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9월 7일 속초항으로 납북귀환어부 1백60명이 돌아왔다. 이날은 동해안 일대에서 납북귀환어부가 가장 많이 돌아온 날로 1년간 애타게 납북자를 기다려온 가족과 시민 모두가 기뻐한 경사스러운 날이다. 그러나 이날은 돌아온 납북어부들에게 국가폭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당시 언론보도와 당시 내무부장관 작성 문서를 통해 확인된 1972년 9월 7일 귀환어선은 모두 7척으로 △고흥호(17.9톤, 속초항 소속, 선장 윤순철·42) 23명 △제3명성호(19톤, 속초항 소속, 선장 남중돈·33) 21명 △제6해부호(17톤, 속초항 소속) 21명 △제2승해호(13.09톤, 속초항 소속) 21명 △승운호(16.5톤, 아야진항 소속) 23명 △대복호(16톤, 주문진항 소속) 20명 △탁성호(19.6톤, 여수항 소속) 31명이다. 그날 서해 인천항으로 대청호(24톤, 대청어협 소속)를 타고 돌아온 선원 6명과 민간인 2명까지 포함해 1972년 9월 7일 돌아온 동·서해안 납북귀환어부는 모두 8척, 1백68명에 이른다. 속초항으로 귀환한 어선은 동해로 오징어잡이에 나갔다가 1971년 8월부터 10월까지 납북된 어선과 선원들로 1년 1개월~11개월까지 억류생활을 하다가 풀려났다.
어부들 굳은 표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1972년 9월 8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동해안 귀환어선들은 9월 7일 오전 6시경 북한의 장전항을 떠나 1시간30분만에 휴전선을 넘어 우리 해군의 검문검색을 받고 오전 9시30분쯤 해경에 인계되어 해상에서 20명의 방역진에 의해 검역을 마치고 오후 4시30분경 속초어협 부두에 상륙했다. 귀환어부들은 상륙 즉시 강원 영5-1132호 버스에 나눠 타고 속초시청 회의실에 수용됐다. 어부들은 납북 당시의 옷차림 그대로였고, 10여명은 북한에서 준 비닐구두를 신고 있었으며, 어선은 바깥은 흰색, 안쪽은 푸른색으로 색칠을 새로 해놓았다.
같은 날 <매일경제> 신문보도에서는 제3명성호 선장 남중돈(34)씨를 선두로 속초어협 어판장 부두에 상륙하자 가족과 시민들은 환성과 박수로 반겼고, 어부들은 표정을 굳힌 채 당국이 마련한 버스 3대에 올랐다.
9월 9일자 <강원일보>에서는 현장 사진 2장과 함께 납북귀환자 가족과 시민 등 환영인파 3천여명이 부두에 운집했다고 귀환 현장의 이모저모를 보도했다.
이 같은 언론보도 등을 통해 보면 1년 만에 귀환한 어부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환영인파와 격리되어 가족들과 상봉할 수 없었다. 신문기사에는 환영 나온 가족들이 애타게 부르는 ‘아버지’, ‘여보’라는 외침만 보도되었다. 귀환현장은 1백60명의 납북귀환어부가 북의 억류에서 풀려나 자유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온 걸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북피해자들은 귀환의 기쁨을 표현하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다시 끌려가야만 했다.
당시 보도에는 춘천지검 속초지청 김동철 검사가 돌아온 어부들을 모두 반공법 및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할 방침이라고 밝힌 내용도 함께 실렸다. 피해자의 납북경위도 조사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검찰은 귀환어부들을 모두 구속할 방침을 확정하고 발표한 것이다.
납북어부들이 귀환한 지 14일이 지난 1972년 9월 21일 오후 6시 춘천지검 속초지청 김동철 검사는 납북귀환어부 1백60명 중 35명을 반공법,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등 위반혐의로 구속하고, 1백25명은 불구속 입건조치하고 석방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1971년 9월 21일까지 14일 동안 정부당국은 납북귀환어부들을 구속영장도 없이 속초시청 회의실에 불법적으로 구금한 것이다.
구속영장 없이 불법적인 심문조사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에 게재한 ‘납북귀환어부 김이남에 대한 간첩조작 의혹 사건’에는 내무부 장관 명의로 1972년 11월 23일 작성된 ‘납북귀환어부 처리 결과 보고’ 내용이 언급되어 나온다. 강원도를 비롯한 해당 피해자가 거주하는 도와 해양경찰, 중앙정보부, 대간첩대책본부, 육본 대공과, 보안사, 미502 부대, 경찰서 등 30개 기관에 배부한 이 문서에는 당시 납북귀환어부에 대한 국가폭력의 진실이 일부 담겨있다.
