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히 벡은 또 다른 저서인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세계화 시대의 글로벌 위험으로 생태·경제·테러리즘을 분석하고, 이러한 위험에 맞설 수 있는 힘으로 ‘세계 시민주의’에 주목한다. 오늘날 글로벌 위험은 모든 인류를 위협하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방법 또한 국가 상호 의존성과 배려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위험은 위험의 정의와 생산, 분배에서 새로운 불평등과 양극화를 초래하지만, 동시에 인류 공통의 위협에 대응하는 정치적, 윤리적 성찰로서 세계시민주의를 발전시킬 계기일 수도 있음을 주장한다. 즉 그는 벡의 <오늘도 괜찮으십니까?>에서도 전 세계의 시민들의 자각을 바탕으로 한 ‘성찰적 인간’에서 근본적인 해답을 찾는다. 벡은 우선 정치적 역량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정치세력은 국가적 단위를 넘어선 ‘초국가적 단위’의 정치기관이다. 인종, 종교, 계급의 차별을 극복하고 자유와 민주주의 이상을 통한 정치세력의 결집을 통하여 신자유주의적 근본세력과 대항해야 하는 것이다.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국가적 체제와 제도를 만들어 이러한 체제를 활용하여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인도적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정당하면서도 인도주의적인 개입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이 바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지각하는 ‘성찰적 인간’들이며 이들은 무엇보다 국가적 차별이나 민족적 경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벡의 ‘세계내부정치’의 구상은 과거 칸트의 ‘세계시민’ 사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발리스 듀스의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 사상》에 의하면 18세기에 시작된 계몽주의는 모든 것을 이성의 빛으로 비추어 비과학적인 생각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공평한 사회를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즉 과학적이고 합리적 사고가 확산되면 사회는 진보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처럼 이성을 전제로 한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사회를 진보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계몽주의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한계를 드러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인 호르크하이머는 이러한 한계가 이성 그 자체에 내포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다. 본래 인간에게 구비된 이성은 어떤 적절한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근대적 이성은 주관적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 즉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절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점만을 유일한 가치 기준으로 삼는 기술적인 도구가 되어버렸다. 호르크하이머는 이렇게 수단화된 이성을 ‘도구적 이성’이라고 불렀으며, 이를 비판하고 이성이 본래 지닌 능력, 즉 이상주의적인 객관적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스 요나스는 《책임의 원칙: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에서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100% 유익하기만 하지도 않고, 100% 유해하기만 하지도 않았다. 아니 지금까지의 결과만 가지고 보면 유해보다는 유익한 점이 훨씬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과학기술을 규제하는 윤리는 필요하다. 그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새로운 행위능력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의 공포를 경험하기 전에 이미 그 공포의 상태를 가정하고 방역 수칙을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누군가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예견하고 정책을 만드냐고 하겠지만, 한 번도 예견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빌게이츠도 그렇고 많은 감염학자들도 몇 번씩 예고를 했었다. 우리가 다만 그 공포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이 이런 상황에 대한 예상을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요나스는 과학이 우리에게 유익할 수도 있고, 유해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유익한 경우보다 유해한 경우, 즉 악을 우선적으로 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악의 공포를 예견할 때 비로소 인간의 그 공포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을 최소 할 수 있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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