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상도문마을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을 끝자락에 독특한 집이 있다. 이 집에서 시작하는 골목은 다른 골목보다 유난히 넓고 훤하다. 옛날에는 빨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도랑이 있는 좁은 골목이었으나 언제인지 모르지만 복개 공사로 지금의 골목길이 됐다고 한다. 시원하게 뻗은 골목길 옆 돌담 위에는 빼곡히 늘어선 소주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돌담과 소주병 사이사이에는 조약돌에 컬러풀하게 그림을 그린 작은 작품들이 반기는 듯하다. 골목 입구, 이 집의 돌담 앞에는 상도문돌담마을 상징과 장난기 가득한 이 빠진 어린이 얼굴을 형상화해 만든 항아리 작품이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예사롭지 않은 조형물들이 집 안쪽에 무언가 있을 것 같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집은 돌담에 벽돌로 쌓은 담이 이어진다. 여기서부터는 주인의 예술적 센스를 느낄 수 있다. 밋밋하고 재미없는 벽 앞에 작은 화단을 조성했고, 화단에는 꽃과 나무를 심었다. 중간중간에 폐 가스통을 활용해 만든 재미있는 캐릭터와 나무를 깎아 색칠한 동화 속 주인공이 집안으로 안내하는 듯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입구에는 ‘보고픈집’이라고 쓴 오래된 나무간판이 걸려 있고 아래에는 손글씨로 ‘구경하세요’라고 써놨다. 이 또한 집주인의 배려라고 한다. 2년 전 KBS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한바퀴’ 70회에 소개된 후 많은 이들이 방문하고 있다. 타인의 집 마당에 선뜻 들어가기를 주저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이 문구를 적어 놨다. 이 집은 대문이 없다. 누구나 들어와 구경하고 그네도 탈 수 있다. 때론 주인과 마주하는 날이면 달달한 믹스커피도 한잔 얻어 마실 수 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사람 좋아하고 인정 넘치는 김정배(55) 작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김 작가는 도문동에서 태어났다. 설악초, 설악중을 거쳐 춘천직업훈련원에서 목형기술을 익혔다. 잠시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고향인 도문동으로 돌아왔다. 결혼 전에는 목형 기술을 이용해 실내 인테리어 일을 했지만,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결혼 후에는 지금의 가스배달 기사로 30년째 일하고 있다.
“부모님이 동네에서 소문난 잉꼬부부였어요. 어머닌 항상 집에 꽃을 가꾸고 길렀어요. 아버지는 설악산 반달곰 목각을 만들어 팔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어요. 저의 손재주와 화초 가꾸는 능력은 모두 부모님께 물려받은 거죠.” 그는 두 명의 자녀가 모두 요리사라며 손재주가 집안의 내력임을 덧붙였다.
작가라는 호칭에 많이 쑥스러워 했다. 김 작가는 손재주가 좋다. 무엇이든 특이한 것이 있으면 눈에 담아와 집에서 만들어 본다고 한다. 소주병으로 장식을 한 것도 5년 전 남이섬 여행에서 힌트를 얻었다. “여행을 좋아해 자주 다녀요. 춘천 남이섬에서 본 휜 병에서 힌트를 얻어 병으로 부스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배달 일을 하면서 하나둘 모았고 동네 주민들이 모아주기도 했어요.” 정작 김 작가는 술을 입에 대지도 못한다며 웃었다. 마당에는 옛날 전화기와 화초, 벽화, 그네가 있고, 병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놨다. 여행 중 잠시 쉬어가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이곳은 주로 가족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여행 중 잠시 들러 꽃을 보고 그네에서 앉아 쉬었다 간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다니고, 배달 일을 하면서도 주변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고 한다. 김 작가는 작은 초가집을 만들어 그 안에 옛날에 사용했던 생활 골동품을 모아놨다. 마당 깊숙이 들어가면‘김 김정배라는 사람 내 아버지, 정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이십니다. 배 배 아파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내 아버지라 자랑스럽습니다. 딸’이라고 쓴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딸이 아버지 이름으로 삼행시를 적어 놓은 것이다. 아버지를 향한 딸의 존경심과 효심에 잠시 뭉클했다. 김 작가는 앞으로 자식들을 위해 더 많은 볼거리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앞으로 하나 둘 볼거리를 추가로 조성해 아들과 딸이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꿈입니다.”
성낙규 인턴기자 nk_2232@naver.com
김정배 작가가 상도문 자택 입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정배 작가 골목길 안쪽 작은 꽃밭, 폐가스통과 나무로 만든 캐릭터, 전통문, 담쟁이가 어우러져 있는 벽돌담 모습.
김정배 작가 집 골목입구에는 상도문마을상징과 이 빠진 귀여운 어린이 형상, 고양이 모양이 보이고 돌담 위에는 소주병이 장식돼 있다. 그 사이 그림을 그린 조약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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