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결과는 좀 더 평등해야 한다. 한 사회와 공동체의 조직 원리로 정의를 말하는 한, 임금, 소득과 재산, 교육의 기회, 행복이 그 사람의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의사나 능력과는 관계없이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결정되는 부모 등 가족, 출생지역 등 귀속지위에 의해 결정되는 신분이나 지위 등은 공정하지 못하다. 모두가 골고루 좀 더 나은 삶을 사는 정의로운 공동체가 되려면 공정성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와 이를 통한 사회적 타협, 특히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개선하려는 제도 변화와 정책적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롤즈는 ‘자연적·사회적 우연성 자체를 사회 제도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공정성의 문제라고 본다. 사회의 기본 구조는 이러한 우연성이 사회 전체 구성원들에게 혜택이 되는 방식으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재편된 사회에서는, 자신이 가진 사회적, 자연적 우연성을 자신에게 우연히 주어진 ‘운’으로 인식하고, 운이 좋은 사람들은 그러한 운을 통해 얻은 혜택을 나만의 혜택이라고 독점하지 않으며 운이 없는 사람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개인은 자신이 이룬 것이 손수 자신의 손으로 이룬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을 때, 사람은 겸손하고 감사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실패가 운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때 사람은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샌델은 이처럼 능력주의에서 벗어나 운을 인정하는 사회가 왔을 때,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공동선을 가지는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못한 것은 내가 못나서가 아니고, 저 사람이 잘한 것은 저 사람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모든 것은 결국 운이었고, 내가 부족한 것은 단지 내게 아직 적절한 운이 찾아오지 않아서이다. 롤즈는 자신의 이러한 정신을 담은 차등 원칙에 ‘상호성’과 ‘보상의 정신’과 ‘박애의 정신’이 있다고 말한다. 롤즈는 승자와 패자가 구분되고 승자의 특권이 정당화되는 실적과 능력이 중시되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사회를 거부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적 평등, 즉 사회 구성원들에게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는 절차 아래, 결과가 자존감을 보장하고 합당한 차이를 인정하는 연대의 사회를 제시한다. 롤즈의 공정사회는 이런 점에서 ‘결과-공정’의 무조건적 평등 추구를 비껴가면서도 평등이 추구하려던 이상인 서로가 협력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모색한다.
절차가 공정할 경우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주요인은 재능과 노력이다. 그런데 노력도 재능만큼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학비를 벌기 위해 오랜 시간 일을 해야 하는 학생과 쾌적한 환경에서 온종일 공부를 할 수 있는 학생의 노력이 같은 출발점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없다. 오래 앉아 있기조차 힘든 장애인은 어떤가. 똑같이 입사했지만 여성 임원 비율이 5%를 넘지 못하는 우리 기업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까.
장애인 의무고용제, 지역인재 의무 선발 등 약자를 위한 할당제 폐지는 출발선이 공평하지 않은 경쟁의 현실을 외면하고 은폐한다. 게다가 한참 뒤에서 출발해 뒤질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패자들이 ‘내가 재능도 노력도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부당한 자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각 개인의 능력과 실력을 인정하는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롭지만, 능력만을 강조하는 사회는 또 다른 불공정을 만들어 내고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샌델이 말한 것처럼 누군가의 성공은 실력과 노력만이 아니라 행운과 우연이 작동한 결과라는 생각도 편협된 사고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는 내 안의 공정이 누군가에게는 불공정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공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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