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관악부 지도교사로 모두 여섯 개 학교에서 근무했었다고 했다. 그 여섯 개 학교 모두가 교육 환경과 여건이 달랐다. 그리고 지도교사로서 발휘했던 학교별 교육적 역량도 달랐다. 그래서 필자가 근무했던 각 학교별 관악부에 대한 근무 평가 점수를 스스로 매겨보면서, 관악부와 함께 한 21년간의 세월을 총정리해볼까 한다.
양양고등학교(1988년 3월-1992년 2월) - 80점
관악부 지도교사로 첫 부임 학교였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처음 맡은 관악부라 의욕이 넘쳤었다. 그래서 부임 첫해에는 방학 때도 거의 매일 출근을 했었다. 개교하던 1953년에 창단되었다고 하는 양양고 관악부는, 전통의 명문 관악부답게 연주 기량이 아주 좋았다. 하지만 그 당시 음악 환경은 매우 열악했었다. 노후된 악기도 많았고, 가격 부담이 큰 튜바나 수자폰 같은 악기는 아예 없었다. 그래서 악기 구입 예산 확보를 위해 많은 애를 썼었다. 부족한 예산으로 악기를 한 대라도 더 들여놓기 위해 동분서주했었고, 튜바 같은 악기는 값이 싼 국산품을 구입하기도 했었다.
완전 초짜 지도교사라 경험 부족으로 인한 시행착오도 참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1989년 10월, 정기연주회를 개최했었다. 전용 연주홀이 없어서 농촌지도소 대강당에서 했는데, 청중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었다. 1·2회 공연 모두 만석이었다.
그 연주회 후원금 마련을 위해 사방팔방 뛰어주셨던, 당시 교무부장 함준호 선생님(11회 동문, 양양고 교장으로 퇴임)과 이태희 삼육서점 사장님(9회 동문), 그리고 동문 체육대회 때마다 후원금 모금 진두지휘를 하셨던 추상호 선생님(12회 동문, 현재 한서교육문화재단 이사장)…. 모두 다 잊을 수 없는 분들이다.
양양고 관악부에서 근무 성적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관악부 첫 신입생 제자로, 필자와 3년간 고락을 함께 했던 부원들 이름을 정리해 보았다. 이제 50대 나이가 되었겠다.(가나다 순, 1988년에 입단 1991년에 졸업)
△목관 파트: 윤광석(악장), 김원주, 김택철, 이정호, 최훈, 한진환
△금관 파트: 김지섭, 김태원, 조규림, 황동기(부악장)
△타악 파트: 김동화, 김정균
속초고등학교(1992년 3월-1997년 2월) - 70점
당시, 속초고 관악부의 가장 어려운 점은 연습 시간 확보였다. 학교의 모든 것들이 오로지 대학 입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 외에는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식사 시간도 그나마 40분에 불과했었다. 예술제 같은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별도의 연습 시간이 약간 주어졌었다. 그래서 당시 속초고 관악부는 현상 유지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 상황이어서 당시 필자는 주로 개인적인 음악 활동에 전념했었다. 재직 기간 5년 동안에 단행본 저서 4권을 출간했었고, 여기저기 원고 발표 및 청탁도 많이 받았다. 음악 강연(주로, 국악 특강)도 많이 다녔었다. 서울에서도 강연 요청이 들어 왔고, 심지어 법원에서까지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그래서 근엄한 판사님들 앞에서 특강을, 두 번인가 했던 아주 이색적인 경험도 했었다. EBS를 비롯하여 각종 언론 매체의 인터뷰와 방송 출연도 여러 번 했었다. 교육연구사도 아닌 평교사로서, 제6차 음악 교육과정 연구위원으로도 위촉받았다.
덕분에, 1993년 제5회 속초문화상(학술부문)을 수상했다. 그리고 1995년에는 문화체육부 장관 표창도 받았었다.
그러나 관악부 지도교사로서 역량은 제대로 발휘를 못 했었다. 먼저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관악부 악기들을 완전히 교체하고 보충한 일 외에는.
속초고 재직 시절, 음악인으로서 필자는 꽤 괜찮은 시절을 보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음악인이 아닌 교육자로서 필자는,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대학 입시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진정한 교육자로서 필자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으니.
어쨌든 당시 속초고 관악부 제자들에게는 지도교사로서 미안한 게 많다.
