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8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제216법정에서 50년 만에 속초 납북귀환어부 2명에 대한 반공법 위반 사건 재심 공판이 열렸다. 재심 대상은 지난 1972년 8월에 납북되었다가 9월 15일 속초항으로 귀환한 무진호 선장 고 손용구씨와 삼창호 선원 고 김달수씨이다. 이날 공판은 진실화해위 진실결정에 근거하지 않고 올해 제기한 납북귀환어부 재심 신청 36건 중에서 처음으로 열린 재심 공판이다.
이날 공판에서 피고 측 최정규 변호사는 “이미 재심 개시 결정에 나와 있듯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진술한 증거는 임의성이 없어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고, 월선 여부도 부정확하다”며, 두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 측은 “내년 초 해당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위 결정이 날 때까지 종결을 미뤄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변호인 측이 피고인에 대한 공소 사실을 부인하니, 다음 공판까지 검찰에서 범죄사실을 입증할 기록 목록을 제출하라”고 했다.
재심 대상자 무진호 선장 고 손용구씨는 1972년 8월 30일, 삼창호 선원 김달수는 1972년 8월 23일 각각 오징어잡이에 나갔다가 배와 함께 납북·억류되었다가 다음 달인 9월 15일 속초항으로 귀환했다. 두 사람 모두 강릉지원에서 반공법 위반 및 수산업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구속영장도 없이 불법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이 확인되어 지난 9월 2일 강릉지원에서 재심개시를 결정했다. 다음 공판은 12월 6일 오후 2시30분 강릉지원 216호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날 재판에는 피해자 가족과 동해안납북귀환어부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 회원 등 10여명이 함께 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지난 10월 18일 강릉지원에서 50년만에 열린 납북귀환어부 재심 공판에 참석한 피해자 가족과 시민모임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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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어부의 딸 사연
돌아가신 부친 생일날 열린 재심 공판…“우리 아버지는 무죄다”
지난 10월 18일 50년 만에 열린 납북귀환어부 재심 공판에서 부친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무죄를 주장한 고 김달수씨 딸 김○○(65)의 사연을 소개한다. 속초시 교동에 거주했던 고 김달수씨는 1968년 1월 6일 명태잡이 어선 신광호(8톤)를 타고 납북되었다가 3월 23일 귀환했다. 돌아온 후 김씨는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기소되어 춘천지방법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다시 1972년 8월 28일 오징어잡이 삼창호를 타고 조업에 나갔다가 납북되어 9월 15일 속초항으로 들어왔다. 이때도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강릉지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김○○씨는 지난 3월 춘천지방법원과 강릉지원에 부친 김달수씨 사건에 대해 각각 재심을 청구해, 지난 9월 12일 강릉지원에서 먼저 재심개시 결정을 받았다. 이날 재판에서 김달수씨 딸 김○○는 “재심 재판이 열린 오늘이 아버지 생일날이다. 아버지는 기나긴 날 아파하시면서도 억울하다고 한 마디도 못하시고 감옥 같은 생을 살다가 돌아가셨다. 우리 아버지는 무죄다. 그래서 내가 이 자리에 있다. 그동안 겪어온 일도 너무 힘들고, 지금 이 과정도 너무 힘들다. 아버지 억울함을 꼭 벗겨 드리고 싶다. 나도 자유롭고 싶다”라고 발언했다.
아버지는 두 번 납북되었다가 돌아오셨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쯤에 처음 납북되었다가 돌아오셨다. 어느 날 아버지가 타고 나간 배가 바다에서 실종되었다. 신광호라고 낚시명태 배를 타고 나갔는데, 가족들은 풍랑을 만나 사고를 당했는지 알 수 없어 애가 탔다. 어머니와 다른 선원 가족들은 배에 탄 사람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라도 알고 싶다고 점집에 가서 점도 봤다. 우리 가족 누구도 아버지가 북에 납치되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분명 경찰이나 기관에서는 아버지가 탄 배가 납북된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가족들에게는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경찰관이 집에 찾아와서는 갯배머리 어판장에 나가보라고 이야기를 전했다. 마침 집에 나 혼자 있어서, 그 이야기를 듣고 나 혼자 부둣가에 나갔다. 그날 아버지가 돌아온다는 사실도 몰랐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서야 아버지가 탄 배가 납북이 되었고, 오늘 억류가 풀려 속초항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 보고 싶어 혼자서 경찰서 찾아가”
초등학교 5학년이라 키가 작은 나는 아버지 얼굴이라도 꼭 봐야겠다 싶어서 부둣가 옆 언덕까지 올라가서 기다렸다. 큰 해양경찰 배가 바다로 나가더니, 꽤 시간이 지나서 아버지가 탄 신광호를 끌고 들어왔다. 배가 들어오는 걸 보고 언덕을 뛰어 내려갔다. 나는 아버지와 선원아저씨들이 배에서 내리는 걸 직접 봤다. 배에서 내린 아버지들은 경찰관들의 지시에 따라 미리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타고 어디론가 실려 가셨다. 경찰관들이 쭉 서서 사람들이 접근하는 걸 막았다. 돌아온 아버지들은 부둣가에 나와 기다리던 가족들과 손도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납북되었다가 돌아오신 아버지의 얼굴빛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가 타고 온 배는 북에서 보낸 쌀가마니와 마른명태를 싣고 들어온 걸로 기억한다. 며칠 후 아버지가 속초경찰서에 갇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나는 아버지가 보고 싶어 학교가 끝나면 혼자서 경찰서를 찾아갔다. 한 세 번 찾아간 것 같다. 건물 안에 들어가 쪼그려 앉아 울기도 했다. 경찰관 아저씨가 나가라고 내쫓으면,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기도 했다. 한번은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가 파란 수의복에 밧줄에 묶여 가는 걸 보고는 “아버지”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출소 후 아버지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살이 빠져 몸이 바짝 말랐는데, 몸에 살이 얼마나 많이 빠졌는지, 뼈가 배겨서 그냥 앉아 있지를 못하고 누워 계셨다. 아버지는 여러 번 각혈을 했다. 요강 한 가득 피를 토하시기도 했다.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자다가도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거나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 내가 아버지 하고 부르면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살린다고 시골을 쫓아가 약초를 구해 왔다. 아버지는 간신히 살아나셨다. 같이 끌려갔다가 돌아와 고생을 하신 분들은 얼마 못 사시고 아버지보다 더 일찍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출소 후 전혀 일을 하지 못하셨다. 생계가 말이 아니었다. 하도 궁하니 옆집에 사는 친구네가 먹을 쌀을 가져다줬다.
