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영에 대한 비전은 보이지 않고, 이전투구의 네거티브로 일관됐던 선거가 끝나고 0.7%의 차이로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한 나라의 수반을 뽑을 때마다 국민이 두 편으로 갈라치기가 되는 고질병은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민주주의의 장점보다 단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다.
여기 투표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 있다. 프랑스 작가 상드린 뒤마 루이의 ‘왕 한 번 잘못 뽑았다가 큰일 날 뻔 했네’라는 그림책이다.
초원에 사는 동물들이 왕을 뽑기로 했다. 첫 번째 후보 사자는 지금까지 대대로 초원의 왕은 사자들이 차지했기 때문에 자신이 왕이 될 거라 생각한다. 두 번째 후보 코끼리는 친구들이 많은 장점을 이용해 자신이 왕이 될 거라 생각한다. 세 번째 후보 기린은 멀리에서도 적이 다가오는 걸 볼 수 있기에 왕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네 번째 후보 악어는 앞으로 다른 동물들을 괴롭히지 않고 풀만 먹고, 모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새 세상을 만들겠다고 크게 외친다. 결국 악어가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초원의 왕으로 뽑혔다.
동물들이 스스로 뽑은 왕이 결국 초원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주었을까? 악어는 왕이 되자마자 본색을 드러낸다. 형제와 친척에게 장관 자리를 주고, 초원을 멋대로 독차지한다. 젊고 건장한 악어 병사들에게 국경을 지키게 해서 누구도 함부로 초원에 들어오지 못하게 만든다.
동물들은 악어가 왕이 되기 위해 거짓 약속을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초원에 오래 비가 내리지 않아 삶이 힘겨워지고 나서야 무능한 지도자를 선택한 폐해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된다. 결국 그릇된 지도자를 퇴출시키고, 동물들은 이번에야말로 더 나은 초원을 만들어줄 적합한 후보를 선택하기 위해 다시 투표를 시작한다.
필자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권리이자 의무를 한 마디로 요약하는 키워드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 최선이었지만,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선거과정에서 우리가 하는 ‘선택’의 기준이 ‘색깔론’과 ‘지연’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필자는 그 ‘선택’의 기준에 정부나 정당, 입후보자 등이 어떤 일에 대해 사회 공중에게 실행할 것을 약속함이라는 뜻을 가진 ‘공약(公約)’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들의 공약집을 들여다 본 필자의 한 마디는 ‘가관이네!’다. 가는 곳 마다 숙원 사업을 다 해결해 준다는 그 약속은 ‘공약(公約)’이 아니라 헛되이 하는 약속 ‘공약(空約)’이다.
위의 그림책도 거짓 약속, ‘공약(空約)’을 믿고 한 선택의 대가가 얼마나 큰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필자의 소견이지만, 대선보다 더 중요한 지역자치단체의 리더를 뽑는 선거가 시작되었다. 국가의 리더가 잘못된 정책을 펼치면 국민 모두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파급되는 충격파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지역 단체의 리더가 펼친 그릇된 정책의 실행은 그 폐해가 지역주민 모두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필자는 최선도 차선도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우울한 도장 찍기를 해야만 했다. 다가오는 지선에서 필자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색깔과 지역이 아닌, 인물 됨됨이와 그가 내건 ‘공약(公約)’을 보고 선뜻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 발 더 나아가 선출된 리더가 그를 선택한 사람과 비슷한 숫자가 반대했음을 늘 각성하고 있는 지도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리더의 잘못을 탓하기보다, 현명한 도장 찍기가 우리의 내일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가진 시민이 많아졌으면 더 좋겠다.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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