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은 공평하고 올바름으로 공정의 기준은 다양하다. 대체로 ‘비례성’과 ‘형평성’, ‘효율’과 ‘평등’으로 인식한다고 알려져 있다. 비례성은 ‘노력에 따른 보상’을 중시하는 반면, 형평성은 출발선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공정을 인식한다고 한다. 정책적 차원에서 공정은 비례성을 강조하는 입장과 형평성에 방점을 두는 입장으로 구분된다. 공정함을 비례성으로 인식하는 보수진영은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로서 정당한 보상을 중시한다. 반면 형평성으로 공정을 인식하는 진보진영은 경쟁자 간에 차이 나는 출발선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공정을 강조한다.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는 것은 전통적인 보수진영의 논리다. 반면 진보진영은 ‘효율’만 따지는 보수에 맞서, 경쟁에 참여하지도 못하는 소외자와 경쟁에서 낙오한 약자를 배려하는 ‘평등’을 주장한다. ‘비례’와 ‘보편’의 원리라고 한다. ‘효율’과 ‘평등’, ‘비례’와 ‘보편’은 공정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예컨대 형평성을 강조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내세우며 인천국제공항의 전 직원 정규직을 추진했다. 하지만 청년세대는 노력에 대한 성과주의에 반한다며 격렬히 반대했다.
2019년에 출간한 이준석의 대담집 《공정한 경쟁》은 대한민국 보수의 가치에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그는 ‘실력주의’야말로 21세기의 시대정신이라고 역설했다. 학교에서의 등수 경쟁을 "열심히 공부하는 자가 이기는 게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고 표현했다. 정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도 그는 "우리 당은 정치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라도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며 능력에 따른 인재 선발을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최근에는 마이클 샌델의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을 계기로 ‘능력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능력주의는 1950년대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고안한 개념이다. 세습 신분 중심의 사회에서 능력 중심의 사회로 이행하는 합리적 과정이란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성공을 오직 개인 능력의 산물로 여기는 성격도 내포됐다. 한국에서의 능력주의는 후자에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근 몇 년간 공정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능력주의의 일종인 ‘시험만능주의(Testocracy)’라는 것이다. 대학 서열화에 맞춰진 입시 과정이 자리 잡으면서, 개인의 능력을 수치화할 수 있는 시험이 가장 중요한 평가 방법이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한국 사회에서 학벌주의와 능력주의는 끈끈하게 결합했다.
어떤 연구위원은 “국내에서는 오히려 최근 들어 능력주의 담론이 더욱 강화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1960∼70년대 고도성장이 이뤄지던 시기에는 능력주의가 건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있었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저성장 혹은 마이너스 성장 기조에 접어들면서, 노동 시장에서는 극소수만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능력에 따른 차별에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인식의 변화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주의는 오히려 최근 들어 공고해진 모양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매년 실시하는 교육여론조사에서 한국의 학벌주의가 심화될 것이란 응답은 2017년 전체 17.8%에서 지난해 26.4%로 8.6%포인트 늘어났다. 반대로 약화될 것이란 응답은 같은 기간 15.0%에서 11.4%로 3.6%포인트 감소했다. 대학을 일류, 이류 등으로 분류하는 대학 서열화 또한 심화될 것이란 응답은 20.8%에서 26.7%로 늘어났지만, 약화될 것이란 응답은 12.1%에서 11.3%로 소폭 줄었다.
이준석은 자신에게 부여된 시대정신을 묻는 질문에 “실력주의”라고 답했다. 능력을 평가하고, 이러한 평가에 따른 결과야말로 공정한 것이란 그의 생각은 책 곳곳에서 나타난다. ‘경쟁이야 말로 공정한 것’이란 결론이다. 정의나 공정을 이야기하면서 '능력주의(meritocracy)'를 빼고 말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능력이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결과를 얻는 것을 말하고, 능력주의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사회는 지적 능력의 상대적 차이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거나, 시험에 낙방하거나 경쟁에서 패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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