아버지는 두 번째로 납북되었다가 돌아와서는 다른 선원들보다 더 심하게 고생했다. 일반 선원인 아버지와 선장, 기관장이 공교롭게도 모두 한 번씩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경력이 있었다. 그래서 경찰에서는 셋이 공모해서 고의적으로 월북한 것이 아닌가 추궁받았다고 한다. 어느 분 이야기로는 아버지가 기관에 끌려가서 맞기도 많이 맞고, 잠도 안 재우고 전기고문과 고춧가루 물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대전교도소에서 나왔을 때는 손과 발, 코가 다 얼어 있었다. 집에 돌어와서는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사람들도 잘 만나지 않았다. 아시는 지인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한테 “이렇게 고문을 받고 힘들게 옥살이하고 힘들게 살 거면 북에서 왜 내려왔느냐. 그냥 거기서 눌러살지 그랬냐”고. 그러자 아버지는 “내가 고기잡이를 하다가 북에 끌려갔는데, 처자식 가족이 다 여기에 있는데, 어떻게 안 내려올 수 있느냐”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처음 납북될 때 신광호 선장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와 친했다. 나도 아저씨 딸인 언니랑 친하게 지냈다. 선장 아저씨도 출소 후에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다가 우리 아버지보다 더 일찍 돌아가셨다. 같이 끌려간 아저씨들도 몇 년 못 사시고 돌아가셨다.
“새끼들 지키려고 힘든 인고의 세월 견디셔”
형사들이 아버지를 감시하기 위해 우리 집을 자주 찾아왔다. 형사가 한 번 왔다 가면 아버지는 심하게 앓고 식사도 못하고 몸서리를 쳤다. 어린 나이인 나에게도 힘들어하는 아버지가 너무 불쌍하게 보였다. 그래서 한번은 내가 집에 찾아온 형사를 내쫓았다. 물바가지로 물을 퍼서 끼얹어 버렸다. 죄 없는 우리 아버지 괴롭히지 말라고. 아버지가 너무 힘들어하니 찾아오지 말라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참 지독하다고 하셨다. 몸은 다 망가졌는데, 도대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일체 말을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일찍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당한 일 때문에 화병이 난 것 같다.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62세에, 아버지는 72세에 돌아가셨다.
오빠는 아버지가 납북될 때 중학생이었다. 야구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었다. 그러나 아버지 납북사건으로 집안이 어려워지자 오빠는 학교를 다니면서 오징어잡이 배를 탔다. 배멀미를 심하게 해 토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일을 할 수 없으니 오빠가 돈을 벌어오겠다고 나선 것이다. 어머니 몰래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기도 했다. 나 준다고 아이스케키를 가져왔는데, 어머니한테 장사하는 게 발각이 되었다. 어머니가 몇 날 며칠 그냥 우시기만 했다. 결국 오빠는 학교를 그만두고 배를 타야 했다. 오징어배도 타고, 시망바리(그물명태잡이)도 하셨다. 지금도 어렵게 혼자 살고 있다. 오빠는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다.
나도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진학을 포기하고는 일을 했다. 초등학교 때 노래와 운동을 잘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사방공사를 다녔다. 집에는 이야기도 안 하고 그냥 학교 간다고 나가서는 중간에 책가방은 어디 몰래 감춰놓고, 장천마을 할머니들이 사방공사로 나무를 심는데 무작정 쫓아가 일 좀 시켜달라고 졸랐다. 할머니들과 같이 사방공사 일을 하고는 무궁화표 밀가루를 타왔다. 학교를 안 나가니 담임선생님이 우리집을 찾아왔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걸 아니, 학교에 안 나올 걸 뭐라고 꾸짖지도 않으셨다.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졸업장을 대신 갖다주셨다. 깡통을 들고 아스팔트 골탕을 칠하는 일도 하고, 노가리(명태새끼) 할복하는 일도 했다. 설악산 기념품 가게에서 물건 파는 일도 했다. 바다에 나간 오빠가 들어오면 내가 부둣가에 나가 오징어를 광주리에 이고 왔다. 리어커도 밀었다.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더 배우지 못한 게 한스러워 뒤늦게 방송고에 들어가 공부하고 졸업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새끼들을 지키려고 말 한마디도 안 하고 그 힘든 인고의 세월을 견디셨다. 옛날 생각을 하면 계속 눈물이 난다. 심하게 몸살을 앓는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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