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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는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도시였다
역사, 기록으로 보는 속초지역의 이모저모<상>
등록날짜 [ 2023년03월06일 10시00분 ]

속초시는 1963년 1월 1일자로 시(市)가 되었다. 올해는 시 승격 60년이 되는 해로 속초시민의 한사람으로 감개가 무량하다. 
 흔히들 사람들은 속초는 먹고살기 바쁜 곳으로 이렇다 할 역사와 문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속초의 유구한 역사를 우리가 알지 못해서 그렇지 자랑할 것이 너무나 많다.
‘시 승격 6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를 맞이하여 속초시민으로 살아가면서 잠시 잊어버린 속초역사에 대해 시대별로 일어난 일들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발굴, 발견되었다 등은 그 당시 사람들이 살았다는 의미와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속초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에는 찬란한 불교문화를 펼친 곳이었으며, 고려시대에는 중요한 군사기지(속초리성지), 조선시대 또한 중요한 군사기지(속초포)로서 그 역할을 다했으며, 일제강점기 들어와 청초호를 전쟁물자 제조에 필요한 양양 철광석 운반을 위한 항으로 개발, 이후 속초리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이북에서 피난 나온 실향민들의 선진 어업기술과 속초 원주민들의 자본을 바탕으로 어업이 크게 발전하였으며, 1970년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속초는 관광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오늘날 살기 좋은 도시에 이르렀다.
■선사시대
 속초지역의 구석기는 지난 2015년 청호동 433-19번지 일원의 공동주택 건설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약 2만여 년 전의 후기 구석기 문화유적을 발굴하였으며, 특히 이 지역에서는 각종 석기 제작을 위한 모루나 망치 등이 발견되어 ‘석기제작소(석기제작공장)’가 존재하였음을 발견했다. 
 신석기유적은 현재 외옹치 롯데리조트가 있는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는 적군의 침입 시 그 사실을 서울(한양)까지 알리기 위한 덕산봉수(德山烽燧)라는 봉수대(烽燧臺)가 있던 곳으로 B.C.5500여 년 전의 빗살무늬 토기 등 신석기 유물이 발견되었다.
 우리지역의 청동기 시대 유적은 조양동 선사유적지(B.C. 700~B.C.800)가 유명한데, 이 유적의 경우 북방인류가 한반도 동해안을 거쳐 이동했음을 알려주는 ‘청동도끼’가 발견되어 보통 지방사적으로 지정되는 유적지가 1992년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그 역사적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상위 지표층 위에서는 15기의 철기시대 움집터와 85기의 유구(흔적), 329점의 철기시대 토기들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철기시대 ‘동예(東濊)’라는 군장국가와 예족(濊族)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영토 확장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던 삼국시대에는 속초지역은 고구려 영역에 포함되었다가 신라 영역에 포함되었다. 
  신라 진덕여왕 6년(652년), 자장율사(590~658)가 현재의 켄싱턴호텔 자리에 ‘향성사(香城寺)’를 창건하였다. 
하지만 신라 효소왕 7년(698)에 향성사와 능인암이 모두 불타 버려, 효소왕 10년(701)에 의상대사가 능인암(현재의 내원암) 자리에 절을 다시 짓고 이름을 ‘선정사(禪定寺)’라 하였다.
  650년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당나라 유학을 가는 길에 양양 강선리에서 어느 신선이 설악산 가는 길을 물어 이곳이 도문리(道門里, 깨달음의 문이 열린 곳)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신라 효소왕(692~702) 때에 신라 화랑 영랑이 금강산에서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름다운 호수를 발견하고는 그 경치에 감탄하여 수일간 머물고 떠났다는 그 호수가 ‘영랑호(永郞湖)’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 한 번도 그 이름이 변하지 않았다.
■고려시대
  속초시 동명동 365-13번지(시외버스터미널~속초감리교회 중간)에 고려시대성터가 발견되었다. 천경3년(요나라 연호, 고려 예종, 서기 1113년)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명문기와가 발견되었는데, 그 당시 동해안을 자주 침범한 여진족과 왜구에 대비하기 위해서 축성되었다.  
  1309년(충선왕 1년) 고성 삼일포에서 양양부사(襄陽副使) 박전 등 각 지역 군수, 부사 등 이 모여 부처님의 자비로 세상을 구휼하기 위해 각 지역에 향나무를 심었는데, 양양 덕산망(德山望, 지금의 외옹치 정상)에 200그루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330년(충혜왕 시기)에 안축(安軸)이라는 강릉도 존무사(지금의 도지사)가 영랑호를 방문하여 아름다운 시를 남겼고, 영랑호가 이후 거의 모든 시인과 선비들이 찾는 유명한 곳이 되었다. 
노학동 무당골에는 소림사로 추정되는 절터가 있는데 고려 중기로 추정되는 사방불(4면에 부처님을 조작)을 조각한 3층 석탑이 발견되었다.
