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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 관악부 이야기(9) / 속초여중에 관악부 창단이 어려워서
의지대로만 안 되는 게 인연… 사람과 학교와 관악부와 인연도
등록날짜 [ 2022년07월26일 11시01분 ]

교단을 떠난 것도 관악부 때문에?
필자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학교가 속초여중(지금의 해랑중)이었다. 속초여중에서는 딱 1년만 근무했었다. 겨우 1년 만에 퇴직을 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오해도 좀 받았다. 학교에 무슨 큰 불만이 있어서인가 하는. 
필자는 애초부터 정년까지 근무할 생각이 없었다. 정년까지 가기에는 필자의 교육적 에너지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였다. 그렇다고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 1년 만에 퇴직을 할 생각도 없었다. 3년 정도는 근무할 생각이었다. 그게 새로 부임한 학교에 대한 관례적인 예의였다. 그런데 필자에게 그 3년은 관악부 창단을 전제로 한 3년이었다. 
필자는 주로 고등학교에서 관악부 지도교사로 근무를 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관악부원들 중 대부분은, 생전 악기를 처음 접해보는 왕초보들이었다. 그래서 기초부터 가르쳐야 했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중학교 때 관악부 활동을 했던 부원들이었다면, 초보 과정은 건너뛰고 좀 더 난도(難度)가 높은 곡 연습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관악부는 중학교에 비해 연습 시간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였다.  인문계 고등학교라면 특히 더. 그리고 고등학생은 악기에 대한 적응력도 떨어진다. 악기는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배워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9년 3월, 속초여중으로 발령이 났을 때 관악부 창단을 생각하게 되었다. 속초여중은 인력풀이 진짜 좋았다. 강현중은 필자가 근무할 당시 전교생이 70여 명 정도밖에 안 되었다. 그런데 속초여중은 900여 명이나 되었다. 게다가 재학생들 중에는 영랑초등학교 관악부 출신도 꽤 많았다. 그 정도면 최적의 조건이었다. 창단만 하면 1년 이내에도 웬만한 행사는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시(市) 지역 학교는 덩치만 클 뿐
그런데…. 시(市) 지역 학교는 지역 교육청이나 해당 지자체의 재정 지원 혜택 같은 게 거의 없었다. 학교의 규모가 크니 각 학교마다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먼저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교육 지원이나 재정 지원은 읍면 지역의 농어촌 학교가 우선이었다. 그러므로 속초여중에서 관악부를 창단하려면 학교 자체 예산이나 동문 지원 예산으로 해야 했다. 음악교사 혼자 힘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면 지역 학교인 강현중학교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학교 상황이 이러한데도 학부모님들 중에는, 시 지역 학교의 교육 여건이 무조건 더 좋은 줄 알고 계신 분이 꽤 많으시다. 그래서 속초와 인접한 강현면의 경우, 자녀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속초 지역 학교로 슬금슬금 전학을 보내신다. 
중학교 때 전학을 보내는 학부모님도 계시다. 강현중에서 근무할 때였다. 관악부 신입 부원 중에서 트럼본 파트에 김혜린(가명)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소질도 뛰어나고 연습도 열심히 하는 우수부원이었다. 그런데…. 혜린이가 어느 날 속초여중으로 훌쩍 전학을 가고 말았다. 혜린이 말고도 트럼본 파트에 또 한 명의 신입 부원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재능은 있었으나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결국 그 아이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관악부를 그만두고 말았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해에는 트럼본 파트에 2학년 부원이 한 명도 없었다. 그 바람에 그다음 해부터 트럼본 파트에 아주 큰 구멍이 생기고 말았다. 2·3학년 부원이 없는 파트가 된 것이다. 말하자면, 트럼본 파트의 대(代)가 끊어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행사를 치르느라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혜린이 외에도 관악부원 중 속초여중으로 전학을 간 아이가 또 있었다. 혜린이 2년 후배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아이는 그래도 당시 여유가 좀 있었던 클라리넷 파트였다. 그나마 타격이 좀 덜한 경우였다. 
  
속초중 관악부 재창단은 인연이 안 닿아서 
필자가 초중고를 다녔던 1960대와 1970년대는, 속초중 관악부와 속초여중 관현악부의 전성 시절이었다. 당시, 이 두 학교의 합주부는 우리 지역 학교 음악 문화 활성화에 많은 기여를 했었다. 그런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지금은 두 학교 모두 합주부가 없다. 속초중은 필자의 모교이기도 해서 더더욱 아쉬움이 크다. 
 그런데 속초중 관악부가 재창단될 뻔한 적이 있었다. 2000년도 중반 무렵 김영복 교장 선생님이 재직할 때였다. 김영복 교장 선생님께서 강현중을 방문하신 적이 있었다. 강현중 관악부 창단식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날, 김영복 교장 선생님은 강현중 관악부의 창단에 아주 신선한 충격을 받으셨다. 면 단위의 아주 작은 학교에 관악부가 창단되었으니 그러실 만도 했다. 김영복 교장 선생님은, 속초중에도 관악부 창단을 했으면 좋겠다고 진지하게 제안하셨다. 
“다음에는 우리 학교로 와서 함께 관악부를 꼭 좀 만들었으면 합니다.”
김영복 교장 선생님과는 교생 실습 때 첫 인연을 맺었다. 먼저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필자는 모교인 속초고로 교생 실습을 나갔었다. 그때 김영복 선생님은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셨는데, 필자에게는 한참 선배 되시는 분이셨다. 하지만 초면부터 편안함과 친밀함이 느껴졌었다. 소탈하신 성품에 같은 예능과목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6주간의 교생 실습이 모두 끝나던 날이었다. 그날 저녁, 김영복 선생님은 심경보 음악 선생님과 함께 송별 식사 자리를 마련해주셨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그 후로도 같은 지역의 예술인으로서 계속 이어졌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같은 학교 교직원으로 인연은 이어지지 못했다. 강현중 관악부와 인연이 너무 깊어서였다. 그 학교에서 근무 만기 5년을 다 채우고서야 속초 지역 학교로 옮기게 된 것이다. 그 사이, 김영복 교장 선생님의 정년과 함께 속초중 관악부 재창단도 무산되고 말았다. 필자로서는 불가항력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김영복 교장 선생님께는 늘 죄송스럽다. 사람의 의지대로만 안 되는 게 인연인 모양이다. 사람과 인연도, 학교와 인연도, 그리고 관악부와 인연도…. 

임수철 
작곡가·전 음악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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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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