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재단의 2022년도 강원문화예술 전문예술단체 지원사업으로 설악문화예술포럼(회장 이상국)이 주최·주관한 ‘문학으로 본 수복지구 이야기’ 심포지엄이 지난 16일 오후 3시 속초문화예술회관 소강당에서 성료됐다. 80여명이 자리해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번 심포지엄의 의미를 발제문 위주로 정리해본다.
염무웅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는 심포지엄 자료집 <수복지구>에 기고한 ‘던져진 땅에서 살아내는 일―수복지역 문학에 관한 단상(斷想)’에서 ‘1953년 휴전 이후 남쪽에 속하게 된 곳을 통상적으로 수복지역이라 부른다“며 “하지만, ‘수복’이란 임진란 때 왜군에게 점령됐던 지역을 되찾듯이 적에게 빼앗겼던 땅을 되찾거나 잃어버렸던 권리를 회복하는 것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그런데 6.25 이전의 속초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미국과 소련이 자기들 멋대로 38선을 그어 한반도를 분단 관리하기로 하면서 저절로 이북에 속하게 된 것이지, 북한이 남한으로부터 빼앗아간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엄밀하게 따지면 ‘수복지역’이란 용어는 냉전시대의 흔적이 담긴 부적절한 용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썼다.
“38선으로 부엌은 이북, 방은 이남으로”
이날 심포지엄에서 4명이 발제를 했다. 첫 번째 발제자인 엄경선 속초향토연구가는 발제문 ‘분단시대 동해안 수복지구 주민 수난 이야기’에서 대한민국과 역사적 경험이 다른 수복지구란 큰 주제에 소제목으로 전쟁과 분단의 피해자인 수복지구 원주민, 북한 주민으로 겪은 한국전쟁 경험, 인민군 퇴각 때 마을사람 1백여명을 구한 정광근 씨, 수복지구 원주민의 고통과 절망 등을 다뤘다. 특히 해방 후 38선으로 한 마을 한 집이 남북으로 갈린 이야기를 소개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자 양양 주민들은 해방의 큰 기쁨에 감격했다. 속초 상도문의 유학자 매곡 오윤환 선생은 다음날 일기에 ‘세상일이 모두 정결해졌다(時事乾淨)’라고 당시의 소감을 기록했다. 이틀 후인 1945년 8월 17일에는 속초읍 주최로, 8월 18일에는 양양군 주최로 주민대회를 열어 만세를 부르며 해방을 환영했다. 상도문마을 사람들은 일주일 후인 8월 22일에도 마을 정자인 학무정에 나와서 만세를 외쳤다. 일본인들이 다수 거주했던 대포항에서는 마을 청년과 학생들이 마을 언덕에 자리 잡은 신사부터 부수었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만세를 부르고는, 행정실에 있는 일본 천황의 사진을 끌어내렸다. 이어 주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속초읍사무소에서 열리는 8.15 경축 행사에 참가해 만세를 불렀다. 양양 지역에는 해방된 지 2주일 만인 1945년 8월 말 소련군이 들어왔다. 38선을 경계로 남쪽에는 미군이 들어오고, 북쪽에는 소련군(로스케)이 들어와 대치했다. 38선이 가로지르는 양양군 현북면 잔교리는 마을이 남북으로 나뉘었다. 잔교리 297번지(북위 38.001296155484)에 자리한 김순희 씨 집은 부엌은 이북, 방은 이남으로 나뉘었다. 남북의 경계가 된 잔교리의 주민들은 더 남쪽으로 이주하고, 마을에는 경찰과 미군이 주둔해 경계를 서게 되었다.”
수복지구 주민의 아픔을 담은 시 코너엔 이상국 시인의 시 ‘대포동 吳氏 일가’를 다뤘다. 그 시는 1987년 1월 10일 속초문화원이 발간한 <속초문화 3호>의 기획 특집 ‘대포 대포항 대포인’ 서두에 실렸고, 1989년엔 ‘수복지구에서-오씨일가의 절손(絶孫)’이라는 제목으로 ‘내일로 가는 소’에 실렸다. 이성선 시인은 1993년 12월 속초문화원이 발간한 <속초문화 9호>에 자작시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게재했다. 이성선 시인은 <속초문화>를 통해 그동안 지역에서 금기시되었던 북피자 가족의 아픔을 당사자의 목소리로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두 번째 발제자인 이경자 소설가는 ‘고향이 <수복지구>가 되었다’는 제목의 발제문에서 “양양 땅에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잔교리의 누구네 집과 원일전리의 누구네도 한 집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형국이 됐다. 지도를 책상 위에 펼쳐놓고 38도 지점에 금을 그을 때 그들에게 그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형편이 가슴을 건드리기나 했을까. 생명에게 가해지는 모든 종류의 이별은 똑같다는 자연의 이치를 느낄 수나 있었을까. 그런 걸 생각한다면 지구에 무슨 전쟁이란 재앙이 있을까마는……. 그저 조상대대로 그곳에 살고 있었으므로, 붉은 패 땅에 살던 사람들. 물론 그런 현실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은 38선을 몰래몰래 넘어 흰 패들이 사는 이남 땅으로 가긴 했다”고 썼다.
