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 거진읍 거진9리 원진선(61, 사진) 이장을 만나러 간 지난 15일, 연이틀 눈이 내려 간선도로와 시내 주요 연결도로에는 눈이 꽤 쌓여 있었다. 시내를 거쳐 푸른고개길에 도착했을 때, 지대가 높은 언덕길임에도 이상하게도 도로에 눈이 보이지 않았다.
제설작업을 마치고 몸을 녹이고 있던 원 이장이 반갑게 맞아줬다. 연이은 제설작업으로 힘들 법도 한데 모습은 생기에 차 있고 표정은 밝았다.
원 이장은 “거진 9리는 산을 깎아 이주해 만든 마을이라 길은 경사가 가팔라 제설작업 하기가 힘든 곳”이라며 “주민들과 소통해 골목길에 주차한 차를 모두 이동 주차시키고 장비를 동원해 한꺼번에 치웠기 때문에 도로에 눈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호강하는 이장”
원 이장은 307가구 6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을 거의 매일 돌며 알뜰살뜰 살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민들의 사소한 일까지 참견하고 끼어들기 일쑤지만 동네 주민 누구 하나 눈살을 찌푸리거나 타박하는 이가 없다.
“거진 9리는 특히 독거노인 가구가 많아요. 그래서 어르신들에 대한 걱정이 더 큰 것 같아요. 자식은 있지만 외롭게 사시는 어르신이 많아 건강이 걱정돼 자주 찾다보니 집안 사정을 훤히 알게 되고 하소연 듣는 게 제 몫이 됐지요.”
그는 힘들지만 “매일 점심때가 되면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으로 밥 먹으러 오라고 성화다”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호강하는 이장”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원 이장은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해결사다. 독거노인 모시고 병원 가기, 집수리, 전등 교체, 하수도 고장 민원을 손수 해결한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부인인 장금순(52) 씨가 정기적으로 목욕탕에 모시고 간다. 지난해 8월경에는 무연고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화장을 하고 납골당에 모셨다. 할머니의 집안정리도 그가 맡아 처리했다.
그는 본인의 사무실을 동네 사랑방으로 내어놓았다. 시니어클럽 어르신들이 외부에서 일을 하다가 추우면 언제든지 사무실에 들어와 몸도 녹이고 차도 마신다.
좌충우돌 동네를 누비고 다니며 하나하나 참견과 간섭하는 원 이장은 ‘동네머슴’, ‘발발이’, ‘아저씨’ 등 따라붙는 수식어가 많다. 이미 동네 스타다. 이날 만난 동네 주민인 A 씨는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이장을 모르면 진짜 간첩”이라고 말했다.
원 이장은 마을의 주거환경개선에도 전력을 쏟았다. 거진9리 가운데 ‘68해일’ 피해자들의 구호주택이 밀집한 곳은 지난 2015년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가 공모한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새뜰마을사업)’에 선정돼 2018년까지 총 45억5,100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주택정비와 둘레길 조성, 소방도로 개설, 소공원 조성 등을 추진해 생활여건이 크게 개선됐다.
또 마을에서 공설운동장으로 통하는 500m 길이의 소방도로를 확·포장하고, 축협마트 앞 보건지소 자리에 대형 주차장을 조성했다. 화재가옥을 정리하고, 마을 둘레길 등의 수목제거 작업을 펼쳤다. 원 이장은 고성지역자활센터 지역재생(벽화)사업단과 함께 벽화마을 조성사업에도 앞장섰다.
그는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각별하게 신경을 쓰고 있다. 거진지역에서 유일하게 경로당(마을회관) 출입문을 자동문으로 교체했으며, 화장실 변기를 교체하고 바닥 타일도 무료로 시공했다.
생업보다 마을·주민 위해 바쁜 나날
원 이장은 죽왕면 구성리에서 태어났고 거진초·중, 거진공고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에서 타일공으로 일했고, 30여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2019년부터 거진9리 이장을 맡고 있다. 현재 고성타일을 운영하며 고향을 지키고 있는 그는 생업보다 마을 안위를 돌보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작년 12월에는 도지사 표창을 받았고 2021년에는 고성군수 표창, 2020년에는 강원도이장단협회에서 모범이장상을 받았다.
원 이장은 부친을 일찍 여의고 자수성가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어려운 이웃을 보면 본능적으로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명랑봉사단’ 회원으로 봉사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원 이장은 “저보다 더 젊고 활기찬 이장감을 키우는 것이 꿈”이라며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주민을 위해 노력하는 이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성낙규 기자 nk_22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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