 1980년대 후반 교동 택지(아남플라자~삼환아파트)를 개발하면서 고분(古墳, 옛날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14세기 말로 추정되는 섬세한 기술의 청자그릇(청자상감우점문완)과 청동수저가 발견되었다.  
조선 후기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의 설명서 격인《대동지지》에는 청초호에 수군만호가 있는데 고려 때부터 운영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동해안에 수군기지 6곳이 있는데 그중 하나로 양양북쪽에 ‘속초포’가 있다고 했는데, 속초라는 지명이 나타난 현존하는 최초의 기록이다.
 향성사의 후신인 선정사는 900여 년 그 자리를 지켜오다가 조선시대인 인조 20년(1642)에 화재가 나서 완전히 소실되고 만다. 이에 인조 22년(1644)에 영서(靈瑞), 혜원(惠元), 연옥(蓮玉) 등이 선정사 아래쪽에 절을 짓기 시작하여 1649년에 완성하였는데, 이름을 신흥사(神興寺)라고 하였다.
 1530년에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청초호가 ‘쌍성호(雙城湖)’라고 기록되어 있다. 1757년에 완성된 《여지도서》에는 청초호가 ‘쌍성호(雙成湖)’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청초호는 속사호, 속진호, 술랑포, 쌍성호, 논뫼호 등 다양하게 불렸는데, 청초호 호수 위에 투영되는 설악산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조선 영조 때 화가 김홍도가 영랑호를 그린 산수화를 남겼다.
 《여지도서》에는 속초지역의 마을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소천면(所川面)에 속진리(175명 거주), 속초리(281명), 논산리(97명), 부월포리(86명)가 있었고, 도문면(道門面)에는 장항리(승려 49명), 도문리(192명), 내물치리(52명), 대포리(104명), 외옹치리(238명)가 있다.
■일제강점기
  1914년 일본은 속초지역의 면인 도문면과 소천면을 도천면(道川面)으로 통합하였다.
  1919년 4월 5일 물치장날을 기하여 도문리, 대포리, 부월리와 논산리 등의 사람들이 면사무소(현 중도문 노인회관)에서 모여, 대포리에 있던 일본 순사주재소 앞까지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는데, 이에 놀란 일본 순사들은 가족들을 배에 태워 바다에 띄우고는 ‘만세만 부르고 돌아가 달라’하며 애원하였다.
  1937년 12월 1일 양양~원산간 동해북부선이 개통되었다.
  1937년 7월 1일  ‘도천면’을 ‘속초면(束草面)’으로 개칭하고 ‘속초리’를 ‘속초 1구~4구’로 분리하여 ‘구제(區制)’를 실시하였다.
  1941년 11월 속초시장 뒤편 7만여평의 부지에 속초공설운동장이 건립되었다.
  1942년 10월 1일 부령(府令) 제104호로 ‘속초면’이 ‘속초읍(束草邑)’이 되었다.
인공시대
  1945년 8월 24일 일제강점에서 해방된 기쁨도 잠시 38선 이북지역이 북한지역으로 편입되면서 ‘속초면(束草面)’으로 격하되었고, 소련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미쳐 일본으로 피신하지 못한 일본인들은 영랑심상소학교(지금의 의료원 뒤 원각사)에 수용되었는데 소련군들이 일본 여성들을 겁탈하는 것을 속초사람들이 막았다고 한다.
 38선 이북에 포함된 속초지역에서는 호림유격부대, 이름없는 용사 등 수많은 열사들이 공산정권에 항거하며 목숨을 바쳤다.
 ■한국전쟁 이후
○1951년 8월 18일 남한지역으로 편입되면서 군정(軍政)이 실시되었으며, 군정사령부를 속초에 설치하였고, 속초면이 ‘속초읍’으로 다시 승격.
○1953년 12월 17일 수복 이후 최대 화재 발생. 속초읍 3구와 4구 전소. 피해액 약 560여만원. 김법린 문교부장관 등 문교부 관계자 수복지구 교육, 문화시찰차 래방.
○1954년 11월 8일 2만여명의 양양주민들이 대포리 비행장에서 수복지구 행정권 정부이양 촉구 민중대회 개최. 이승만 대통령, 손원일 국방장관, 백선엽 육군참모총장 참석. 이승만 대통령 “조속한 시일내 수복지구 행정을 정부가 이양받는 데 대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연설. 이형근 국군 제1군단장, 최규각 강원도지사 등도 참석.
○1954년 11월 17일 법률 제350호 ‘수복지구 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유엔군 사령부, 한국정부에 양양군 행정권 이양. 양양군수에 김주혁씨 임명. 민정이양 당시 속초읍의 행정구역은 16개리로 속초리, 부월리, 온정리, 논산리, 청대리, 노리, 도리원리, 이목리, 척산리, 대포리, 외옹치리, 내물치리, 상도문리, 중도문리, 하도문리, 장항리로 구성.
○1959년 속초의 어획고가 부산 다음으로 전국 2위를 기록.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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