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귀환어부사건 진실규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춘천지방검찰청 속초지청이 다시 창동호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1명에 대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해 주목받고 있다. 속초지청 조영민 검사는 지난 9월 27일 창동호 선원 고 양재흥씨 반공법 위반 판결에 대해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지난 2020년 7월 15일 창동호 선원 4명이 신청한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난 이후, 재심에서 누락된 고 장광남 씨도 속초지청의 청구로 재심이 개시되어 지난 8월 31일 무죄판결이 났다. 고 장광남 씨 재심이 개시된 후 같은 창동호 선원 고 양재흥씨도 재심에서 누락된 걸 확인했지만, 유가족을 찾을 수 없어 재심청구를 할 수 없었다. 이에 동해안납북귀환어부 피해자 진실규명시민모임(대표 김춘삼)은 고 양재흥 씨 사건에 대해 고 장광남 씨와 같이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해 줄 것을 요청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속초지청에서 피해자 양재흥 씨 가족을 찾아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이같이 일선 검찰에서 과거사 피해자에 대해 민원을 받아들여 두 차례나 직권재심을 청구한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속초지청은 재심청구를 통해 “이미 두 차례 진행된 창동호 재심에서 고 양재흥씨가 불법으로 체포, 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인정되어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고, 다른 선원들이 동일 사건에 대해 이미 무죄선고를 받았기에 재심을 개시해 피고인을 구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지난 8월 31일 재심 무죄선고를 받은 고 장광남 씨에 이어 고 양재흥 씨에 대해 재심이 개시되어 무죄가 확정되면, 지난 1972년 납북귀환 후 반공법을 위반한 용공사범으로 내몰린 창동호 선원 6명 모두가 50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된다.
지난 1971년 5월 13일 창동호 선원 7명은 속초 앞바다로 멸치잡이에 나갔다가 납북과정에서 선원 1명이 사망하고 6명은 북에 강제로 납치되어 1년 동안 억류되었다가 다음해 5월 10일 속초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시 수사기관으로부터 혹독한 고문과 가혹행위를 받고는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위반으로 실형까지 살았다. 50년이 지나 피해자 본인은 모두 고인이 되었다. 엄경선 전문기자
----------------------------------------------------------------------------------------------------------------------------------------------------------
고 양재흥씨 창동호 피해 후에도 다시 끌려가 고초 당해
속초 찾은 아들이 전한 피해사실
자신은 연좌제에 걸려 취직 못해
지난 10월 4일 고 양재흥 씨 아들 양창석(68세) 씨와 딸 양창순(66세) 씨가 부산과 경북 울진에서 속초로 찾아와 창동호 선장 아들인 김창권 씨와 만남을 가졌다. 양창석 씨는 이미 속초지원으로부터 작고한 부친의 반공법 위반 사건에 대해 속초지청으로부터 재심 청구가 들어왔다는 통지서와 함께 가족의 의견을 묻는 의견요청서를 우편으로 받았다.
이 자리에서 창동호 재심을 처음 제기한 김창권 씨는 그동안의 진행상황을 설명하고 재심 진행에 대해 조언을 했다. 양창석 씨는 부친 고 양재흥씨가 납북되었다가 귀환한 후 다른 창동호 선원들과 같이 부당하게 구속되어 피해를 입은 후, 다시 1년 후에 어디론가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고 밝혔다. 양 씨는 이날 돌아가신 부친의 억울한 한을 꼭 풀어 달라고 속초시에 진실규명신청서도 함께 접수했다. 이날 양창석 씨를 만나 부친과 가족들의 피해 사실을 전해 들었다.
아버지는 1972년 창동호를 타고 납북되었다가 돌아올 때 나이가 50세이셨다. 속초 영랑동과 동명동에서 거주하다가 부산으로 가서 1986년 12월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납북될 때 나는 18세였고, 여동생은 16세였다. 아버지가 고기잡이 나갔다가 납북된 후, 속초경찰서에서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의 납북 사실을 알려준 게 기억난다.
아버지는 납북되었다가 돌아와 구속되었다가 재판을 받고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왔다. 그러나 다시 1년 후인 1973년 8월 무렵에 다시 어디론가 끌려가셨다. 그 때 아버지가 끌려가는 걸 직접 목격했다. 사복을 입은 젊은 두 사람이 집에 찾아와서는 조사할 게 있다고 아버지를 데리고 나갔다. 식구들도 아버지가 누구한테 어디로 끌려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걱정이 되어 경찰서에 물어보니 경찰서에서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다가 3개월 만에 아버지한테서 편지가 왔다. 대구 달성군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며 대필로 편지를 써서 보내왔다. 아버지는 글을 쓸 줄 모르셨다. 이곳 교도소에 있다며 곧 겨울이 오니 내복을 부쳐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가족들이 대구까지 내려갈 수 없어 그냥 내복만 보내주고 말았다. 우리는 지금도 아버지가 무슨 일로 어느 기관에 연행되어 간 지 모른다. 다만 아버지가 대구 달성교도소에서 1년 정도 형을 살다 나온 건 분명히 기억한다.
