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느니, ‘수원 사람은 발가벗겨 놓아도 삼십 리는 뛴다’느니, ‘대추가 흉년이면 보은 아가씨가 운다’느니, ‘강원도 감자 바위’, ‘경상도 보리 문둥이’ 등등의 속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명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은, 지난 날 부산에서 마산을 경유해 순천으로 가는 기차가 있었는데, 진주에서 삼천포로 갈라지는 노선이 있어, 자칫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의미로 생긴 말이다. 그게 마치 삼천포로 가면 잘못 가는 것이라는 인식을 주니, 해당 주민들로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어떤 드라마에서 ‘삼천포’ 운운했다가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삼천포문화원에서는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씻기 위해 애향운동 차원에서 대대적인 홍보를 펴기도 했었다.
‘수원사람은 발가벗겨 놓아도 십리는 뛴다.’는 말도 원래는 수원사람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쓴 말인데, 그 반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오늘날엔 ‘아주 지독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사실은 기생집에서 뒹굴다 문득 아버지 제삿날이라는 것을 깨닫고 의관도 갖추지 못한 채 집까지 뛰어갔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라 한다. 이 역시 수원문화원에서 이 속설의 의미를 바로 알자는 운동을 펼친 적이 있다.
이렇듯 지명이 인용되는 속언들은, 그 도시의 특성을 절묘하게 묘사해 낼 때도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본래의 뜻을 왜곡해 그곳 주민들을 비하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해당 지역 주민들은 이런 표현에 대해 민감하다. 한 도시의 이미지를 바르게 관리하는 일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평소 도시 이미지를 관리해두지 않으면 이런 엉뚱한 피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 이미지 개발’에 관심 보일 때
마을마다 도시마다, 이미 그 고유한 분위기로 나름대로의 도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예술적 분위기가 강하면 예향(禮鄕), 문화적 색채가 강하면 문향(文鄕), 효자효부를 많이 배출한 도시는 효향(孝鄕), 물이 맑으면 수향(水鄕)을 자처한다. 호수가 많으면 ‘호반의 도시’고, 사적지가 많은 곳은 ‘역사의 도시’고,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은 ‘고원의 도시’라 스스로 칭한다. 능수버들이나 벚꽃을 도시 이름 앞에 관형어로 내세우는 곳도 있다.
우리 지역도 이런 이미지 관리가 필요할 터이다. 행여, 관광도시로 성장하면서 건전한 도시이미지를 잃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의심해 볼 필요도 있다. ‘퇴폐적 위락도시’라는 인상을 주면서 ‘싸구려 관광지’로서의 이미지를 얻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강릉에서는 수년 전 여름 경포 해변이 젊은이들의 ‘해방구’가 되어 온갖 퇴폐행위가 이어지자, 약간의 관광수입을 얻기 위해 전통 문화도시 이미지를 포기했다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이후 강릉시는 대대적인 해변관리로 이를 퇴치했다. 아주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속초를 배경으로 <티켓>이라는 영화가 제작되어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마치 속초가 윤락의 명소나 환락의 근원지인 양 인식되어진다 해서 당시 지역 여론을 분개시켰었다. <분노의 왕국>이라는 TV드라마에서는 속초 청호동을 ‘깡패’들의 소굴로 묘사해 역시 주민들을 화나게 만든 적도 있다.
도시의 특성을 살리고, 관광도시로의 특성을 관리하기 위한 ‘도시 이미지 개발’에 관심을 보일 때이다. 남들이 불러주길 원하는 도시 칭호, 그게 뭔지 함께 찾아내, 그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노력들이 지금 이 순간부터 전개되어야 한다.
내세우는 인물이 속초의 정체성
때마침 지방선거에 이르러 어느 후보가 ‘속초의 뿌리’를 찾아 도시 정체성을 살리는 방안 중 하나로, 속초를 대표할 근·현대 인물들을 찾아내 대대적인 선양 사업을 펼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그리 색다른 제안이 아님에도 무척이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속초의 뿌리와 속초의 이미지를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산도시로 성장한 지역 특성상 ‘유정충 선장’ 같은 이를 속초 대표 인물로 각인시키면, 우리 지역은 자연스럽게 “정의롭고 희생적인 어민들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해양도시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속초 앞바다를 ‘거룩한 바다’로 인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속초의 산악문화를 주도하고 헌신적 의료봉사를 하던 이기섭 박사가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한다면, 설악산의 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악관광 전성시대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제에 맞선 강직한 법조인 김용식 판사나, 만세운동을 주도한 이석범 어른을 내세워 우리 지역의 기개와 민족정신을 과시하여 ‘항일의 고장’이라 주장해 볼 수도 있을 터이다.
우리가 내세우는 인물이 우리 속초의 정체성이 된다. 고매한 인격을 가진 이를 대표 인물로 선양하면 ‘성인의 도시’가 될 것이고, 국토방위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바친 이를 선양하면 ‘충절의 고장’이 될 것이며, 뛰어난 예술가를 선양하다 보면 저절로 ‘예향’이 될 것이다.
다소 진부한 발상이라는 느낌도 있지만, 고전적이고 정통적인 방식이라 해서 모두 시대에 뒤처진 것은 아닐 터이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모든 후보들이 우리 지역의 뿌리를 찾는 방향성을 고민하고, 더 나아가 도시 이미지를 어떤 방식으로 구축할 것인지, 그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며 전략적인 대안을 갖추고 있기를 기대한다.
최재도
속초문화원 부설 속초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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