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작년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진 지난 12월에, 우연한 기회를 통해 좋은 강연을 듣게 되었다. 판소리에 대해 생소했을 우리나라 1020 세대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신드롬을 일으키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범 내려온다’를 부른 이날치밴드의 멤버, 판소리꾼 안이호씨의 강연이었다.
사실 이 노래가 나왔을 당시, 판소리 수궁가 중의 한 대목이었다는 사실도 잘 모르고 마냥 좋아만 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전통적인 판소리에 현대적인 팝 스타일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춤 출수 있는 팝 음악으로 재해석한 그 시도는 놀라울 정도로 새로웠고 판소리에 무지했던 많은 이들을 열광케 했었다.
그의 강연의 주된 내용은 수궁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인 용왕, 토끼, 자라, 호랑이 등에 대한 인물분석이었다. 각각의 등장인물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식에 균열이 생기는 좋은 경험이었고 강연 중간중간 실제 판소리를 들려주며 강연이 진행되어 흡인력이 대단했었다. 문화적 체험기회가 적은 우리 지역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지 못했음에 아쉬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올해는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로 구성되는 육십 간지(六十干支)의 40번째 해인 계묘년(癸卯年)이다. 계(癸)는 흑색, 묘(卯)는 토끼를 의미하기에 ‘검은 토끼’의 해라고 칭해진다. 토끼의 해에 토끼와 관련된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판소리 수궁가와 더불어 떠오르는 것이 전래동화 ‘토끼와 거북이’이다. 여기에서의 토끼는 수궁가의 토끼와는 이미지가 다르다.
수궁가의 토끼는 조선 후기 몰락해가던 봉건왕조의 통치 아래서 항상적인 위협 속에 노출되어있는 민중들의 질박한 삶을 의미하고, 별주부인 자라는 봉건왕조의 마지막 신하로서 더 이상 봉건적 가치와 질서가 통하지 않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 자신이 봉건적 존재의 말로임을 보여주는 존재로 표현된다.
반면에 전래동화에 나오는 토끼는 타고난 재능을 게으름과 자만으로 사장시키고 마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된다. 하지만 거북이는 게임의 구성에서부터 불리함을 안고 시작하지만 결국 꾸준함과 인내로 승리를 거머쥐게 되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묘사된다.
전래동화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를 한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토끼는 ‘순발력’으로 거북이는 ‘지구력’으로 치환해서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는 때로는 순발력이, 때로는 지구력이 필요하기에 어느 한 쪽이 더 낫다 아니다 평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사실 스포츠에도 순발력이 좀 더 요구되는 종목이 있고 지구력이 좀 더 필요한 종목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 삶을 지탱하는 직업군에 있어서도 순발력이 필요한 직업들이 있는가 하면 지구력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되는 직업들도 있다. 흔히 회자되는 얘기들 중에 ‘고시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구력이 중요하게 평가받기도 했고 개그맨들은 때에 따라 순간순간 치고 빠지는 순발력이 중요하게 평가되기도 한다.
또다시 새해는 시작되었고, 우리 각자는 저마다 이루고자 하는 소망들이 있을 것이다. 올해는 수궁가의 토끼처럼 순간순간 발휘되는 기지와 순발력이 필요할 때가 있겠지만, 전래동화에 나오는 거북이처럼 묵묵하게 꾸준하게 처음 마음먹은 일들을 올해가 끝나는 날까지 밀고 나가는 지구력도 중요할 거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올해 우리 각자, 각각의 분야에서 공정한 룰이 적용되는 자신만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시작되기를….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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