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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 관악부 이야기(6) / 학도호국단 발단식 사건(상)
요란한 타악기 소리가 행사장 주위 적막을 깨면서 울려 퍼졌다
등록날짜 [ 2022년05월02일 15시43분 ]

학도호국단이 부활되었던 1975년
1972년 유신헌법이 발효된 이후, 박정희 정부의 군사 독재는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1975년 학도호국단이 창단되는데, 필자가 고2 때였다. 학도호국단? 그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은 학도호국단이 뭔지 모를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나라를 지키는(護國) 학생(學徒) 조직 단체(團)’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적 의미는, ‘학교에 설치된 준(準)군사 조직 단체’를 말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학생회가 폐지되고, 그것이 군사 조직처럼 바뀌었다. 그래서 학교는 규모에 따라 ‘대대’가 되기도 했고 ‘중대’가 되기도 했었다.(당시, 총 14학급이었던 속초고는 ‘대대’였었다.) 학생 간부도 보직에 따라 대대장이니 중대장이니 하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학도호국단은 이미 1949년에 창단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다 4·19혁명을 계기로 폐지되었던 것을 1975년에 부활시킨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학도호국단이 부활 되면서 발단식을 전국적으로 아주 거창하게 치렀었는데, 우리 속초 지역의 발단식은 1975년 10월에 치러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속초 관내 고등학교가 모두 공설운동장에 모여서.
학도호국단가도 제정되었다. 전교생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 그 노래를 배웠었다. 당시 속초고에는 음악 선생님이 안 계셔서 만능 재주꾼 김철홍 영어 선생님이 그 노래를 가르치셨다. 
  
발단식 행사에 초대받지 못했던 관악부
그런 거국적인 행사에는 당연히 관악부가 참여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학교 측으로부터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왜 아무 얘기가 없지? 우리 밴드부 행사에 못 나가는 건가?” 
관악부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필자 역시 너무나 의아했다. 관악부의 존재 가치는 행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인데, 그 중요한 행사에 전통의 속초고 관악부가 동원되지 않는다? 지도교사가 없어서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속초상고나 속초여고에 관악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가장 답답해했던 친구는, 악장(樂長)이었다.(먼저 글에서 소개한 바 있는 ‘박진호’라는 친구) 악장직은 원래 3학년이 맡는 것이었다. 그런데 먼저 글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속초고 23회 관악부는 재창단된 관악부였고, 그 과정에서 1년 선배인 22회 부원들이 없었다. 그래서 2학년이 악장직을 맡게 된 것이다.           
각설하고. 악장은 교련 선생님 중의 한 분이셨던 성조환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 이번 발단식 행사에 저희 학교 밴드부가 나가면 좋겠는데요….”
그러자, 성조환 선생님은 ‘그럴 수 있으면 좋지!’라고 하시면서도 관악부 참여 여부에 대한 공식적인 학교 입장은 말씀하지 않으셨다. 당시 교련 관련 업무에 대한 실권자는 성조환 선생님이 아니셨다. 또 다른 교련 선생님이셨던 고재양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고재양 선생님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과 같은 분이셨다. 그 정도로 고지식하고 꼬장꼬장한 분이셨다. 그래서 만만한(?) 성조환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확실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행사 날은 하루하루 다가왔다.  
마침내 행사 당일…. 하지만 그날까지도 학교로부터 관악부 참여에 대한 공식적인 얘기가 없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관악부 친구들도 여느 급우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소속된 대열(隊列)에 끼어서 행사장인 공설운동장으로 출발을 했다.  

 

