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글 작가 이자벨라 지엔바가 ‘얼마나?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라는 아이들의 질문에 영감을 받아 서사를 만들고, 우르슐라 팔루신스카가 그린 그림책 <길까, 짧을까?>를 재미있게 읽었다.
책 내용은 출판사 리뷰를 그대로 인용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친구와 떠들며 걷는 10분과 오줌 마려운 걸 꾹 참으며 걷는 10분 중 어느 쪽이 더 길까요? 올해 90살이 된 할머니의 1년과 이제 막 9살이 된 손자의 1년은 정말 같을까요? 책 속에는 1분부터 30분, 3시간, 한 달, 1년까지 다양한 시간대가 “길까, 짧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이어집니다. 똑같은 시간도 사람에 따라, 처한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질문으로 한 번, 작가의 그림으로 한 번 보여 주지요.
이처럼 책은 사람들이 시간대별로 겪을 수 있는 상황들을 재치 있고 담백하게 풀어냅니다. 그림을 하나씩 감상하다 보면 시간의 상대성을 눈으로 읽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 여기에 각 장마다 반복되는 질문은 우리가 어떤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상반되는 그림과 반복되는 질문을 보고 있자면,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지요. 수업 45분이 길게 느껴졌던 유년 시절을 지나 하루 24시간이 부족해진 어른들에게, 다른 속도로 흐르는 시간이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시간의 ‘소중함’을 이야기합니다.
어느새 일 년이 다 가 버려 허무했나요? 아니면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해 지겨운가요? 기다림이 힘든 어린이들과 하루가 쏜살같은 어른들에게 이 책을 전합니다.”
이 그림책은 우리에게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지만 저마다 다르게 흐르는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준다. 어제와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왜 오늘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 드는 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똑같은 1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강사인 필자에게는 너무 빠르게 흘렀지만, 재미없는 내용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 들어야만 하는 수강생들에게는 얼마나 지루한 시간이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이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의 상대성’ 뿐만 아니라 ‘상황의 상대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요즘 거리는 지방선거의 유세기간으로 후보들의 인사와 유세차량의 방송 소리로 가득 메워지고, 휴대폰 메시지 알림 소리와 선거관련 홍보전화 벨소리는 은근한 짜증 유발자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보면, 출마자들에게는 그 인사하는 시간과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카톡이나 메시지가 얼마나 소중한 기회일까를 생각하면 슬그머니 짜증스런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 그림책은 ‘저마다 다른 관계와 다른 마음에 있는 사람들의 시간은 같지만, 다르게 흐른다는’ 어려운 철학적 사유를 서른 두 면에 펼쳐진 간결한 그림과 ‘길까, 짧을까?’로 반복되는 글로 자신의 삶의 방식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어려운 사자성어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가르치기보다는 이 한 권의 그림책이 보여주는 다양한 상황을 즐기다 보면 우리의 마음속에 ‘배려’라는 단어가 저절로 자리 잡게 될 거라고 믿기에 필자는 오늘도 그림책을 펼친다.
가르친다는 일은 단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일로는 근본적인 목적을 이루어 낼 수가 없다. 느낌과 공감이 일어나야만 생각이 변하고, 생각이 바꿔져야 행동이 변화될 수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상황이 다른 친구에게, 또는 집의 아이들과 함께 이 그림책을 펼쳐 놓고 함께 읽으면서, “우리가 보내는 시간은 길까, 짧을까?” 질문을 던져 보면 어떨까?
그리고 또 한 줄. ‘지금 이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가?’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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