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공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립 관계에 있는 양자의 입장을 대표 기관이 조정하지 않거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양편의 말을 모두 경청하여 반영하지 않거나,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게 하지 않거나, 한쪽 편을 들 때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불공정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거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실제로 공정한가, 공정하지 않은가는 무엇을 공정성의 기준으로 설정하는가에 달려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치적 승리를 꿈꾸며 당파성에 매몰된 위정자들, 학문적 독단에 빠져 더 넓은 현실을 보지 못하고 곡학아세를 일삼는 일부 편협한 학자들은 세상을 자신들의 기준, 관점, 논리로만 보고 듣고 말하지 말고, 더 높게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면서 공정과 정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만의 생각으로 그들만의 이익을 안겨주는 공정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원하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그런 공정을 만들어 가기 위해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공론의 장에서 상호존중과 배려로 대화와 토론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결과의 정당성은 절차의 공정성에서 확보
셋째, 공정은 공정한 절차에서 찾아야 한다. 공정성에 대한 정의는 학자들에 따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법치, 기회균등, 연대적 공존, 투명성과 형평성, 불공정 행위 규제, 복지, 분배이지만, 이 개념들은 지극히 철학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그것의 내용 설명에서는 서로 갈등할 수도 있다. 이 개념들은 고도의 추상성을 지니기 때문에 실제 상황이나 정책의 선택에서 이념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발휘해야 할 미덕은 자신이 주장하는 공정성의 의미와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합의점을 찾아 불공정을 줄임으로써 우리 사회를 좀 덜 불공정한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공정은 절차와 결과 모두와 관련이 있지만, 우리는 절차에 주목해야 한다. 정의로운 분배를 주장한 롤즈도 결과가 아니라 절차에 주목하여 ‘공정으로서 정의’를 제시하였다. 롤즈는 절차의 공정성을 통해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였기 때문이다. ‘공정’에 대한 생각이 제각각 다른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소한의 합의를 찾아내는 것이고, 공정성의 원칙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원칙 자체가 아니라 원칙에 도달하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정한 과정과 절차를 걸쳐 어떤 원칙에 도달했다면 그 원칙은 정당성을 획득한 것이다. 정당한 곧 공정한 절차를 거쳐 어떤 법이나 제도가 결정되었다면, 그 제도나 법은 일단 정당성을 획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제도와 법이 공정하게 운영되는가 되지 않는가도 절차적 공정성과 관련이 있다. 운영과정에서 공정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공정하게 운영된 뒤에 나온 결과를 보고 그것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해서는 안 된다. 선출직이나 시험을 통한 선발의 경우 절차는 공정하다. 대법관의 경우 여성 비율이 낮고 출신학교가 편중되어 있다고 하지만 임명과정 곧 절차가 불공정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결과의 정당성은 그것이 나온 절차의 공정성에서 확보되는 것이지 결과 그 자체에 의해 판단되는 것은 아니다. 경기의 규칙이 정해지는 절차가 공정하고, 그 규칙에 따라 경기가 공정하게 진행되었다면 그 경기는 정당성을 획득한 것이다. 이때 패자의 미덕은 결과를 존중하고 승복하는 것이다. 패배한 뒤에 규칙이 정해진 과정이나 규칙에 따른 경기 운영의 공정성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고려되어야 할 것은 ‘과정’과 ‘기회’의 평등 범위가 훨씬 더 넓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로 제대로 공부할 시간이 없는 학생은 성적으로 표현되는 능력을 보일 기회가 더 적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각종 진학이나 취업을 위한 시험과목을 더 공부하거나 예술이나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또는 장애 등 사회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기회가 적게 주어진다면 이들에게 기회란 그리고 공평한 기회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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