관악부는 대열에서 이탈하라!
교문을 막 벗어났을 때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관악부 친구들이 인솔 선생님의 눈을 피해 한 명씩 대열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관악부 친구들은 모두 악기 보관실 앞에 모였다. 그리고 각자의 악기를 들고 나왔다. 악장의 지휘에 따라 ‘임석 상관에 대한 경례곡’을 비롯하여 ‘국기에 대한 경례곡’,  ‘애국가’, ‘묵념곡’ 등등 우선 의식곡들부터 한 곡 한 곡 맞추어 보았다. 그리고 학교 운동장으로 나가서 행진 연습도 했다. 
학교는 서무과(행정실)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오랜만에 악기를 불면서 행진을 해 보니 정말 힘이 들었다. 숨도 차고 음악과 발, 그리고 오(伍)와 열(列)도 잘 맞지 않았다. 그렇게 연습을 하고 있는데, 김일남 선배(당시, 서무과 직원으로 근무하셨던 관악부 출신의 13회 선배)가 서무실에서 나왔다. “오늘 행사 있는 모양이지? 잘하고 와!” 
김 선배님은 그날 행사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음악적 조언에다 격려까지 해 주셨다. 평소에는 관악부 후배들에게 너무나 무섭게 했던, 호랑이 같은 선배였다. 
그렇게 연습을 대충 마무리한 후, 서둘러 행사장으로 출발했다.(당시는 속초고가 장사동이 아닌, 지금의 교육청 자리에 있었다.)  
공설운동장으로 바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지금의 ‘세심촌’ 부근의 옆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악장은 이때다 싶어서 지휘장(指揮杖)으로 드럼마치(drum march) 사인을 냈다. 그 사인에 따라 요란한 타악기(큰북, 작은 북, 심벌즈) 소리가 행사장 주위의 적막을 깨면서 울려 퍼졌다. 그런데…. 행사장에서는 식(式)이 막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임석 상관에 대하여 받들어 관악부?
멀리서 이런 구령 소리가 들려왔다.


“임석 상관에 대하여 받들어 총…!”
그런 상황에서 난데없이 요란한 음악(드럼마치) 소리가 울려 퍼지자, 행사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속초고 관악부 쪽으로 향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군복 차림의 고재양 교련 선생님 모습이 보였다. 고재양 선생님을 비롯하여 사태의 내막을 비로소 알아차린 선생님들께서 관악부를 향해 요란한 손짓을 보냈다. 빨리 행사장에서 멀리 벗어나라는 신호였다. 관악부원들은 그제야 뭔가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바로 음악을 멈추고는 재빠르게 행사장 주위에서 벗어났다. 
그 길로 범바위로 갔다. 관악부원들은 범바위 근처의 공터에 모두 말없이 앉았다.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정말 난감했다. 교내 행사도 아닌 외부 행사에서 그런 일을 벌려서 더더욱 난감했다. 해당 군부대에서는 물론 관내 주요 관공서의 기관장과 실무자, 그리고 속초시민들까지 참석한 어마어마한 행사에서 그런 사고를 쳤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앞이 캄캄했다. 아주 작은 행사라도 학생들이 동원되는 행사는, 학교에 반드시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철없던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 관악부원들은 그야말로 패잔병 같은 초라한 꼴을 하고는 학교로 돌아갔다.
  
주동자가 누구냐?
당연히 그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서로 입을 한 번도 맞춘 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관악부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사건의 주동자가 바로 악장(樂長) 박진호라고 진술을 하였다. 필자는 ‘악장 단독으로 벌린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공범이다’라고 진술하려고 했다. 악장과 그동안 쌓인 우정을 생각해서라도 악장 혼자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필자도 마치 어떤 마법에 걸린 것처럼 그 이상한 분위기에 휩쓸려 똑같은 진술, 악장이 주동자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이상했던 것은, 학교에서도 관악부원들 모두의 그 진술이 가장 훌륭한 모범답안인 양, 더 이상 캐묻지도 않고 조사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관악부원들 모두에게 무죄 석방(?)을 하고 오직 악장 박진호만 교무실에 붙잡아 두었다. 
너무도 기상천외하고, 황당무계한 사건이라서인지 고재양 교련 선생님도 신체적 체벌은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더구나, 상업 선생님이셨던 박재양 선생님께서는 사건의 주동자(?) 악장을 위해 변호까지 해 주셨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사건은 보통 큰 사건이 아니었다. 서슬 퍼렇던 군사 정권 시절에 그런 사건이면 담당 교련 선생님은 물론, 학교장까지 문책을 받았을 초대형사건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 사건의 주동자로 몰렸던 악장 박진호는 그렇게 학교 차원의 처벌이 아닌, 교련 선생님의 개인적 처벌, 그것도 좀 무거운 훈계 정도 수준의 처벌만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날 악장은, 두세 시간 정도 만에 무사히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됨과 동시에 관악부의 영웅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다음 날이 바로 수학여행 날이었다. 덕분에 우리의 영웅이 된 악장은, 멀쩡하게 수학여행도 다녀올 수 있었다.
<계속>

임수철 
작곡가·전 음악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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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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