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해마다 늘 이맘때쯤이면 자주 인용되는 단어가 ‘다사다난’일 것이다. 하지만 올해처럼 ‘다사다난’이란 말이 어울리는 해도 드물었던 것 같다. 일일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전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에 국한해서도 또한 개인적으로도 참 많은 일이 생기고, 매듭지어지기도 하고 또 여전히 진행 중이기도 하다.
그런데 매년 해를 넘기는 이즈음에 자주 드는 생각 중 하나는 ‘또 이렇게 한 살 더 먹는구나’ 하는 생각이다. 나이 서른이 되기 전에는 좀 어른스럽게 보이거나 좀 성숙해 보이는 것이 좋았던 것 같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현재 나이보다는 좀 더 어리게 좀 더 젊어 보이는 것이 로망이 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달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동안이라는 말을 듣고 산 시절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염색을 해도 쉬이 드러나는 흰머리 때문인지, 아니면 계속 빠지는 머리카락 때문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머리카락 이야기를 하면서 이젠 나이를 못 속인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지나치게 나이에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이라면 더더욱 서로 나이를 묻는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서로의 나이를 확인함으로써 서열을 정리하고 싶은 탓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종종 나이를 속이는 일들도 발생하는 것이다.
대도시와는 다르게 속초는 좁은 동네이다. 그래서 소문이 나면 순식간에 온 속초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간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어야 이야기가 퍼지다 말 텐데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으니 살이 덧붙여져 산들바람이 태풍이 되어 온 동네를 휘젓게 된다. 그래서 이런 좁은 지역사회에서는 나이를 확인함으로써 서열을 정리할 필요를 많이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자신의 나이를 얘기할 때 왕왕 기준점을 잡아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바로 고등학교 졸업 연도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그것이다. 예를 들자면 ‘저는 속고 몇 회 졸업생과 친구입니다’라는 표현이 그런 경우인데, 속초 같은 좁은 지역사회에서 그런 말을 듣게 되면 그의 나이를 바로 유추할 수 있게 되고 그가 얘기했던 속고 출신 친구를 보면서 그의 성향도 대충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유교의 본류인 중국보다 더 유교의 영향이 컸었던 탓인지 우리나라의 어른에 대한 공경은 좀 더 각별하다. 그래서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으면 바로 형이 되고 적으면 동생이 된다. 그렇기에 별반 내세울 것 없는 사람들이 늘 상 불리한 국면에 들게 되면 하는 말이 “너 몇 살이야?”라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벼슬’이라는 속담도 생겨난 것 아닐까 싶다.
내년부터 ‘만 나이’를 적용한다고 한다. 이미 오랜 시간 관행적으로 사용해오던 한국식 나이 계산법에서 벗어나 서양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처럼 태어난 날로부터 나이를 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나이 계산법에는 생명존중의 사상이 들어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생명이 잉태되어 엄마 뱃속에 있게 되는 그 10개월의 시간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태어나면 바로 한 살이 되는 것이다. 한국식 나이 계산법은 어찌 보면 우리 선조들의 생명 존중의 지혜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어쨌든 내년이 되면 필자에게도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될 것이다. 분명 나이 한 살을 더 먹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두 살이나 어려지는 일이 생기게 되니 말이다. 생일이 10월이니 아홉 달 동안은 두 살이나 어린 삶을 살아지게 생겼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내년이 되어 어려진다고 좋아하기보다는 나이가 벼슬인 사람이 되지 않기를, 내년이 필자의 얄팍한 지식이 지혜로 숙성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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