나중에 여동생은 아버지로부터 당시 겪었던 일을 조금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자신도 어딘지 모르는 곳에 끌려가서 고문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조사관들은 고춧가루물을 코에 붓고, 머리를 물통에 처박기도 했고, 전기고문도 했다. 조사관들은 “당신, 간첩이 맞는데 왜 아니라고 하느냐? 당신은 간첩이다. 북에서 지령을 받고 내려와서 간첩활동을 했다”라고 압박하고 간첩활동을 시인하라고 윽박질렀다. 아버지는 그냥 이렇게 죽는구나 싶어,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조사관들이 하라는 대로 진술서에 지장을 찍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디 가서 이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다시 또 끌려간다고 겁을 냈다. 아버지는 숨을 쉬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끌려갈 당시 우리는 속초감리교회 동남쪽 아래 동네에서 살았다. 아버지 재판이 열리니 가족들 오라고 통보를 받았으나 가지 못했다. 끌려간 지 1년이 지나 한참 더울 때, 속초경찰서 형사와 같이 대구 달성교도소에 가서 아버지를 모셔왔다.
아버지가 끌려가자, 동네 이웃들은 우리 아버지가 간첩으로 몰려 아마 평생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족은 주변에서 간첩 집안으로 낙인이 찍혔다.
나중에 아버지는 “창동호를 타고 납북되어 북에 끌려가서는 6.25 때 실종되어 죽은 줄 알았던 큰아버지 아들인 사촌을 북에서 만나게 해줘서 그냥 얼굴만 보고 헤어졌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양양 물치리가 고향이다. 납북되어 북에서 친척을 만났다고 해서 귀환 후 더 크게 곤욕을 치른 것 같다.
아버지는 출소 후 한 달에 한 번씩 꼭 파출소에 가서 신고를 해야만 했다. 어디 다른 곳으로 가면 간다고 신고해야 했다. 제사를 지내러 속초시에서 다리 하나 건너면 나오는 양양군 강현면 물치리에 갈 때도 파출소에 가서 신고를 해야 했다.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이후 아버지는 몸 상태가 안 좋아 거의 일을 하지 못했다. 한 2년 정도 그물바리를 잠시 했을 뿐이다. 그때 가까운 갓바다에서 삼중망을 부렸다. 통증이 심해 진통제를 계속 맞아야 했다. 병원약도 쓰고 한의원에서 한약을 받아와 먹었다. 한의원에서는 맞아서 멍든 곳에서 죽은 피인 의혈을 뽑아야 한다고 침도 놓았다. 통증이 심해 한의원에서 한약을 삼제(60첩)를 맞춰 먹었다. 당시 한약 1제가 30만원이었다. 아버지는 밤에 자다가도 고함을 지르고 헛소리를 했다. “나는 아니야”, “살려달라”라고 헛소리를 했다.
아버지는 1970년대 말에 뇌출혈이 와서 반신불수가 되어 7~8년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간신히 지팡이를 짚고 화장실 정도만 갈 수 있었다. 돌아가실 때 온 몸에 검은 멍자국이 보였다. 살아계실 때는 몰랐는데, 어깨와 배 쪽 갈비뼈 등 온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나도 아버지의 납북귀환사건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사우디에 기술자로 다녀오려고 동방콘테이너라는 차량정비 회사에 지원했으나 신원조회에서 탈락했다. 1986년이 되어 37살 나이에 리비아에 한번 다녀왔다. 그 이전에는 신원조회에 걸려 큰 회사에 들어갈 수 없었다.
속초에 살 때 속초경찰서 형사가 나뿐만 아니라 여동생한테도 찾아왔다. 찾아와서는 “아버지가 이상한 행동을 한 게 없느냐. 무슨 이야기를 한 게 없느냐”고 묻곤 했다. 3,4번 정도 찾아온 걸로 알고 있다.
며칠 전 속초지검에서 재심을 청구한다는 전화를 받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과거 아버지의 납북귀환사건에 하도 시달려서 아무 죄가 없어도 경찰이나 검찰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면 우선 겁부터 난다. 속초지검에서 자초지종을 잘 이야기해줬지만, 전화를 받고는 계속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그동안 허리가 아팠는데, 조금 나아져서 속초로 찾아오게 되었다. 아버지 생각에 울컥 눈물이 난다. 몇 십 년만에 이런 이야기를 처음으로 터놓는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