속초상업고등학교(1997년 3월-1999년 8월) - 69점
속초상업고(지금의 설악고)는, 인문계 학교인 속초고보다 관악부 연습 여건이 상대적으로 더 좋았었다. 관악부원들의 기본기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전임 지도교사 설증호 선생님의 뛰어난 지도력 덕분이었다.
그런데…. 뜻대로만 안 되는 게 세상만사, 그 학교로 발령받자마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학급 담임과 학적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고 또 얼마 안 되어 부장 업무까지 맡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관악부에 전념할 시간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1997년 8월에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2년도 채 안 되어 1999년 4월, 형이 또 돌아가셨다. 형의 투병 기간 동안은, 학교생활은 물론 일상생활도 어려울 정도였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관악부 활성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은 꽤 했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필자가 관악부 지도교사로 근무한 여섯 개 학교 중에서, 속초상업고에서 근무할 때가 가장 능력 발휘를 못했던 것 같다. 그때 관악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래도 필자가 부임해서 떠날 때까지 고락을 함께 해준 관악부 제자들이 있어서 큰 힘이 되었다.(공교롭게도 그 기수들만 모두 여학생들이었다. 1997년 입단)
△목관 파트: 국승열, 김옥연, 김은수, 윤지경, 진옥진(악장)
△금관 파트: 정지희, 조은주, 조정순, 천지연(총무), 황은수
△타악 파트: 김규남, 함지선(부악장)
거진종합고등학교(1999년 9월-2003년 2월) - 98점
이미 언급한 바대로이다. 거진종합고(지금의 거진정보공업고) 관악부는, 필자의 교육적 역량을 거의 다 쏟아부었던 관악부였다. 교학상장, 줄탁동시, 절차탁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 준 관악부였다.
그런 관악부가 지금은 학생수 감소로 운영이 안 되고 있다는 게 참 안타깝다.
고성고등학교(2003년 3월-2004년 2월) - 90점
인문계 고등학교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당시 고성고 역시 연습 시간 확보가 쉽지 않았었다. 그래서 여름 방학 보충 수업 기간에 집중 연습을 했었다. 하지만 입시가 코 앞인 3학년 부원들은 그 기간마저 연습이 쉽지 않았다.
먼저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성고에서는 어머니의 건강 문제 때문에 1년밖에 근무하지 못했다. 1년 만에 떠난다고 했을 때, 교감 선생님께서 얼마나 간곡히 만류를 하셨던지….
하지만 필자도 정말 어렵게 결정한 일이었다. 그렇게 필자가 떠나고 나니, 교감 선생님의 우려대로 마땅한 후임 지도교사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관악 전공의 기간제 교사로 1년간 관악부 운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교가 편곡, 관악부 단복 맞춤, 악기 구입, 악기실 정비 및 아주 오래된 폐악기 처리, 관악부 전용 연습장 확보, 교내외 각종 행사 참여 등등, 짧은 1년 동안 2-3년 정도만큼의 관악부 업무를 해냈던 것 같다. 그런 압축식 운영을 하자니 어느 정도는 독단적 운영이 불가피했다. 그래서 악장(樂長)을 비롯한 3학년 부원들의 불만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아마 필자에 대한 그들의 기억은 지금도 별로 안 좋을 것 같다.
그래도 고성고에서 1년은, 정말 밀도 있는 1년이었기에 크게 아쉬운 것은 없다.
강현중학교(2004년 3월-2008년 2월) -95점
강현중 관악부는, 창단부터 운영 방식까지 거의 필자의 뜻대로 이루어진 관악부였다. 한 마디로, 지도교사로서 교육적 성취감 만점의 관악부였었다. 그런 관악부가, 학생수의 급격한 감소로 현재 운영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강현중 관악부와 관련하여 다시 한번 주장한다. 앞으로 우리 지역에 관악부가 제대로 활성화되려면, 시내 중학교에 관악부가 창단되어야 한다. 2개 학교 정도면 된다. 그러면 지역 내 고등학교 관악부는 자연스럽게 활성화될 수 있다.
관악부 지도교사로서 가장 필요한 자질은 교육적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적 실력은 그다음의 문제다.
이밖에도 관악부와 관련된 많은 추억과 이야기들이 있다. 하지만 나머지 것들은 여운으로 남겨 둔 채 연재를 마무리할까 한다. 그동안 부족한 글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다음엔 좀 더 참신한 글을 통해 만나 뵐 수 있으면 한다.
<끝>
임수철
작곡가·전 음악교사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