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 양애경
쌀이 떨어져/ 농협마트에 가야겠다는 나를/
이젠 마트에 함께 갈 수 없게 된 엄마가/ 자꾸만 말린다//
얘 야, 가지 마/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면 안 돼/ 무거운 건 안 된다니까?//
엄마 내겐/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무거워요//
아침, 바람이 아직은 차다. 그러나 그 차가운 바람 속에 스며든 봄의 기운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계절의 순환과 생명의 시작은 늘 자신의 시간표대로 흘러간다. 오미크론이라는 변종 바이러스가 전 세계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늘어져도, 뉴스에서나 듣던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서로 자기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14명의 후보들 중 몇 명의 사람들이 끈질기게 보내는 문자와 카톡에 사람들이 짜증을 내도, 어김없이 개나리 나무에서는 꽃망울이 부풀고, 양지쪽에서는 푸른 새싹들이 발돋움을 한다. 그걸 우리는 자연의 섭리라고 부른다.
인간의 삶도 그 자연의 섭리라는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단지 그 삶의 시간표가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이 든 분들의 희망사항을 속된 표현으로 9988234라고 한다. 아흔아홉 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고 죽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런 표현이 생겼으리라 짐작한다. 아니 쉽지 않은 일이 아니라,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총인구에서 65세 이상의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인 사회를 고령화 사회라고 한다. 고령화 사회는 총인구에 대한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에 따라 고령화 사회(7%) → 고령 사회(14%) → 초고령 사회(20%) 순으로 구분한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853만7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6.5%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고령화율은 오는 2025년 20%를 초과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며, 2067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46.5%, 80세 이상 인구비중도 20.7%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 사회는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 다양한 문제점을 유발시키는 요소로 작동한다. 그러나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는 그런 전문적인 측면이 문제가 아니라, 피부에 당장 와 닿는 문제는 부양의 의무다.
필자는 베이비부머 세대다. ‘우리 세대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며, 자식으로부터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이다.’라는 말이 필자의 또래 모임에서 흔히 나오는 푸념 중의 하나다.
양애경 시인의 시 ‘짐’의 마지막 구절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무거워요’라는 메시지를 읽으며 마음이 서늘해졌다. 우리 세대는 부모를 모시는 일은 힘들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자식을 기르는 일은 사랑이지 희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세뇌되어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진 세상에서 ‘라떼는 말이야’라는 ‘꼰대’의 관점에서 벗어나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말자.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다.’라는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말처럼 서두르지 말자. 어차피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나의 소관이 아니니까!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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