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과거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고, 특정 이념과 집단에 매몰되어 자신들만의 논리와 기준에 의한 ‘공정과 상식’을 주장하고 정책을 추진한다면, 또 다른 국민적 고통과 사회적 분열이 양산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말 그대로 누구나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공정하고 상식의 보편적 기준을 토대로 다양한 국민적 여론을 수렴하여 다수의 국민이 객관적이라고 하는 정책을 추진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지금까지 야당 시절에 정의롭지 못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던 일을 여당이 되면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처럼 망각하는 좋지 못한 정치 관례를 가지고 있다. 여당은 야당, 야당은 여당에 대해 서로 공정하지 못하다고 부정하고 무시한다.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국무위원 임명을 위한 인사청문회 예를 들면, 야당이 여당일 때 야당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특정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그러나 현재 정부 권력 교체로 여야가 바뀌면서 과거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공정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것이다. 여야 모두 조변석개의 전형으로 일관성과 원칙이 없다. 자신들의 일방적 주장과 생각만으로 정국을 주도하는 것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정략적인 접근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소개된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의 사례인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가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습니다. 앞쪽 선로에는 인부 다섯 명이 있고, 다른 선로에는 한 명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선로를 바꿀 수 있다면, 그대로 다섯 명을 희생시키겠습니까 아니면 방향을 틀어 한 명만 희생시키겠습니까.”, “당신은 육교 위에서 기차가 달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는 다섯 명의 인부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무거운 것을 떨어뜨리면 기차를 멈출 수 있는데, 당신의 몸무게는 너무 적습니다. 그런데 바로 앞에 기차를 멈추기에 충분한 몸무게를 가진 사람이 서있습니다. 당신은 그 사람을 희생시켜 다섯 명을 구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절대적 정의란 존재할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된다. 정의의 개념은 절대적 진리라기보다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사회적 합의’에 가깝다. 마이클 샌델이 제시한 문제는 평상시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명제가 정의로 통하겠지만, 전쟁 중에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합의를 이뤄나가야만 한다. 정의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공정성의 기준이 사전에 정해져 있고, 양자가 이 기준에 동의하고, 그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여 판단하였다면, 그것은 공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기준이 엄격히 적용되었는가에 대해서 한쪽이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결과의 정당성은 의심을 받는다. 공정이란 불편부당하여 치우침이 없는 것을 말한다.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쳐 유리함이나 불리함을 주는 일 없이, 같은 기준으로 모든 사람, 모든 문제를 처리할 때 우리는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정의와 공정의 기준을 만드는 사람이 그 기준이 보편타당하도록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공정하게 적용해야만 믿을 만하고 모든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공정’이라는 화두를 두고 각계각층이 충돌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정이나 정의의 기준이 일부 계층이나 일부 세력에만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이미 그 기준은 공정과 정의라는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불공정 사회를 공정사회로 바꾸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지 몇 가지 생각해 본다.
첫째,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우선 법과 제도를 통해 불공정을 줄이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법과 제도를 통한 방법은 공적인 방법이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주는 일반적인 규칙을 정한다. 그 규칙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 규칙은 “마음속의 공평한 관찰자가 판단하여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난받을 만한 행위는 하지 말라”는 것이고 두 번째 규칙은 “마음속의 공평한 관찰자가 판단하여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받을 만한 행위를 하라”는 것이다. 첫 번째 규칙은 다른 사람의 분노를 유발할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며, 두 번째 규칙은 다른 사람의 감사를 자아낼 행위를 하는 것이다. 첫 번째 규칙은 정의(justice), 즉 타인의 생명·재산·명예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를 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 두 번째 규칙은 선행, 곧 타인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행위를 하도록 우리에게 지시한다.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정의란 나의 행위에 영향을 받는 사람의 분노를 자아낼 수 있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며, 만일 누가 그런 행위를 하였을 경우 그 사람을 처벌하여 그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것이다. 정의의 배후에는 분노의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은 분노는 불쾌한 감정이기 때문에, 정의가 구현되도록 정의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회적 규칙을 정한다. 대부분의 사회는 타인의 생명·신체·재산·명예 등을 침범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것을 처벌할 수 있는 엄밀한 규칙 곧 법을 정한다.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행하는 것은 미덕으로 권고하지만 정의에 대해서는 강제력을 수반하는 법으로 규정한다. 애덤 스미스에게 선행 곧 자애로운 행동의 실천은 정의와는 다른 대상이다. 비유하면 자애는 건물을 지탱해 주는 기초가 아니라 건물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식과 같은 것이다. 반면에 정의는 모든 건물을 지탱해 주는 기둥에 해당한다. 만약 기둥이 손상되면 거대한 인간 사회라는 구조물은 한순간에 붕괴될 것이다. 애덤 스미스에게 분배를 통한 정의의 실현은 법의 영역이 아니라 자애 곧 윤리의 영역이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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