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만에 열린 납북귀환어부사건 재심 공판에서 검찰이 과거의 공소사실을 부정하고 무죄를 구형했다. 지난 10월 26일 오전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 형사법정에서는 지난 2월 8일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결정을 내고 재심을 권고한 건설호와 풍성호 납북귀환어부사건 피해자 3명에 대해 재심 공판이 열렸다.
이날 건설호 선원 고 김○곤 씨 공판에서 변론을 맡은 최정규 변호사는 “건설호 김○곤은 월선한 적이 없고, 설령 월선했어도 고의성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에 춘천지검 속초지청 조영민 검사는 “김○곤 씨는 1959년 5월 28일 귀환 후 구속영장이 집행되기 전인 6월 23일까지 석방되었다는 자료가 없기에 불법 구금이 인정되어 증거능력이 없다”며,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해달라”라고 구형했다. 이에 최 변호사도 “검찰 구형대로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어 열린 풍성호 선원 고 김○환 씨, 고 장○덕 씨 공판에서도 최 변호사는 같은 취지로 무죄를 주장했으며, 조 검사도 같은 취지로 무죄를 구형했다. 재판부는 오는 11월 9일 오후 2시30분 두 사건에 대해 선고를 하기로 했다.
이날 재판에는 풍성호 선원 장○덕 씨 부인과 딸이 참석했다. 고성군 거진읍에서 온 부인 김○○ 씨는 “남편이 살아 생전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 허리통증이 심해 편히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조사를 받다가 허리를 다쳐 평생 고생만 하다 좋은 세상도 못 보고 떠났다. 집 주변에는 누군가 감시하느라 맴돌고 있었다. 먹을 게 없어서 배 타고 바다에 나가는데, 밀가루 수제비를 싸가야 했다. 너무 힘들어서 사는 게 지옥 같았다. 남편은 바다에 나가 배가 기관 고장이 나서 북한군이 총을 들고 협박해 북으로 끌려갔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판사는 “말씀 무겁게 듣겠다”라고 말했다.
건설호와 풍성호 선원들은 1968년 11월 7일과 8일 각각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되었다가 이듬해 5월 28일 귀환했다. 귀환 후 선원들은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를 당하고 허위진술을 강요받아 반공법 탈출죄와 수산업법 위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에도 계속 불법 사찰을 받아왔으며, 가족들까지도 연좌제에 묶여 피해를 입었다.
이날 재심 공판에는 동해안납북귀환어부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 회원과 피해자 가족 등 20명이 함께 방청하며 피해자 가족을 격려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지난 10월 26일 53년 만에 열린 건설호·풍성호 재심 공판에 납북귀환어부 피해자와 가족들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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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귀환어부 재심 무죄 구형 근거된 건설호·풍성호 사건 진실화해위 진실결정 내용(요약)
어로저지선 남쪽서 정상조업 중 납북…불법구금·가혹행위 당해
이번 건설호와 풍성호 선원 3명의 재심에 대해 검사가 무죄를 구형하게 된 데는 지난 2월 8일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결정이 근거가 되었다. 이 진실결정은 같은 날 돌아온 선원 150명도 모두 같은 피해를 입었기에 앞으로의 진실결정과 재심 재판의 선례가 될 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건설호·풍성호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조사보고서 내용을 요약해 정리했다.
1968년 11월 7일 거진항 선적 건설호(선원 6명)는 명태잡이 조업을 하던 중 기관총을 쏘며 위협을 가하는 북한쾌속정에 의해 오전 9시경 나포, 납북되었다. 다음날인 11월 8일에는 거진항 선적 풍성호(선원 8명)가 명태잡이 조업을 하던 중 북한쾌속정이 기관총을 쏘면서 접근하자 도주하였으나,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다 오전 10시경 대진 앞바다 인근에서 북한쾌속정에 의해 나포, 납북되었다.
