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청소년들의 필독서 중 하나인 ‘호밀밭의 파수꾼’(JD 샐린저 작)이라는 소설이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다 퇴학 당한 ‘금수저’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좌충우돌 하루를 그린 이 소설은 올해로 출간 71년째를 맞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 청소년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소설이 탄생하던 즈음인 1950년대 초는 미국이 마침내 세계 유일 강대국으로 부상한 시기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주역이었던 미국은 이후 대적할 상대가 없는 초강대국으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공산주의 패권국가인 소련이 자리하며 냉전 체제가 자리잡아가고 있었지만 국력의 상징인 국방과 경제력에서 미국은 압도적이었다.
역설적이게도, ‘호밀밭의 파수꾼’은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초강대국으로 번영을 구가하는 미국은 화려함의 이면에 다양한 사회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홀든의 눈에 비친 미국이라는 나라는 허영과 욕망의 덩어리일 뿐이었다. 방황하던 주인공 홀든의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 주는 꿈은 호밀밭의 파수꾼. 세상 사람들이 좇는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먼 꿈이지만, 홀든에게 밀밭을 지키는 파수꾼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자 희망이었다.
<설악신문>이 32주년을 맞았다. <설악신문>이 태어날 무렵, 권위주의 정권이 형식적으로나마 붕괴됐고 지방 분권으로 대표되는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도 본격화됐다. 1990년, <설악신문>은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태어났다. 지역 언론은 메이저 언론이라 지칭되는 전국 규모 언론의 획일된 뉴스 제공과 의제 설정에서 벗어나 지역이 중심이 되는, 생생한 지역민의 이야기를 담아 호응을 얻었다.
당시 나와 변두리 옥탑방에서 서울에서의 생존을 모색하던 친구도 어느날 보따리를 챙겨 훌쩍 귀향해서는 <설악신문>에 몸을 의탁했다. 나는 친구의, <설악신문>의 성공적인 착근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배달되어 오는 신문을 통해 나는 고향의 크고 작은 소식과 고민을 접했다. 때때로 흐뭇했고 때때로 안타까웠다.
7년여 몸담았던 친구는 생계를 이유로 신문사를 떠났다. 인터넷의 등장은 기존 미디어 산업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었는데, 가장 큰 피해는 지역과 소규모 언론사부터 입었다. 정체도 불분명한 뉴미디어가 하루가 다르게 등장했고, 지역을 기반으로 한 종이 신문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나는 <설악신문>을 잊고 살았다. 내게도 먹여살려야할 식구들이 생겼고, 대오에서 낙오하면 안된다는 절박함으로 30대, 40대를 건너야했다.
오십을 코앞에 둔 시점, 나는 귀향했다. 그리고 <설악신문>을 다시 만났다. 나는 반갑고 부끄러웠으며 미안했다. 그간 겪었을 숱한 부침을 어찌 가늠하겠는가. 그저 내가 겪은 부침에 비춰 어렴풋 가늠할 뿐이었다.
월요일, 또는 화요일이면 지난 일주일간 고성, 속초, 양양지역에서 일어난 소식을 묶은 <설악신문>이 우편함에 배달된다. 어지간한 소식은 인터넷을 통해 접하지만, <설악신문>만큼은 한 장씩 펼쳐가며 읽는다. 가끔 아는 사람 이야기나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된 소식이 나오면 안경을 벗고 차근차근 읽는다. 그러고 나면, 나와 내가 몸담은 이 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때로는, 존재하는 자체로 위안이 되는 대상이 있다. 내겐 <설악신문>이 그렇다.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설악신문>을 통해 오늘도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오성택
설악프로방스배꽃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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