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속초 바닷가마을에서 태어나 6.25전쟁 수복지구가 가지는 지역적 환경 속에서 생각 많던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군문을 선택했고, 이를 천직으로 여기고 지금까지 좌고우면하지 않고 부여된 임무와 역할에 진력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김도균 전 수도방위사령관 전역사 중)
“1984년 1월 까까머리로 태릉 육사의 화랑대 정문을 통과했던” 김도균(육사 44기) 전 수도방위사령관(중장)이 지난달 16일 수도방위사령부 방패연병장에서 전역식을 갖고 34년간 입었던 군복을 벗었다. 육사 생도 시절까지 포함하면 군복과 함께한 세월이 39년에 이른다.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우리 국민들에게 평화를 일상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 군은 강력한 힘으로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해야 합니다. 다시는 이 땅에 6.25전쟁과 같은 참혹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더욱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엄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는 전역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김 전 사령관은 대포초교(55회), 속초중(30회), 속초고(30회), 육사(44기)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정치학 석사)과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박사과정 수료)을 나왔다. 1988년 여름 9사단 백마부대 초임소대장을 시작으로 수도방위사령부 경비소대장, 22사단 해안중대장, 8군단 작전장교, 육사훈육관, 62사단과 73사단 대대장, 연대장, 수도방위사령관 등 전후방 각지에서 지휘관·참모업무를 수행했다. 국방 및 대북정책 분야의 탁월한 전문성을 갖춰 국방부 정책실과 청와대 안보실에서 대북정책담당관, 북한정책과장, 정책기획차장, 대북정책관, 국방개혁비서관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2018년 9.19 남북군사회담 수석 대표
“우리 동해안에서 자란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훈련이 돼 있어요. 사람들 하고 부딪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집중하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근 40년이 후딱 지났더라고요.”
전역 후 고향 속초 집과 서울을 오가며 지내는 김 전 사령관을 가을볕이 따갑던 지난달 30일 중도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전역 소감을 묻자 “한편으론 후련하다”며 “주위에서는 좀 더 진출하지 못해 아쉽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름대로 치열하게 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다. 수방사에서 군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역사에서 “수방사는 저의 군생활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마음의 고향”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전 사령관 재임 중 수방사는 한해 대통령 부대 표창을 2개 분야에서 연달아 수상하는 영예로운 기록을 남겼다.
김 전 사령관은 2018년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남측 수석대표로서 9.19 남북군사합의 체결 당시 핵심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9.19 남북군사합의는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 역시 군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9.19 남북군사합의를 꼽았다.
“9.19 남북군사합의를 진행할 때 이게 나의 신념인지, 굉장히 많이 고민했어요. 나의 신념을 정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수복지역에서 컸고, 우리 지역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평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내가 군복을 입고 해야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전 사령관은 남북군사회담 현장에서 비스마르크가 신성로마제국 지배하에 있던 공국들을 통합할 때 했던 ‘역사의 뒷문으로 빠져나가려는 신의 옷자락을 붙잡아라’란 말을 되새겼다고 한다. “‘역사의 순간이 왔다. 신의 옷자락이 스치고 지나가고 있는데 이것을 잡지 않으면 30년, 50년 후에 언제 또 그런 기회가 올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론 좀 더 실제적 조치들이 이뤄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역사의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좀 더 움켜잡았어야 하지 않았는지.
그는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려는 조치로 9.19 남북군사합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9.19 남북군사합의가 체결된 지 만 4년이 지났는데, 1953년 7월 정전협정체결 후 이렇게 오랜기간 동안 지상해상공중의 접경지역이 이처럼 안정적으로 관리됐던 적이 없어요. 이는 아주 중요한 문젭니다.”
김 전 사령관은 전역 후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한반도평화포럼 주관으로 열린 ‘9.19 군사합의 4주년 기념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가해 “9.19 군사합의만은 남북이 앞으로도 계속 지켜야 된다”고 강조했다. 접경지역 일대가 안정돼야 다음 발자국을 뗄 수 있는 기초가 만들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2007년 남북군사회담 수행원을 시작으로 회담 대표로 여러 번 참가했고 수석대표로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 3차례 참가했다.
“평화 위해 튼튼한 안보 구축돼야”
김 전 사령관은 전역사에서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했다. “평화를 만들고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한 국방력과 튼튼한 안보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6.25전쟁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아마 100년이 걸려도 다시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평화를 이루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고 봐요. 하나는 내가 힘을 길러서 적이 넘보지 못하도록 하고, 만약 넘볼 때는 가차 없이 격멸해서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상호 위협을 감소시켜 평화상태를 만들어놓는 방법입니다. 이 두 가지는 어느 것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같이 가야 합니다. 한마디로 힘을 통한 평화가 꾸준히 유지돼야 합니다.”
그는 동해안 수복지역인 속초와 고성이 평화통일의 가장 상징적인 지역이 되어야 하고 될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평화와 통일의 상징적 지역으로 파주와 문산을 얘기하지만,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천만 메가시티 수도 서울이 5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서로의 체제 생존권이 너무 치열하게 붙어있기 때문이다.
“설악금강관광 구상은 어떤 식으로든 해야 됩니다. 국제사회까지 가미되면 전 세계적인 곳이 되는 거죠. 부산에서 출발한 기차가 런던까지 가려면 가장 큰 장애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야 하는 것인데, 그 병목을 우리지역이 꼭 쥐고 있어요. 이거야말로 얼마나 상징적인 겁니까. 또, 남과 북, 중국, 러시아, 일본을 아우르는 환동해권의 지정학적 중심이 우리지역입니다. 평화와 통일의 과정에서 우리지역을 상징적인 곳으로 만들려면 평화에 관심을 갖고 우리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균형있게 사고하고 균형된 제도를”
김 전 사령관은 지난 7월 모교 속초고에서 후배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지난 20년 동안 속초고에서 육사 입교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걸 몰랐어요. 그 정도로 바쁘다는 핑계로 무관심 했구나 반성이 되더라고요. 지역 인재가 다양하게 구성될 수 있도록 좀 더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저도 관심을 갖고 봉사해야죠.”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당분간 쉬면서 관심 가졌던 것들을 객관적 물리적 거리를 두고 정리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대학교 특강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덧붙여 평화를 향한 의지도 나타냈다.
“한반도에 6.25와 같은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기초로 평화를 위한 역할을 해야죠. 나처럼 군생활을 오래 한 사람은 평화 얘기를 하지 못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봐요. 직접 전쟁을 체험하지 않았지만, 전쟁의 실상을 누구보다 고민한 사람들이 평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균형 되게 사고하고 균형되게 국익을 위해 제도가 만들어지도록 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균형감을 잃는 리더가 돼서는 안 됩니다. 특히 다양화되고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균형이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요.” 장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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