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선 납북을 막겠다고 강행한 1968년 11월 어로한계선 남하 이후에도 동해안에서 어선납북은 계속 이어졌다. 1970년 6월 20일 꽁치잡이에 나섰던 속초항 소속 금강산호(17.2톤)와 선원 8명이 납북되었다가 9개월만인 다음해 3월 21일 밤 8시 40분 거진항으로 선원 4명만 귀환했다. 북에서 풀려난 금강산호는 어로한계선 부근에서 기관고장으로 표류하다가 해경 861정에 예인되었다. 금강산호 선원 속초의 권아무개를 비롯한 4명은 귀환하지 못했다.
1970년 10월 10일에는 어로한계선 인근에서 복어잡이를 하던 속초항 소속 동해호와 선원 6명이 납북되었다가 다음해 5월 31일 오후 2시 20분 거진항으로 귀환했다.
1970년 12월 26일에는 묵호항 소속 동해호가 기관고장으로 어로한계선을 넘어 휴전선 남방에서 표류하던 중 북한 함정이 납북을 시도했으나 우리 해군함정과 해안경계 군의 대응으로 간신히 납북을 모면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동해호 선장과 기관장은 반공법 및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고 다른 선원 4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당국은 납북되지 않아도 기관고장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월선조차도 무조건 처벌했다.
- 1972년 납북어부 2백여명 1년만에 귀환
1971년 5월 13일에는 속초항 소속 창동호가 멸치잡이에 나섰다가 선원 1명은 납북과정에서 사망하고, 어선과 선원 6명이 납북되었다. 그리고 6월 3일에는 거진어협 소속 어로지도선 협동호와 협동호의 지도로 꽁치잡이에 나선 전마선 8척과 선원 11명이 실종되었다. 실종된 전마선 중 부성호 등 3척은 다음날 고성군 마차진리 앞 15마일 해상에서 발견되었는데, 선원들은 없이 빈 배였다. 어로지도선 협동호 선원 3명과 전마선인 만성호, 신양호, 부성호, 오리호, 동명호, 안전호, 만종호, 광성호, 강명호 선원 각각 1명씩 모두 11명이 납북된 것이 뒤늦게 확인되었다. 당시 언론은 납북되던 날 동해북부 해상에 짙은 안개가 끼어 항해 선박들이 항로를 찾을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창동호와 협동호 등 선원 17명은 다음해인 1972년 5월 10일 속초항으로 귀환했다. 춘천지검속초지청은 월선조업을 지도하는 어로지도선 협동호를 비롯해 귀환납북어부 17명 전원을 반공법 및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지난 2020년 창동호 선원들은 재심에서 귀환어부들이 모두 불법으로 구금되어 구타와 가혹행위를 받고 월선조업을 했다고 자백할 것을 강요당했으며, 재판에 회부되어 억울하게 실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1971년 여름부터 동해안에서는 울릉도 인근과 대화퇴 어장 일대에 오징이잡이를 나갔다가 돌아오다가 납북되는 사건이 계속 이어졌다. 이때부터 납북어선은 대부분 오징어잡이 어선이었다. 1960년대 동해안 연근해에서 나던 오징어 어군이 사라져 멀리 울릉도 동북쪽 대화퇴 어장까지 조업을 나가야만 했다.
8월 들어 가장 먼저 1972년 8월 2일 고성군 아야진항 소속 승운호와 선원 23명이 오징어잡이에 나갔다가 돌아오다가 납북되었다. 그리고 8월 20일에는 속초항 소속 제6해부호와 선원 20명이 오징어잡이를 하고 돌아오다가 납북되었다.
8월 30일에는 두 척의 오징어잡이 어선이 납북되었다. 속초항 소속 제2승해호와 선원 23명이 울릉도 인근에서 오징어잡이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납북되었다. 당시 바다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어 있어 승해호는 기상악화로 바다에 표박 중에 자정 무렵 북한 함정에 의해 납북되었다. 같은 날 여수항 소속 어선으로 묵호항에서 출발한 탁성호와 선원 30명도 납북되었다. 당시 언론보도에 의하면, 짙은 안개와 높은 파도가 치던 날 오전 8시 40분 경 동해 어로저지선 인근 해역에서 북한 쾌속정에 의해 납북되던 탁성호를 우리 해군 경비정이 발견해 6시간 동안 대치했으나, 오후 2시 40분경 저인망어선으로 가장한 50톤 규모의 북한 무장선박이 접근해 강제로 납치해 갔다. 탁성호는 북에 끌려간다고 마지막으로 무전기로 타전한 후 소식이 끊겼다.
9월 17일에는 속초항 소속 고흥호와 선원 23명이 납북되었으며, 9월 26일에는 주문진항 소속 대복호와 선원 20명이 납북되었다. 10월 25일 속초항 소속 제3명성호와 선원 20명이 오징어잡이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납북되었다. 명성호는 오전 6시47분경 북한 쾌속정에 납치되어 북으로 끌려가고 있다고 속초어협 무선국에 타전해왔다. 명성호 선주 속초 박아무개씨는 앞서 8월에 납북된 제6해부호의 선주이기도 했다.