조사보고서의 대상인 김이남씨는 전남 신안군 자은도 출신으로 동해 오징어잡이를 나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속초에 와서 1971년 8월 26일 제2승해호를 타고 출항하여 동해에서 오징어잡이를 하다가 8월 30일 납북되었다. 1년 후인 1972년 9월 7일 귀환한 김이남씨는 이 납북사건으로 반공법(탈출죄) 및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1972년 11월 24일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고향 신안군으로 돌아가 화물선 선장으로 근무하던 김이남씨는 1976년 4월 목포경찰서 정보과 수사관들에게 영장없이 불법 연행되어 간첩활동 혐의로 조사받고 구속·기소되어 목포지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1977년 4월 광구고등법원에서 징역 20년 자격정지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김이남씨는 1기 진실화해위원회 직권조사 진실규명을 통해 69일 동안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가혹행위와 고문 등으로 허위자백을 강요받은 사실이 인정되어 재심권고를 받았다. 재심신청을 한 상태에서 김이남씨는 2011년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사후인 2014년이 되어서야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내무부장관 명의로 작성한 문서에는 “1972년 9월 7일 귀환한 어부 7척 160명을 1972년 9월 7일부터 14일까지 속초시청 회의실에 수용하여 속초시 중앙동 소재 해동여관에서 선박별로 수용 및 초단계 심문을 실시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또한 “대복호 3명, 명성3호 11명, 고흥호 1명, 승해2호 2명, 탁성호 3명, 제6해부호 2명, 승운호 2명, 대청호 2명 등 26명은 1972년 9월 15일부터 미502수용소에서 수용하고 전략심문을 진행 중”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아울러 “법적조치로 동·서해로 귀환한 8척 168명은 각 소재지 관할 경찰서로 신병을 인계하여 현지 대공분실장의 조정 및 검찰의 지휘에 의거 각각 입건 처리 중”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 내용대로라면, 9월 7일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어부 1백60명은 구속영장도 없이 최소한 7일 이상 불법적인 심문조사를 받은 것이다. 실제 어부들에 대한 구속영장은 2주일 후인 9월 21일 발부 집행되었기 때문이다.
261명 중 2명 외 모두 징역형 실형 선고
이와 함께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보고서에는 해양경찰대에서 작성한 문건도 나온다. 1972년 11월 29일 작성한 ‘납북귀환어부 처리결과 하달’ 문건에는 9월 7일과 9월 15일 귀환한 어부 12척 261명에 대해 108명을 구속하고 151명을 불구속, 2명을 훈방조치한 걸로 기재되어 있다. 이 문건에는 9월 15일 속초항으로 귀환한 대양호 19명, 해성호 25명, 삼창호 26명, 무진호 23명 등 4척 93명이 포함되어 언급되어 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김이남씨는 1972년 11월 24일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에서 반공법위반(탈출), 국가보안법위반(자격정지), 수산업법위반(어업제한)으로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1973년 12월 6일 춘천지방법원에서는 원심과 같은 형량을 선고받았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찬양고무동조와 금품수수에 대해 유죄로 인정되어 반공법 찬양고무, 국가보안법 금품수수 죄목이 추가되어 선고되었다. 그리고 같은 승해호 선원 중 선장 김○○은 징역 1년, 자격정지 2년, 기관장 박○○은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선원 17명은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 선원 현○○은 벌금 십만원을 1심에서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1973년 12월 6일 춘천지방법원에서 현○○은 항소가 기각되고 다른 선원은 모두 반국가단체고무찬양 동조, 금품수수에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전의 납북귀환어부 재판에서는 북에 강제로 납북된 상태에서 이뤄진 고무찬양과 금품수수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죄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 사건 재판에서는 북에 강제로 억류된 상태에서 이뤄진 동조발언에 대해서도 재판부가 유죄를 인정하는 반인권적인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지난해 12월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피해자의 가족이 검찰청에서 발급받은 수사기록자료에 의하면, 1972년 9월 7일 돌아온 제6해부호 김○○씨는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지 14일만인 9월 21일 오후 5시에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속초경찰서 유치장에 구속되었다. 이는 당시의 언론보도와 일치하는 상황으로 9월 7일 귀환한 납북어부들은 최소한 14일 동안 불법으로 구금되어 불법적인 조사를 받은 것이 확인된다. 법에 따르면 불법구금 상태에서 이뤄진 진술은 임의성이 인정되지 않아 증거능력이 없다.
1972년 9월 남북적십자회담이 평양과 서울에서 열리던 중에 귀환한 납북귀환어부 2백61명 중 훈방조치를 받은 2명을 제외한 2백59명은 정부당국의 불법구금과 불법조사를 통해 작성된 진술이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용공분자로 낙인이 찍혔다. 더구나 내무부나 해양경찰대의 문서를 보면, 이들 귀환어부의 명단은 일선 경찰과 사찰기관 등에 보내져 납북귀환어부를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를 받도록 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위에 거론된 내무부장관의 문건에는 당시의 북한 동향에서 ‘서울적십자회담 이전에 송환시킨 이유’에 대해 가장 먼저 “종래 남한에서는 납북귀환어부들에게 많은 고문과 학대로서 비인도적인 대우를 했는데, 7·4공동성명 후에도 종전대로 처우할 것인지 또은 인도적으로 처우할 것인지 여부를 주시하기 위해 송환한다”라고 분석한 내용이 나온다. 당시 이 문건을 작성한 내무부장관조차도 납북귀환어부에게 가해진 고문과 학대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북한에게는 공동성명과 적십자회담 개최라는 유화적인 태도를, 납북귀환어부들에게는 과거보다 더 가혹한 처벌이라는 이중적인 태도로 취했다. 선량한 국민을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남북체제 경쟁의 희생자로 삼은 것이다.
3천여명의 가족과 시민들이 환영을 받고 귀환한 납북귀환어부들은 14일간 속초시청회의실에 불법구금되어 어떤 일을 겪었을까?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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