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현대사회는 각종 대형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결코 원하지 않지만, 불행한 상황을 수시로 목격한다. 땅 위에서는 고층 아파트 붕괴, 물류 센터 화재 등이 수시로 발생하고,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추락하고, 바다에서는 초대형 배가 전복되고, 땅속에서는 지하철이 탈선하고, 곳곳에서 가스관이 폭발하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던 대기오염 물질인 미세먼지니 초미세 먼지니 하는 용어는 일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화석연료의 사용과 무분별한 개발과 이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자연은 파괴되고 생태계는 마비되고, 지구가 대기·토양·수질오염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코로나19 같은 각종 새로운 질병이 생겨나는 등 우리 사회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도사리고 있는 곳곳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하루라도 조용한 날 없는 일상화된 사고로 우리가 살고 있는 어느 곳이든 안전지대가 없는 위험한 사회 속에서 불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가면 갈수록 사회는 위험의 속도가 빠르고 대규모화되어 가고, 사고가 터질 때마다 진단 및 안전장치, 관리 소홀 문제가 거론되고, 책임자 추궁 및 형사 고발 등이 단골 매뉴로 떠들썩하게 등장하고 분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당국도 국민들도 쉽게 잊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사고 때마다 여론이 불처럼 타올랐다가 시간이 가면 재처럼 한 순간 사라진다. 흔히 말하는 냄비 건성이다. 전문가들의 수많은 대책이 제시되지만 제도화되지 못하고 미봉책으로 그치거나, 제도화되더라도 효율적인 집행이 잘 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관심과 분노의 여론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 결과 유사한 사건·사고는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안전 불감증은 고착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위험은 성공적 근대가 초래한 딜레마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에서 “거짓된 의식은 압도적인 기술 기구에서 구체화된다. 이는 ‘합리성’의 이중적 의미와 관련된다. 과학적 경영과 노동 분업은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생산성과 생활수준을 높였다. 동시에 합리적 기획은 자신의 가장 파괴적·억압적·특징을 정당화하는 사유와 행동방식을 생산한다.”라고 말한다.
근대 사회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했다. 투자한 비용이나 노력에 비해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효율성 원리에 의한 관료제 조직, 경제적인 대량생산 체제, 대도시의 구조와 운영 시스템, 그리고 이러한 기술적 합리성 안에서의 삶을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선이자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합리성과 효율성은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근대화 초기 단계에는 풍요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근대화 후기로 진행될수록 위험요소는 더욱 커지게 되는 것으로, 위험은 성공적 근대가 초래한 딜레마라 할 수 있다.
가정과 공장에서 배출되는 각종 오염물질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물을 마시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지게 한다. 즉 무분별한 자원 남용과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에너지를 경쟁적으로 사용하여 환경오염과 이로 인한 오존층 파괴, 지구온난화를 가져와 각종 질병과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사회적 비용 지출 증가와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은 오늘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코로나19를 가져오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합리적인 이성에 바탕을 둔 산업사회가 놀랍게도 위험사회를 가져오게 했다. 인간 이성에 대한 한계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근대 이후의 과학기술, 합리성이 낳은 환경위기와 산업사회의 위험을 말한다. 하늘을 찌를 듯한 욕망 덩어리 같은 고층 아파트와 메말라가는 건조한 빌딩 숲, 오색찬란한 조명으로 뒤덮인 편리한 도시 공간, 하지만 검고 회색의 아스팔트로 장식한 도로에서 온갖 차들이 뿜어내는 죽음의 검은 매연, 미세먼지와 각종 오염물질로 뒤덮인 우리들의 삶의 터전인 도시의 문명은 미래의 우리에게 희망의 빛이 아닌 암울한 어둠의 그림자로 몰려오고 있다.
끝없는 성공 욕망이 위험 가속화
합리성과 과학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이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끝없는 성공 욕망이 이런 위험을 가속화시킨다. 문제는 현대의 이러한 위험은 ‘통제 불가능’하고 ‘불확정’된 위험이라는 것이다. 편리한 만큼 위험과 공포는 더 커진다. 교통수단이 도보, 말,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로 편리하게 변하면 변할수록 더 위험하고 예측하기가 어렵고 공포는 더 크게 느껴진다. 가령, 비행기 사고가 자동차 사고보다 발생할 확률은 훨씬 적지만 위험의 정도는 더 크며 공포는 더 무섭게 느껴진다. 알콜 중독이나 흡연은 끊으면 피할 수 있으므로 통제할 수 있고 확정된 위험이다. 그러나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지금의 코로나19 상황 등은 쉽게 통제할 수 없으며 위험이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 한정되지 않으며,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전 지구적이고 국경을 초월하는 탈 국가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근대화의 길을 숨 가쁘게 달려와 이제 ‘풍요사회’를 이루었다고 자축하는 순간, 마른 목을 축일 한 바가지의 맑은 물조차 남아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악하게 된다. 전기·전자 문명에 도취 되고 화려한 소비문화에 빠져드는 순간, 이 같은 도취와 탐닉을 위해 자칫 인류를 멸종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발전소들이 도처에서 건설된다. 산업혁명 이후 200여 년 인류는 역사상 유례없는 생산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 결과 명실상부한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리고 포드주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풍요의 시대를 이룩하였다. 이것은 인류가 거대한 체계적 위험을 무릅쓰는 대가로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게 된 것에 다름없다. 즉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현대인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몰고 왔다. 근대화 초기 단계에는 풍요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근대화 후기로 갈수록 위험요소는 더욱 커지게 됐다. 즉, 위험은 성공적 근대화가 초래한 딜레마며, 산업사회에서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요소도 증가하고, 후진국에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 성공적으로 과학과 기술, 산업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나타나며, 무엇보다 예외적 위험이 아니라 일상적 위험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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