“분단희곡 ‘사실적 묘사’ 측면 상당한 성과”
세 번째 발제자인 고형렬 시인은 발제문 ‘분단 칠십 년, 동해 관동(關東)에서 보는 우리 시의 성취와 과제’에서 “분단극복의 한 방안으로서 지역 문학을 되찾는 길을 제안한다. 그것은 ‘한국시’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 우리 시를 규정하는 비평 방식을 지양(止揚)하고 지역별 특수성을 발견하여 의미를 확장하고 향유하는 길이다. 영변의 ‘진달래꽃’과 김기림의 ‘나비’, 고성의 ‘분계선’이 지역 문학의 주제이다. 특히 삼팔선과 분계선 사이의 금강과 설악 일대는 문학촌, 문인 묘지를 비롯한 세계평화공원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분단의 아픔은 2만8,800개가 넘는 마을에서 발생했다. 바로 그 마을에서 우리의 시인들이 탄생했다. 우리 시는 하나의 산줄기 아래 수많은 어느 구릉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했다. 그곳의 풍광과 역사, 소문, 집과 부모와 벗들이 우리를 길렀다”고 했다.
마지막 네 번째 발제자인 최재도 극작가는 발제문 ‘수복지구에서의 실향민 삶을 그린 <분단 희곡>’에서 ‘수복지구 속초’를 무대로 한 극작가 이반의 희곡으로 망향의 한이 종식되는 시간 <그날그날에>와 실향의 삶이 머무는 공간 <아버지 바다> 이념의 희생자들에게 수여된 <붉은 훈장>을 소개하고 박제처럼 남은 ‘수복지구 나그네들의 삶’ 등을 이야기했다. 최 작가는 또 발제문에서 “수복지구에서의 삶을 그린 ‘분단 희곡’들은 ‘분단 소설’에 비해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본질을 본격적으로 집요하게 추구하지 못한 게 아쉽다라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사실적 묘사’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한 시대의 상황을 정밀하게 그려 냈고, 특징적인 사건들을 근접해서 추적했으며, 당대 사람들의 사유와 감정에 깊숙이 접근했다. 특히 극작가 이반의 ‘분단 희곡’은 ‘수복지구 속초’에 살았던 전쟁 난민들의 처참한 삶을 박제처럼 남겨놓았다. 이들 작품 덕에 우리는 ‘역사적 격변기 때 민중의 삶’을 언제고 확대해 살펴볼 수 있으니 어찌 그 가치가 적다고 할 것인가”라고 썼다.
4명의 발제에 이어 박철 시인과 한상호 시인, 이선식 시인, 양용석 속초문화원 사무국장이 각각 토론을 진행했다.
이수영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문학으로 본 수복지구 이야기’ 심포지엄이 지난 16일 속초문화예술회관 소강당에서 열렸다. 사진 왼쪽부터 발제자 엄경선·고형렬·이경자·최재도, 좌장 이상국, 토론자 이선식·한상호·박철·양용석.
----------------------------------------------------------------------------------------------------------------
<시>
대포동 吳氏일가
내친구 오강환은 동해 어로 한계선 근처에서 명태 잡다 납북되어 귀환된 후 무슨 귀신이 씌웠는지 술만 퍼 마시다 간이 부어 스물아홉에 꺾였는데 그래서 대포동 오씨 일가는 절손이 되었다.
그의 드장날 밤 바다바람에 꼬질대 휘청거리는 차일 밑에서 화로를 끼고 앉은 나는 한 튼튼한 어부가 바지가랭이 부여잡는 홀어머니를 버리며 술과 패배로부터 그렇게 분리되는 것을 보았다.
이 마당에 그의 형 오국환은 어디 있는가. 전쟁나던 해 유월, 말 타고 바람처럼 들렀다가 38선으로 몰려간 인민군 장교 그의 형 오국환은 어느 족보에 있는가. 그길로 남쪽 어느 샛강 풀이 되었는가. 살아 북쪽 돌아가 우리의 적일 오씨의 씨를 계속 낳고 있는가.
식민지 시대 제국주의 탄광에서 징용살다 물간 생선되어 돌아와 쓰러진 선천 오상근과 그의 나라 다른 두 아들의 멸실을 위해 어느 큰 무당이 하늘 땅 뒤섞이는 굿 한판 벌릴 것이냐,
우리가 땅을 선택하여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다해도 그 형이 말 타고 유월 밤 새 풀을 밟으며 오거나 그 아우가 바다의 덫을 피해 배를 타고 속초바다에 다시 올 리 없다면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낳고 아버지가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계속하여 완전하게 씨를 묻는 해방의 땅은 어디 있는가.
적이 적을 몹시 그리워하는 반도, 바다바람에 큰 꼬질대 휘청거리는 하늘밑에서 나라의 어머니가 슬피 우는데 나는 피 가득한 장화를 끌며 한 튼튼한 어부가 침묵과 도피로부터 그렇게 해방되는 것을 보았다. 이상국 / 시인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