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 꽃 피어/ 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1995년에 발표된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 피어’는 전 국민의 애송시 중 하나로 유명하다. 특히 기관장이나 기업의 리더들이 사내교육이나 강의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시이기도 하다.
필자 또한 교육장 재임 시절, 아이들에게 강의를 할 때 즐겨 인용하던 시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이 시가 전 하는 메시지가 간단명료하면서도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필요로 하는 가치관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오늘 오래된 이 시를 칼럼의 주제로 삼은 이유는 얼마 전에 있었던 문화도시 1차 현장평가에서 느꼈던 필자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젊은 친구들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필자의 본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40년 외길의 교육자이다. 그리고 부캐는 시를 쓰고, 칼럼을 쓰고,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전문예술인이다.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50년 역사를 가진 ‘갈뫼’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자긍심을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비애감을 느낀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지역의 문화사적 자취를 잘 모르는 이들은 흔히 우리 지역을 ‘문화의 변방’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인구 8만에, 60여년 도시력을 가진 속초에 50년 역사의 동인 문학 ‘갈뫼’가 있고, 해마다 전국대회를 휩쓸고 있는 5개의 연극 단체가 있으며,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국악단체 ‘런 갯마당’이 있음을 귓등으로 흘리는 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런 지역의 문화에 대한 인식이 늘 안타까웠다. 다른 하나는 젊은 친구들이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싶어 고향에 왔다가 문화예술이 ‘밥’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 부대끼다 다시 떠나는 모습을 보며 가슴 아픈 적이 많았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지역의 젊은 친구들이 문화예술 활동을 보다 나은 환경 속에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필자의 남은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4년 전부터 속초시가 시작했고, 지금은 속초문화관광재단이 추진하는 ‘문화도시’ 사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시간을 투자했다. 속초시와 재단 직원, 관심 있는 시민의 노력으로 올해도 작년에 이어 1차 서류 심사를 통과했고, 2차 현장 실사 평가가 열흘 전에 있었다. 그 평가회 자리에서 필자는 ‘문화도시 추진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참가했지만, 실제로는 지역원로예술인으로 심사위원들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였다.
현장평가 시간이 끝날 무렵 마지막 한 분 이야기만 더 듣고 마무리하겠다는 평가위원의 말을 듣고 마이크를 잡았다. 미리 준비해 간 반성문 멘트를 읽다가 문득 울컥하는 바람에 결국 마무리를 제대로 짓지 못했다. 필자가 울컥한 이유는 지난 4년 간의 시간 속에서 필자가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필자는 단언컨대 ‘내가 꽃 피고, 내가 물 들면’ 풀밭이 꽃밭이 되고, 온 산이 붉게 물들 거라는 믿음으로 그 시간들을 견뎌왔다. 그러나 필자도 사람인지라 그동안 필자의 진심을 왜곡하고 뒤에서 수군거리던 이들과 떠나간 젊은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라 순간 울컥 목이 메어 왔었다.
‘아직 내가 피운 꽃이 덜 피어서, 내가 아직은 물이 덜 들어서’ 그러리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 명이라도 더 ‘너도 꽃 피고, 너도 물 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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