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끈불끈, 근육 위에 핏줄 세우며 사람들이 바다와 줄다리기를 한다. 시근벌떡 딸려 나오며 허연 침을 게워내는 바다는 지지 않겠다는 듯 왈칵왈칵 파도치며 성을 낸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줄에 개미떼처럼 매달린 사람들은 누가 이기나 한번 맞짱 떠보자는 듯 허리를 곧추세우고 발뒤꿈치를 모래밭에 짓박으며 기우뚱 몸을 뒤로 뉜다.
지난 23일, 양양 동호해수욕장 멸치후리기 체험행사장에 다녀왔다. 다 펼쳐보면 길이가 400미터나 된다는 아주 긴 직사각형 그물(地引網). 한쪽 끝 100미터 정도가 해변가 모래톱에 일렬종대로 선 사람들 손에 단단히 쥐여졌다. 나머지 그물을 실은 배가 한산도대첩의 학익진처럼 둥그런 모양새로 항로를 그리며 그물을 풀어 바다에 넓게 드리웠다. 그물의 다른 한쪽 끝마저 다시 모래톱으로 올려 다른 팀 손에 던져주니 바다 한 귀퉁이에 U자형 어장이 만들어지고, 그 어장 속에 고기를 가둔 형국이 되었다. 그렇게 펼쳐진 U자형 후릿그물 양 갈래 끝에 사람들이 빼곡이 매달려 ‘어~허 산자, 어~허 산자’ 멸치후리기 노래에 맞춰 그물을 육지로 힘껏 잡아당겨 올렸다. 양쪽 사람들이 점차 가까워지며 나선형 원을 만들어 어장의 크기를 줄이면서 천천히 그물을 당겨 올려 고기를 잡는 것이 바로 양양 동호리의 멸치후리기였다.
“자, 자 줄서세요. 애들부터 담아줄게요, 애기들, 뒤에 학생들부터 줄서세요. 고기 많아요. 자, 얼른 담아서 가져 가.” 우와, 우와 사람들의 아우성 속에 파묻힌 동호리 어촌계장 김근래씨의 목소리가 차츰 높아졌다. 파란 잎파래에 섞여 팔딱거리는 전어, 황어, 농어 같은 물고기들은 후리기에 가담한 모든 남녀노소 후리꾼들에게 전리품(짓)으로 공평하게 나뉘어져 고소한 횟감이 되거나 시원한 물회, 얼큰한 매운탕의 재료가 된다. “이 전어는요, 그 자리에서 썰어서 초고추장에 찍어 회로 잡수시면 돼요.”
동호해수욕장 개장 기간 동안은 인원 60여명정도만 모이면 매일 오후 두시 무렵부터 멸치후리기 행사를 시작한다. 단체의 경우는 따로 유료예약이 가능하지만 개인의 경우는 참가비도 없고 접수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고기를 담을 그릇 하나, 몇 방울의 땀, 그리고 어린 시절 가을운동회 때 익히 선보인 줄다리기의 울력 정도가 준비물의 전부다. 아무런 대가없이 오랜 시간 그물을 보수하고, 파도 속에 몸을 담근 채 그물을 밟으며 해수욕장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 그리고 행사후면 다시 두세 시간을 들여 그물을 손질하는 일은 곁에서 보기에 보통 일은 아니다. 이런 일을 2002년부터 시작해 십여 년 넘게 지속해온 어촌계 계원들의 구릿빛 얼굴이 참 대단해 보인다. 그 정성 덕에 양양 동호리 멸치후리기는 2015년 ‘제26회 강원민속예술축제’에서 최우수상인 도지사상을 차지해 올해 10월 전주에서 열리는 한국민속예술축제에 도 대표로 출전하는 자격을 얻었다. 10월 중순쯤 좋은 소식이 있길 바란다. (멸치후리기 체험문의:033-672-9797, 동호해수욕장 홈페이지: www.dongho.kr)
위나정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지난달 23일 동호해수욕장에서 피서객들이 멸치후리기체험을 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