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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고성·양양지역 마지막 재단사 박수영 골덴양복점 대표
반세기 넘게 양복점 지켜…“사랑방 같은 곳으로 이어갈 것”
등록날짜 [ 2022년09월26일 11시16분 ]

“강한 자가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자가 강한 거더라.” 2006년 영화 <짝패>에서 김범수 배우의 대사로 기억한다. 16년 전 아주 오래된 영화의 대사였지만 어찌나 강렬했던지 아직도 머리에 각인돼 있다. 산다는 것 그리고 살아남는 것은 인류를 지금까지 유지시켜 온 가장 큰 원동력이다. 
의류 분야에서는 기성복 시장이 맞춤복 시장을 빠르게 대체했다. 그런 와중에도 맞춤양복점을 50년 넘게 운영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속초·고성·양양지역의 마지막 재단사 박수영(74) 대표를 만났다.   
비가 곧 한바탕 쏟아질 것 같은 지난 16일 오후, 속초 중앙로 문우당서림 맞은 편에 위치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세련돼 보이는 박 대표가 반갑게 맞았다. 작은 양복점이지만 정갈하게 줄 맞춰 놓은 정장들과 가봉 단계에 있는 옷, 이미 만들어져 고객을 기다리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셔츠, 그리고 진열장에 다양한 원단이 진열돼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거친 자식 같은 양복을 보여주며 51년 역사가 담긴 양복점 이야기를 꺼냈다.
“한때는 속초에 50여 개의 양복점이 있었어요. 그땐 장사가 잘 됐고 돈도 꽤 벌었죠. 덕분에  4남매(1남 3녀) 다 키우고 공부도 시켜 출가시켰어요. 그 많던 양복점이 이젠 다 없어지고 속초·고성·양양을 통틀어 나만 이어가고 있어요. 나이 들어 자연스럽게 그만두기도 하고, 기성복 시장에 밀리면서 일찌감치 다른 업종으로 갈아타기도 했죠.”

양복기술 배워 1972년 개업
박 대표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고등학교 진학 대신 선택한 첫 번째 직업은 재단사가 아니었다. 약재상에서 보조로 일하고 있을 때 우연히 양복 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양복 기술을 배우면 어떨까 싶었다. 노학동에서 도시락을 싸서 자전거 타고 다니며 기술을 익혔다. 재미도 있고 적성과도 잘 맞았다. 큰 도시로 나가 기술을 더 익히고 싶었지만 연로하신 할머니를 모셔야 했기 때문에 대도시에서의 배움은 포기를 해야만 했다. 
“양복점에서 처음 일하면서 봉급으로 1,000원을 받았어요. 적은 돈이라도 할머니께서 꼬박꼬박 저축을 했고 한 5년쯤 배워 20만원으로 양복점을 개업했어요.” 
양복점은 박 대표가 24살 때인 1972년에 중앙도로변에 개업했다. 이후 양복점이 호황기를 누리며 80년대 초까지 속초에 50여 곳의 양복점이 생겨났다. 그때는 휴일이 없을 정도로 일했다. 그 당시 양복점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단합이 잘 돼 함께 여행도 다녔고 전국의 세미나도 참가해 정보를 공유했다. 가장 재미있었던 시기로 기억했다. 전성기도 잠시 1990년도에 접어들면서 기성복과 기능성 옷들이 대량 생산되면서 양복점 이용 고객은 급격히 줄었다. 가게 수 또한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야기하는 중에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한 각자를 꺼내 들었다. 박 대표는 “이놈이 나와 함께 수없이 많은 사람의 옷을 만들었다”며 “양복은 입는 사람 체형에 맞게 제작한다. 멋 내는 것에 치중하면 유행을 타 오래 입지 못한다”고 말했다. 
양복 제작 과정은 △고객 몸 치수 재기 △치수 잰 것을 종이에 뜨기 △천에 맞춰 오려놓기 △만든 가봉을 고객에게 입히기 △고객에 맞춰 수정하기를 거쳐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사람은 키도 다르고 체형도 모두 달라 똑같이 만들 수 없다”며 “뚱뚱한 사람은 날씬하게 보일 수 있고, 마른 사람은 넉넉하게 보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맞춤 양복은 체형에 따라 보완이 가능하다고 했다.

대한민국 명장모임 회원
박 대표는 굳건하게 지켜온 경륜과 기술을 인정받아 2017년 복장협회에서 ‘장인상’을 수상했다. 테일러피아(양복 매거진)의 모니터 요원으로 선발돼 활동하고 있고, 대한민국 명장 모임(회원 15명)에 회원으로 등재돼 친목 도모와 기술 교류도 하고 있다.
박 대표는 1948년 노학동 도리원에서  태어났다. 3살 무렵 한국전쟁 때 피난을 떠나는 부모와 생이별하며 이산가족이 됐다. 농사를 짓는 할머니와 살았고, 설악국민학교(현 온정초등학교)를 다니며 4학년 때부터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는 등 어려운 생활을 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 진학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있을 때 5학년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속초 중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훗날 양복점을 개업하고 강릉에 살고 계신 은사님을 찾아 사이즈를 재고 가봉해서 양복을 만들어 선물했다. 그는 “돈만 탐하지 말고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돼라”는 은사님 당부대로 과거 JC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는 자율방재단에서 활동을 했다. 현재는 노학동 7통 통장을 맡아 지역주민들에게 봉사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박 대표는 “앞으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옷을 만들 생각이다. 옛날 함께 양복점을 운영하던 친구들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사랑방 같은 양복점으로 운영해 추억을 담아 가는 쉼터로 이어갈 생각”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성낙규 인턴기자 nk_2232@naver.com


박수영 대표가 준비돼 있는 다양한 원단을 설명하고 있다.  

 


골덴양복점 박수영 대표가 고객 치수를 종이에 그리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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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규 (nk_2232@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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