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북부지역(설악권)은 한국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와중에 중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1951년 8월 18일 수복지구인 양양군에 군정이 실시되면서 그해 10월 속초중학교와 양양중학교가 처음 문을 열었으며, 다음 해인 1952년 6월 2일 속초고등학교가 현재 속초초등학교 옆 임시건물에서 문을 열었다.
바로 한 치 앞인 고성 지역에 전선이 형성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방 지역으로 대한민국의 공식 행정 통치가 이뤄지지 않던 군정시절에 속초고가 설립된 것이다. 전쟁의 혼란 속에 방치된 자녀들이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전쟁의 포연이 가시기도 전에 누구도 쉽게 신경을 쓰지 못했던 속초고 배움터를 만드는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교육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갖고 있는 초대 교장 서창하의 숨은 노력과 군정 1군단(군단장 이형근)의 전폭적 지원과 학생들의 향학열 및 원주민과 피란민들이 합심하여 일궈낸 소중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1952년 6월 2일 개교…62명 입학
서창하(徐昌河 1904∼1976)는 함경남도 고원에서 출생하여 함흥의 함남도립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1951년 1·4 후퇴 때 월남하여 양양 상평국민학교에 잠시 근무하였고, 당시 수복지구 행정을 관장하였던 국군 1군단에 동광중학교 설립인가를 받아 1952년 3월 20일 개교와 함께 초대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1952년 5월 25일 다시 1군단장 이형근으로부터 양양군 속초읍에 속초고 설립인가를 받아 6월 2일 영북지역 최초로 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 속초고는 현재 속초초교 서편에 교무실과 교실 한 칸씩을 1주일 만에 만들어 입학생을 모집한 결과 당초 정원인 50명을 넘어 62명(남 57명, 여 5명)이 입학하였다.
1회 졸업생 김종규(金鐘圭 1936∼)의 증언에 의하면 개교 시 1군단 민사처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으며 교사들도 이곳에서 임명하였고 피란민 출신의 교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교직원은 교장 1명, 교감 1명, 교사 12명, 서무과장 1명을 포함하여 15명이었고, 62명의 덩치 큰 고등학생들이 오직 교실 한 칸에서 체육을 제외한 모든 수업을 들었으며 당시에는 같은 학년이라도 4∼5살 차이가 나는 경우가 흔해서 동급생끼리도 선배님으로 호칭했다고 한다.
개교 다음해인 1953년 배구부와 축구부가 창단되었고 인근의 속초중학교에도 두 개의 운동 팀이 창단되어 함께 운동을 하였으며 매년 속초고 대 양양고, 속초중 대 양양중의 배구, 축구 2개 종목 정기전이 개최되었고, 고등부는 속초고가, 중등부는 양양중이 우세하였으며 당시 경기는 양양군 최대의 화제였다고 한다. 전쟁과 가난 그리고 수복지구라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1회 졸업생들은 학업에 매진하여 1955년 2월23일 졸업과 동시에 서울 소재 대학에 24명이 진학하였고(서울대 3명, 고려대 6명, 연세대 2명, 성균관대 1명, 한양대 1명, 중앙대 1명, 동국대 4명 등) 공군사관학교 1명, 제3사관학교에도 3명의 합격생을 배출하여 자랑스러운 속초고의 서막을 힘차게 열었다.
1988년 장사동 5번째 교사로 이전
초대 교장으로 부임한 서창하 교장은 위와 같이 개교 초기에 많은 제자들을 대학에 합격시켰으며, 속초고의 자랑인 배구부를 창단하여 1958년, 1959년 전국체전에서 두 차례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서창하는 1군단 군정당국과 교섭하여 어려운 물자난 속에서도 군수자재를 지원받아 영랑동 1구(현 양우아파트터)에 10개 교실의 2층 목조건물을 짓고 1955년 6월 6일 학교를 이전하였다. 이후 학생 수가 증가함에 따라 1965년 속초시 교동 현 설악중학교 터로 학교를 이전하였고, 1970년 당시 교사를 설악중에 물려주고 속초시 교동 현 속초양양교육지원청 터로 다시 이전하였고, 시내에 있던 속초중이 도시 계획에 의거 철거되면서 속초중에 교사를 물려주고(속초중은 1994년 현 교사로 이전하였고, 그 자리에 교육청이 이전함) 1988년 11월 14일 다시 속초시 장사동 460번지 5번째 교사로 이전하여 올해 개교 70주년을 맞았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전국의 수많은 초·중·고들의 개교에는 저마다 애틋한 사연을 담고 있듯이 우리 속초고도 한국전쟁이라는 참화 속에서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개교하였고, 그 후에도 4번이나 학교를 옮겼으며, 그때마다 학생·교직원·학부모들이 책상과 의자와 물품들을 손수 날랐으며 혼란을 수습하고 모두가 합심하였다. 수년간 학교 주변 경사지에 나무를 심고 가꾸며 흙을 메워 운동장과 화단을 만들고 쾌적한 주변 환경 조성을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속초고등학교를 흔히 영북 지방의 명문고라 한다. 명문고라 함은 역사와 전통이 있으며 후배들이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존경과 배려를 실천하고, 건물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으며, 학교의 상징인 교복을 입고 다닐 때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70년의 세월이 흘러 모교에 대한 소중한 가치와 인식도 많이 흔들리고 잊히는 것이 못내 안타깝고 서글프다. 개교 70년 주년을 맞아 속초고 구성원 모두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가?’
*이 글은 엄경선(속초고 30회)님의 <설악의 근현대 인물사 – 서창하 편>을 참고하고, 속초고 1회 졸업생인 김종규님을 인터뷰해 썼습니다.
고 서창하 초대 속초고 교장
속초고등학교 개교식(1952. 6. 2.)
현 영랑동 양우아파트 터 교사(1955~1965, 졸업기수 2회∼11회)
현 교동 설악중학교 터 교사(1965~1970, 졸업기수 12회∼16회)
현 교동 속초양양교육지원청 터 교사(1970~1988, 졸업기수 17회 ∼ 34회)
현 장사동 교정(1988~현재, 졸업기수(35회∼)
1회 졸업생 김종규(87)님의 현재 모습(2022)
1회 졸업장(김종규)
속초고등학교가 올해 개교 70주년을 맞은 가운데 속초고총동창회가 시내 삼성프레스티지 2층에 총동창회관을 새롭게 마련하고 지난 15일 개관식을 열었다. 김철한 총동창회장이 개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최영택
속초고 교사(속초고 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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