이 담당했고, 선배 형들은 저녁에 백사장 연주회를 담당했다. 3학년 선배 형들의 저녁 백사장 즉석 연주회는 정말 인기가 좋았다. 특히 악장 허승훈 형의 트럼펫 연주에 많은 피서객이 몰려들어 뜨거운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 연주에 대한 답례로 다음 날 아침, 관악부 텐트 안으로 많은 부식이 들어왔다. 피서객들은 우리 관악부가 좀 더 놀다가 갔으면 했다. 그 음악 캠프는 지금도 정말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학교로 돌아와서는 시내 퍼레이드 행사에 대비해서 제식 훈련도 했다. 당시는 모든 학교가 학생 군사교육인 교련(敎鍊) 수업을 받을 때였는데, 그게 관악부 제식 훈련에 는 도움이 되었다.
학교 특별활동 부서 간 친선 축구시합도 했다. 친선 경기였지만 우리 관악부는 자존심을 걸고 사력을 다해 경기를 하곤 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승패에 관계없이 중국음식점에 가서 단합 회식을 했다. 회식비가 모자라면 손목시계를 맡겨놓기도 했고, 회식 다음 날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기도 했다.
학년 말에는 선배 형들을 위한 송별회도 했다.
1973년, 19회 선배 형들 졸업식은 제일극장(그 극장 자리가 지금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음)에서 치러졌다. 졸업식에서 악장 허승훈 형은 특기상을 수상했다.
속초고 관악부가 한때 문을 닫게 된 사연
그런데 그 19회 졸업식을 끝으로 관악부 활동이 중단된다. 관악부를 통해 악기도 배우고, 아주 다양한 현장 체험도 하고, 많은 추억도 쌓았던 필자로서는 정말 너무나 안타까웠다.
23회 임수철 후배의 글 <우리 지역 관악부 이야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2회 후배가 입학했던 1973년부터, 23회 후배가 입학했던 1974년 7월 중순 무렵까지 약 1년 반 동안이었다.
그렇게 관악부 활동이 중단되자, 관악부를 학교에서 폐지한 것으로 소문이 났다. 음악 선생님도 없는 관악부이다 보니 제대로 된 음악 지도도 어렵고, 거기에 관악부원들 생활 지도도 어려워 학교에서 부득이 폐지를 했다고 소문이 난 것이다. 그래서 이미 졸업한 관악부 선배들도 그 소문이 사실인 것처럼 믿게 되었고, 그런 선배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임수철 후배를 비롯하여 대다수 23회 후배들도 학교 방침에 의해 관악부가 폐지된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속초고 관악부는 폐지된 게 아니다. 그냥 활동이 일정 기간 동안 중지된 것이다. 필자는 그 일을 직접 겪은 당사자이기에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증언할 수 있다.
속초고 관악부가 1년 반 동안 활동이 중지된 구체적 내막은 이러하다.
먼저, 관악부 19회 선배들이 후임 악장을 선임하지 않고 학교를 떠났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후임 악장 후보 대상인 20회 선배는 2명밖에 없었다. 사실은 이게 더 큰 문제였다. 선배들이 후임 악장을 선임하지 않으면 후배들이 선거나 추대를 통해 악장을 뽑으면 된다. 그런데 관악부에 20회 선배가 고작 2명뿐. 그러니까 관악부 전체의 연주력에 아주 큰 구멍이 생긴 것이다. 운동부로 말하자면, 주전 선수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 경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런 데다가 2명뿐인 20회 선배들마저 관악부 활동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면 이제 2학년이 된 21회 동기들이라도 적극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적극적이기는커녕 더 소극적이 되었다. 학교 공부를 이유로 활동을 거의 접은 동기도 있었고, 심지어 자퇴나 휴학을 했던 동기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신입 부원 선발은 감히 엄두도 못 내게 되었다. 그 바람에 22회 후배들은 단 한 명도 입단하지 못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그게 100% 우리 동기들 잘못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관악부는 선배들의 입단 권유로만 들어올 수 있는 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본인의 희망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입단이 가능하다. 오히려 자원 입단자가 부원으로서는 더 적합하다. 공부에서도 자기 주도 학습이 가장 바람직하듯이. 23회 후배들의 경우가 그렇다. 23회 부원들은 거의 대부분이 자원 입단자들이었다.(22회 때와는 관악부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연주력과 통솔력이 아주 뛰어났던 허승훈 선배나 이남익 선배 같은 우수 부원들은 모두 졸업을 하고, 그 뒤를 이을 만한 3학년 선배들은 없고, 관악부 경력 1년밖에 안 된 우리 동기들은 악장도 없는 상황에서 우왕좌왕했고, 거기에 1년 후배 신입 부원들마저 없다 보니 관악부 활동이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라떼 관악부는 흡연율보다는 진학률이 훨씬 더
관악부에 대한 또 한 가지 오해가 있다. 관악부는 흡연율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23회 후배들 이후에는 어땠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가 관악부에서 활동할 무렵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때 관악부원들은 모범생과 성적 우수자들이 많았다. 속초고 관악부의 전설, 속초고 관악부 역사상 가장 카리스마가 강했던 18회 박태이 선배만 하더라도 아주 엄한 교육자 집안에서 자랐고, 어머니와 본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19회, 20회 선배들이 그런 모범생 박태이 형 직속 후배들이었으니 당시 관악부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충분히 짐작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1학년 관악부원일 때 연습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부원들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일부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우더라도 연습 장소가 아닌 딴 곳에서 피웠다.
담배와 관련하여 선배 형들한테 이런 말을 들은 적은 있다.
“악기들이 워낙 낡아서 불다 보면 어딘가 바람이 새는 느낌이 날 때가 있어. 그런 땐 담배 연기를 악기 속에 불어넣으면 새는 부위를 찾아낼 수가 있지!”
결론적으로, 당시 관악부원들의 흡연율은 학교 평균 흡연율에 비해 아주 낮은 편이었다. 반면에 대학 진학률은 평균 진학률에 비해 많이 높았다. 요즘은 대학 진학률이 70~80%나 된다고 한다. 하지만 1970년대는 10%도 채 안 되었다.(그때는 대학 입학정원도 워낙 적었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관악부원들의 대학 진학률은 이보다 몇 배는 더 높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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