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의 눈이 이럴까. 전날의 피로함도 없이 마을 돌담길을 걸으며 예리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기와지붕의 변천사, 담장 너머 손을 내민 나뭇가지의 내력, 학무정 옆 비석 뽑힌 자리에 대한 의문이 쉴 새 없이 날아왔다. 마을살이보다 못한 것이 마을을 기획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이라고 들었다. 아닐 수도 있다. 마을살이는 익숙한만큼 때때로 소중함을 놓친다. 낯선 관찰자의 호기심이 특정 부분에 조명을 비추며 가치를 드러낼 때가 있는 것이다. ‘2016 지역문화경영과정’이 그랬다.
상도문 마을자원을 콘텐츠로 개발
‘2016 지역문화경영과정’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매년 전국의 문화원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인력 양성과정이다. 다양한 문화기획의 사례 공유와 인력 네트워크를 통해 각 문화원의 문제점을 해결하며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마련된 자리이다. 올해는 ‘속초 도문농요전수관’에서 지난 8월 22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되었다.
올해 과정은 예년과 달랐다. 지역문화자원을 활용한 현장 밀착형 교육을 통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교육 참가자 30명이 상도문 마을의 문화자원을 배우고, 마을탐방을 통해 콘텐츠를 직접 개발하는 과정이 교육의 전부였다.
한국문화원연합회 김태현 연구홍보팀장은 “처음 시도여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참가자들이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을 통해 얻는 것이 많은 과정이길 바란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3박 4일간 참가자들은 상도문 마을을 다양한 관점에서 탐구했다. 첫날은 오리엔테이션과 김영현 유알아트 대표의 ‘생존본능을 일깨우는 마을학교’ 강의에 이어 속초시와 상도문 마을의 문화자원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본격적인 활동은 둘째날부터였다. 오전에 마을통장과 함께 마을을 둘러본 후 마을의 자원을 활용한 콘텐츠 개발을 시작했다. 총 30명의 참가자가 3개조로 나뉘어 각자가 바라본 상도문 마을의 자원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한 후 실행가능한 계획을 만들었다.
매곡일기 등 활용, 음악회에 민박까지
마지막 날 3개조가 발표의 시간을 가졌다. 1조는 상도문 마을을 인문지리, 학문, 생활문화공간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인문지리적 관점에 의해 마을 이름을 “메나리가 들리는 행주석범 마을”로 제안했다. 배를 닮은 마을 모양, 수해 때 돌로 닻을 만들어 마을 입구에 쌓은 ‘행주석범’을 스토리텔링했다. 학문적 관점에서는 매곡 오윤환 선생의 매곡일기를 청소년의 자유학기제와 연동한 전략을 제안했다. 생활문화 관점에서는 속초 도문농요전수관과 학무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업을 선보였다. 솔숲 유원지에 학무정의 모조를 건립하여 시낭송대회나 음악회 등을 개최하고, 매곡 백일장, 메나리 이야기 다방, 매곡 선생 일대기 뮤지컬 제작이다.
2조와 3조는 마을의 문제를 소득창출로 연결할 수 있는 ‘민박’에 초점을 맞췄다. 개별 가구마다 과거에 시도한 민박이 지금은 거의 활성화 되지 않은 현실을 반영했다. 2조는 마을의 고즈넉함과 매곡 오윤환 선생의 매곡일기 등의 인문자산을 활용한 ‘힐링 스테이’를 제안했다. 유휴공간을 추억공간, 창작스튜디어 등으로 활용하고, 매곡일기의 정신을 살려 민박마다 편지지와 일기를 쓸 수 있도록 배치하는 것이다.
3조는 청년문제와 민박을 연계시켰다. 전주 남부시장의 청년몰처럼 청년의 아이디어와 특기가 마을과 융합할 수 있는 시스템의 조성을 제안했다. 3조의 경우 살아 있는 마을지도의 작성을 위해 전수관의 전수실 방 한칸을 창의적으로 활용했다. 주방 싱크대는 마을 성황당으로, 옷장은 청년들이 마을주민과 함께 만드는 ‘문화달장’으로, 방바닥은 마을의 특성을 보여주는 입체지도로 표현하여 발표의 창의성을 높였다.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마을의 자원을 콘텐츠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다양한 환경의 문화원 직원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결과물 도출을 위해 협력하는 과정 그 자체가 자양분이 될 수 있는 사업이었다. 처음 시도의 결과보다 내년 사업의 설레임이 큰 이유다. 이같은 과정 중심의 방법론은 향후 속초의 다른 마을문제 해결방안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최근처럼 속초 개발에 대한 주민의 다양한 의견이 표출될 때 이번 워크숍의 기회정신은 더욱 큰 결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김인섭 속초문화원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속초도문농요 공연 시연 후 워크숍 참가자들과 보존회 회원이 기념촬영을 했다.
교육 참가자는 3개 조로 나뉘어 마을 활성화를 위한 마을자원 콘텐츠 기획 발표를 하였다. 사진은 1등을 한 조의 작품.
주방 싱크대를 마을 성황당으로 만든 3조의 작품. 전수관 공간의 활용에 대한 발칙한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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