1971년 동해안에서 납북된 어선과 선원은 7척 160명(일부 언론에서는 161명으로 보도)에 이른다. 이미 1971년 8월부터 남북한은 적십자회담을 위해 접촉을 시작했는데, 그 기간 중에도 북한은 어선 납북과 선원 억류를 계속했다. 이들 어부는 길게는 1년 이상 북에 억류되었다가 1972년 9월 7일 한꺼번에 귀환했다. 이날 인천항으로 들어온 대청호와 선원 8명을 포함해 동서해안에서 모두 168명의 어부들이 귀환했다.
이때는 1972년 8월 30일 남북적십자 1차 본회담이 평양에서 열린 직후이며, 9월 13일 서울에서 제2차 적십자 본회담이 개최되기 전이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고자 분단 이후 처음으로 열린 남북적십자회담 정국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어선과 선원을 납치 억류하는 반인도적인 행각을 계속 반복했으며, 송환도 체제선전에 가장 효율적인 시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때 북한은 납북 억류자를 모두 돌려보내 해당 납북어선의 미송환자는 없었다.
- 1973년 납북어부 80명 직권조사대상 누락
남북적십자 회담과 함께 1972년 7월 4일에는 남북한이 동시에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입각한 통일을 추진하자고 공동성명을 발표해 남북간 평화무드가 조성되었다. 하지만 1972년에도 동해안에서 어선 납북사건은 계속 이어졌다.
1972년 6월 9일 유풍호와 선원 9명이 꽁치잡이에 나갔다가 동해상에서 납북되었다. 통일부 자료에는 유풍호 납북 억류자가 9명으로 확인되지만, 지난 2007년 중국의 탈북지원단체를 통해 유풍호 선원 11명 중 풍랑을 만나 6명은 사망하고, 5명은 북에 억류된 걸로 확인되었다. 2007년 속초 출신 유풍호 납북 억류자 남아무개 가족에게 고인이 된 부친 사진 2장과 편지가 전달되기도 했다.
남북적십자 회담을 즈음해 동해안 일대에서 오징어잡이 어선들이 대거 납북되었다. 1972년 8월 23일에는 제주항 소속 해성호와 선원 25명이, 8월 24일에는 주문진항 소속 대양호와 선원 19명이, 8월 28일에는 속초항 소속 삼창호와 선원 26명이, 8월 30일에는 속초항 소속 무진호와 선원 23명이 납북되었다. 이들 4척의 선원 93명은 납북된 지 16일~23일만인 그 해 9월 15일 속초항으로 전원 귀환했다. 지금까지 북에 납북된 어선과 선원이 이렇게 빨리 귀환한 적이 거의 없었다. 남북적십자회담이 이끌어낸 남북화해의 분위기로 납북어부 조기 송환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이 무렵 납북된 어선과 선원들이 모두 조기 귀환한 것은 아니다. 1972년 8월 14일에는 고성군 거진항 소속 제3금성호와 선원 29명이 오징어잡이를 하다가 납북됐다. 8월 21일에는 포항어협 소속 제6일진호와 선원 30명이, 9월 1일에는 부산어협 소속 제6미조호와 선원 25명이 납북되었다. 이들 3척의 납북어부 80명은 1년 가까이 북에 억류되었다가 풀려나 1973년 8월 1일 속초항에 귀항했다. 대부분 선원은 돌아왔지만, 제3금성호 2명, 제6일진호 2명은 끝내 귀환하지 못했다. 이때 속초항으로 귀환한 선원들은 속초 영랑초등학교에 구금되어 조사를 받았다. 당시 언론에 따르면 검찰은 1973년 귀환한 선원 전원도 반공법 및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입건할 방침을 발표했다.
진실화해위원회에는 1972년 9월 7일과 15일에 속초항으로 귀환한 납북귀환어부들의 진실규명 신청이 많이 접수되어 조사가 진행 중이다. 반면 1973년에 돌아온 납북귀환어부 80명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건은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납북귀환어부 진실규명에 적극 나서고 있는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월 22일 동해안에서 1965년부터 1972년 사이에 납북되었다가 귀환한 982명에 대해 직권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진실규명 신청도 없고 직권조사도 하지 않는다면, 1973년 납북귀환 80명에 대해 가해진 국가폭력에 대한 진실도 밝혀지지 않고 그냥 묻히고 말 것이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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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8월 30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적십자회담 소식을 알린 동아일보 신문 1면 기사. 남북적십자회담 영향으로 전례없이 북에 억류된 납북귀환어부들이 한꺼번에 귀환하거나 납북 한 달도 안되어 조기귀환이 이뤄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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