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무형문화재 20호 도문농요전수자 오순석 어르신이 나타나자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본다. 조금 전까지 밭일을 하다 왔다는 어르신은 말끔한 옷차림으로 아이들에게 상도문 마을 이야기를 해준다. 매곡 오윤환 선생의 손때 묻은 학무정부터 속초도문농요까지 상도문마을의 문화자원 이야기가 나온다. 10여분 남짓의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서서히 지치는 모습이다. 오순석 어르신이 유창한 이야기꾼이 아닌데다 농사나 마을자원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 탓이다. 마지막 순서로 어르신이 속초도문농요 중 김매는 소리를 들려준다. ‘매어나 주게’ 나즈막하면서 느린 장단이 구수한 목소리로 흘러나오자 몇몇은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각자 손에 쥔 ‘도문농요 설명 팸플릿’의 노래 가사를 본다. 어르신의 설명이 끝난 후 사회자가 ‘김매는’ 행위와 느리고 유장한 가락의 이유에 대해 보충설명을 해준다.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 20여명의 학생들이 모두 즐기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상도문 마을과 도문농요 두 단어만큼은 가슴에 새겼을지도 모른다.
오토매틱 목공예로 마을자원 표현
지난 8월 9일 속초도문농요전수관에서 펼쳐진 <도문농요 아트캠프> 수업의 첫번째 시간 장면이다. 이날 활동은 속초도문농요를 지역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전수관의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기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참여자는 속초시가 운영하는 ‘드림스타트’ 소속 학생 40명이었다. 아직 마을문화나 농사 이야기가 귀에 착 달라붙지는 못하지만 지역의 문화자원을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려주기 위해 올해 처음 시작한 사업이다.
오순석 어르신의 마을 이야기와 농요가 끝난 후 조성호 작가를 비롯한 공예강사들이 학생들과 오토매틱 목공예를 했다. 조 작가는 학생들에게 나무판을 하나씩 주며 상도문 마을과 설악산, 도문농요 등 어르신의 이야기에 담긴 내용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마을 자원을 미술로 표현하는 작업인 셈이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나무판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학년보다는 저학년의 몰입도가 높았다. 허수아비와 나무, 숲, 농사짓는 사람, 소 등의 소재가 많았다. 단순히 나무판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는 않았다. 과학적 원리를 목공예에 활용한 오토매틱 공예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그린 소재는 선생님의 손을 거쳐 제대로 된 모양이 나왔고, 준비된 나무판에 설치하여 자동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수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의 반응과 경험은 드라마틱했다. 마을자원 이야기가 나올 때는 다소 부담스러워 했지만 직접 손으로 과학과 예술을 함께 경험하는 오토매틱 공예에서는 적극 참여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업은 속초도문농요전수관이 지역의 학생들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고민을 하며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농요’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며 마을자원의 가치를 깨닫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물론 그 과정은 자발적인 참여와 깨알 같은 재미이다. 지루한 옛 전통의 프레임으로 ‘전통 생활문화’를 접근하게 만들면 쉽게 사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수관의 다양한 활용 기대
속초도문농요전수관은 지난해 7월 개원 이래 도문농요 전수라는 본연의 역할뿐만 아니라 연극과 국악공연 연습장소, 각종 문화교육 워크숍 장소로 활용돼 왔다. 오는 8월 22일부터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지역문화경영과정이 3박 4일간 개최될 예정이다. 이번 워크숍은 상도문의 마을자원을 활용하여 전국에서 온 30여명의 문화원 직원이 실제 문화기획을 하는 수업이다. 또한 내년부터 문화재청의 ‘생생 문화재’ 사업을 하기 위해 공모신청을 한 상태이다.
속초시는 속초도문농요전수관을 중심으로 상도문 마을 주민의 삶이 문화가 되고 예술이 되어 생활예술의 가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사업의 결과는 문화를 통한 지역발전이다. 마을자원의 보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현대적인 활용을 통해 관광발전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속초도문농요전수관의 다양한 활용을 기대한다.
김인섭 속초문화원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도문농요 아트캠프’ 저학년 결과물. 설악산과 농사문화라는 상도문 마을의 자원을 활용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