납북된 어부들은 6개월간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1969년 5월 28일 고성 거진항으로 귀환했다. 이때 함께 귀환한 어선과 선원은 23척 150명에 이른다. 귀환한 어부들은 고성군 교육청에 80명, 고성군 농촌지도소에 70명 분산 수용되어 각 지방경찰서에서 차출한 경찰관, 치안국 심문반, 군 및 중앙정보부 수사관으로 구성된 합동심문반으로부터 6월 10일까지 심문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선적지인 고성, 속초, 강릉, 경북 영덕경찰서로 신병이 인계되어 다시 조사를 받았다. 건설호와 풍성호 선원들에 대해 6월 23일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다음날 집행되었다. 이후 춘천지검 속초지청은 귀환선원들을 모두 반공법 찬양고무죄와 탈출죄 및 국가보안법 금품수수죄, 수산업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건설호 선원들은 1969년 9월 10일, 풍성호 선원들은 9월 25일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에서 찬양고무와 금품수수는 무죄, 반공법 탈출죄 및 수산업법 위반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건설호 선장 정○과 풍성호 선장 황○식은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 다른 선원들은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3년의 형이 확정되었다.
납북귀환어부들은 5월 28일 귀환 직후부터 6월 10일까지 귀가와 면회가 일체 금지된 채 합동신문이 이루어졌고, 경찰로 신병이 인계된 후에도 구금상태에서 6월 24일 구속영장이 집행되었다. 건설호와 풍성호 선원들은 귀환 후 구속영장 집행 전까지 불법구금 상태에서 가혹행위를 당하며 수사를 받은 것을 확인하였다. 이는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 불법 감금죄에 해당하고,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건설호 선원 김○곤 자녀인 김○애는 부친이 조사과정에서 전기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진술했고, 풍성호 선원 장○○의 처 김○○ 역시 남편이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해 고생을 많이 했다고 진술한 점과 다른 피해자 진술을 종합할 때, 건설호와 풍성호 납북귀환어부들은 조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했을 개연성이 상당하다.
납북귀환어부들이 귀환 후 수사기관에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 등 수사기록에는 선원들이 모두 어로저지선을 월선하여 납북된 것으로 나오지만, 납북 당시 고성경찰서가 작성해 보고한 ‘납북선박발생보고’ 등에는 어로저지선 남쪽에서 납북된 선박이 확인된다.
경찰 보고에는 11월 8일 10시 25분경 어로저지선 남쪽 지점에서 어선 4척이 납북되었다고 하는데, 이 시간대에 납북된 어선이 대양호, 대통2호, 왕양호, 풍성호이다. 당시 언론에서도 목격자 진술을 근거로 ‘북한쾌속정이 어로저지선 남쪽으로 침입하여 풍성호 등을 강제로 끌고 올라갔다’고 보도하였다. 풍성호 선장 황〇식 선장은 1차 피의자신문에서 “남하 도중 기관 고장으로 표류되어 구조를 요청했으나 어장지도선 무궁화 5,6호가 400m 지점까지 왔다가 북한 쾌속정이 나타나자 남쪽으로 내려갔고,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괴뢰군 2명이 배에 올라타 끌고 갔다”고 진술했다. 풍성호는 어로저지선 및 군사분계선을 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건설호의 경우 검찰의 항소와 상고에 대해 어로저지선 남방에서 안심하고 조업 중 납북되었다며 공소장의 내용을 부정한 선장 정○○의 답변서, 같은 시기에 납북된 다른 배 선원들의 진술을 함께 종합할 때, 남한 해역에서 정상적인 조업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어로저지선은 군사분계선의 남쪽으로 엄밀하게 따지면 남한의 해역으로 볼 수 있어, 어로저지선을 넘었다는 사실만으로 반공법 상 탈출죄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한 법적용이라 할 수 있다.
건설호와 풍성호 납북귀환어부들은 귀환 직후 형사처벌을 받은 후에도 지속적으로 경찰, 보안대, 안기부 등 수사기관으로부터 내사를 받았다. 수사기관의 분류 기준에 따라 A, B, C등급으로 구분되어 귀환 후 상당한 기간 동안 사찰을 받았음이 확인되었다. 더욱이 군 보안대는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음에도 납북귀환어부에 대해 상시적 사찰을 함으로써 직원을 남용한 위법한 수사를 하였다. 그리고 연좌제로 취업을 하지 못해 생계의 위협을 받는 등 납북귀환어부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의 개연성도 상당하다.
국가는 풍성호와 건설호 납북귀환어부들과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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