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권에서 교사 생활을 한 이정연(사진) 작가가 첫 소설집 <신의 뜨락에 그녀들의 자리는 없다>를 세상에 내놨다.
‘정은출판’이 신춘문예 당선작가 기획선집으로 펴낸 소설집에는 2018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사십사 계단’, 2019년 <한국소설>에 발표한 ‘산책자의 봄’, ‘모노필름’을 비롯해 ‘보트 위의 소녀’, ‘오주의 모자’, ‘세븐틴’ ‘요하’ ‘당신의 계절’ ‘이글루’ ‘판초끌기’ 등 10편의 단편이 실렸다.
작품 ‘사십사 계단’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속초가 떠오른다. 소설 속 주요 장소인 ‘사십사 계단’은 속초 중앙시장 근처에 있는 ‘사십 계단’을 옮겨 놓은 것이다. 작가가 ‘사십 계단’을 ‘사십사 계단’이라고 한 것은 작품의 내용과 관련한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 ‘사십사 계단’은 이런 곳으로 정의돼 있다.
“사람들은 중앙시장 끝자락에 있는 사십사 계단을 ‘사’ 자가 두 개나 들어가 있는 ‘재수 없는 곳’이라고 하지만 ‘사사파’들에게는 이 지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사사파’는 저마다의 상처와 아픔을 안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이다. 모피 할인점에서 일하는 여주인공은 술에 절은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엄마와 마루 밑에 기어들어가 숨어야 했고, 임신 일곱 달째 집을 나왔지만, 뱃속의 아기 아빠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떠났다. 그는 스스로를 “나는 버림받은 개였다”고 하고, “‘사사파’에는 그런 애들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소설 ‘사십사 계단’은 ‘사사파’들이 ‘사십사 계단’을 우범지역이라고 폐쇄하려는 경찰에 맞서 자신들의 마지막 안식처를 지키기 위해 맹렬히 저항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그리며 끝을 맺는다.
출판사는 <신의 뜨락에 그녀들의 자리는 없다>에 대해 “가난과 폭력, 상실의 세계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려는 분투를 담고 있다. 세계는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만, 이들은 고통 속에서도 발랄한 생의 기쁨을 포기하지 않는다. 욕망에 더욱 천착하고,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며, 위선적 세계를 거부한다”고 소개했다.
이정연 작가는 소설집 ‘작가의 말’에서 “내 소설의 캐릭터들은 윤리가 정지된 땅에서 피 흘리며 사투하고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허물었다. 이들은 이제 어떻게 견고한 세상에서 절망하고 투쟁했는가를 전하기 위해 그대들에게 간다”고 썼다.
이 작가는 양구 출신으로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직에 몸담았다. 설악권에서는 1989년 속초여고를 시작으로 설악고, 거진정보공업고를 거쳐 2002년 속초고에서 퇴직했다. 현재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전교조 속초지회장과 민주노총속초시협의회 의장 등을 지낸 남편 정양언 씨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장재환 기자 semin27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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