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속초고 관악부는 재창단 관악부
1952년에 개교한 속초고는, 올해(2022년)로 68회째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런데 속초고 관악부가 언제 창단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3회 때, 또는 5회 때부터 관악부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다. 한참 선배 되시는 분들에게. 하지만 공식 기록을 보지 못해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아무튼 속초고 관악부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필자가 관악부원이던 시절만 해도 ‘관악부 활동일지’라는 게 있었다. 관악부의 모든 상황들을 그날그날 기록했던 일지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일지는 후배들에게 계속 인수인계가 되지 않았다. 1982년, 필자가 속초고로 교생실습을 나가보니 그때 이미 관악부 활동일지는 맥이 끊어진 상태였었다.
각설하고…. 그런데 속초고 관악부는 창단 이후 지금까지 계속 이어온 게 아니다. 중간에 한 번 맥이 끊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가 1973년도였었다. 1973년이면 22회가 입학했던 때였다. 관악부 선배 말에 의하면, 21회는 1학년 때만 관악부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관악부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한때 속초고 관악부가 폐지된 까닭은?
요즘 관악부원은 아주 성실한, 속칭 범생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악기라는 것이 몇 달 정도 연습해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악기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트럼펫의 경우 소리를 제대로 내는 데만 1년 이상이 걸린다. 그래서 1학년 때는 일종의 인턴 기간이고, 보통 3학년 정도가 되어야 부원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가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워낙 소질이 뛰어나고 연습까지 성실하게 하는 모범 부원은, 아주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요약하자면, 악기는 아무리 소질이 많아도 꾸준한 연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끈기가 없고 불성실한 부원들은 대부분 중도 하차를 하게 된다.
하지만 필자가 관악부원으로 활동했던 그 시절에는 끼 많고 날라리 같은,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아이들이 주류였었다. 그런데도 관악부원으로서 제 몫을 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적인 열정이 워낙 뜨거웠기 때문이다. 거기에 선생님보다 훨씬 더 무서운 선배들의 스파르타식 가르침도 큰 몫을 했었다.
그 시절의 관악부가 그랬기에 대부분의 선생님들에게 관악부원들은 늘 요주의 인물들이었다. 실제로 관악부에는 일탈적인 일들이 좀 많긴 했었다. 흡연자 비율도 높았다. 악기를 불고 나면, 특히 금관악기의 경우 입안에서 불쾌한 놋쇠 냄새가 나는데, 그럴 때 담배를 한 대 피우면 입안이 개운해진다고 했다. 그 맛에 담배를 피운다고들 했다. 필자같이 담배를 입 근처에도 대지 않는 고지식한 범생이 부원들도 있었지만.
아무튼 그래서 당시 학교 입장에서 볼 때, 지도교사도 없는 관악부를 계속 운영하기에는 여러모로 부담이 컸던 것 같다. 거기에 관악부만의 내부 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좀 폭넓게 보자면, 그 비모범적인 관악부원들이야말로 가장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로맨티스트들이었는데.
재창단 된 속초고 관악부와 돌아온 형아들
아무튼 그렇게 속초고 관악부는 문을 닫았는데, 그렇게 되자 동문들은 물론 지역에서도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관악부는 교내 행사보다는 지역 행사에 동원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지역의 각종 단체에서 주관하는 행사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주관하는 국경일 행사에도 동원이 된다. 특히 현충일 같은 추념식에는 무조건 협조해야 한다.(예전 선배들 때는 군부대 행사에도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런 행사를 통해 음악 봉사도 하고, 자연스럽게 학교 홍보도 했던 속초고 관악부가 문을 닫게 되니 지역으로서도 몹시 난감했던 것이다.
결국 학교는 그런 비판 여론을 받아들여 관악부를 재창단하게 되는데, 그때가 1974년 여름 방학 무렵이었다. 필자가 1학년 때였다. 그래서 속초고 23회 입학생인 필자 동기들이 재창단 관악부 1기생이 된다. 반면에, 관악부가 문을 닫고 있었던 1973년에 입학한 22회 선배들은 관악부원이 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재창단이 되자, 1학년 때 관악부 생활을 했던 3학년 선배들은 군기 반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군대로 말하자면, 이등병이나 일등병에서 상병을 거치지 않고 바로 병장이 된 것이다. 그렇게 벼락 고참이 된 3학년 선배들은, 연습 때 자주 나타나서 이것저것 트집을 잡아 잔소리도 하고, 기합도 주곤 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니네들 괴롭히는 놈들 있으면 당장 얘기해라! 우리 형들이 나서서 바로 해결해줄 테니까.”라며 관악부 선배들이 후배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과시하곤 했다.
이런 상황이 평정된 것은, 이순종 선배가 악장(樂長)이 되면서부터였다. 이순종 선배는 아주 자상하고 리더십도 있어서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았었다. 그래서 후배들이 별 이견 없이 그 선배를 악장으로 추대했던 것이다.
기대했던 대로였다. 이순종 선배는 후배들을 위해 정말 열심히 봉사했었다. 졸업 후에도 여러 차례 격려 편지와 함께 악보도 사서 보내주곤 했었다.(이순종 선배는 졸업 때 공로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관악부 악장으로 공로상을 수상한 것은 그때가 최초였다고 한다. 그전에 관악부 악장은 특기상을 수상했었다고 한다.)
이순종 선배 외에도 당시 3학년이었던 21회 선배들 중 기억나는 이름들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김광순, 김중섭, 문기채, 박명동, 유순오, 이정선, 정래권, 염재봉(속초상고로 전학), 김영철 (1년 휴학, 복학 후 부산공고로 전학)….
각설하고…. 이처럼 단 한 명의 관악부원도 없었던 속초고 22회는, 본의 아니게 너무 비(非)낭만적인 기수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22회는 대학 입시에서만큼은 아주 대단한 기록을 세웠었다. 22회는 전·후기 대학 모두 통틀어 60명 정도가 합격을 했었는데, 개교 이래 ‘예비고사+본고사’ 형태의 입시에서는 최고의 결과였다. 22회가 입시를 치른 1976년도 전국 대입 정원은 2년제 초급대학을 포함해도 5만6천여 명에 불과했다. 그런 입시 상황에서 60명이라는 합격자 수는 전국 기준으로도 대단한 결과였었다. 게다가 서울대, 연세대, 해군사관학교 등 유명 대학 합격자도 여러 명 있었다. <계속>
임수철
작곡가·전 음악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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