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대형산불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안전하게 조치했을 뿐인데 이렇게 삶이 힘들어지고 고통스러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지난 2019년 4월 4일 발생한 고성산불 때 수많은 인명을 위험에서 구한 장창덕(50) 씨는 아직도 당시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근 2년을 홀로 병마와 싸우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아직도 그 당시를 떠올리면 숨도 쉬어지지 않고 심장이 빨라지며 ‘왜 길을 막느냐’는 환청이 들릴 정도로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공황장애까지 더해져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 채 ‘내가 왜 이렇게 됐지’라는 한탄으로 눈물만 앞을 가린다.
아비규환 속 주민들 대피시켜
최북단 고성군 토성면 교암리에서 부인이 운영하는 중국집 ‘아경’을 도와주며 넉넉지 않지만 단란한 가정의 가장으로 제 역할을 하던 그는 산불이 발생한 2019년 4월 4일 속초시자율방범대 순찰을 마치고 동아리 활동을 하던 중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족들의 안전이 걱정돼 귀가를 서둘렀다.
청해학교를 지나던 그는 벌써 산불이 도로를 타 넘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는 불길 사이를 통과해 옛 용촌검문소 앞 켄싱턴리조트 사거리에서 수많은 관광객들과 주민들이 자신이 왔던 길로 가려는 것을 보고는 급히 자신의 차량으로 막아서고 야간봉과 호루라기를 꺼내 혼자 통제에 나섰다.
교암에 살고 있는 자신의 가족들도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우선 더 위험한 곳으로 가려는 차량들을 막는 조치가 대형 인명사고를 차단하는 것이라고 확신한 장 씨는 속초 도심도 산불이 가까이 접근했고 자신이 뚫고 온 삼환아파트 방면 도로도 화염에 휩싸였다면서 많은 관광객과 지역주민들을 더 안전한 북쪽인 죽왕면 삼포 코레스코 리조트 주차장으로 황급히 안내했다.
그 과정에서 “빨리 가족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며 길을 비키라고 고함치며 항의하거나 “너 때문에 내 가족이 다치면 책임져라”는 사람들까지 아수라장 속에서 비난을 무릅쓰고 그는 더 많은 인명 피해가 나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홀로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그의 꿋꿋한 통제 덕분에 아비규환 속에서도 수많은 관광객과 지역주민들은 안전한 곳으로 신속하게 이동해 가족들의 생사도 확인하며 무사히 산불을 피해갈 수 있었다. 장창덕 씨가 고군분투하며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그 모습을 함형진 고성군의원도 지척에서 확인했다고 한다.
정상 생활 못해 어려움 가중
하지만 그는 그 이후부터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전날 너무 많은 연기와 재를 마신 탓에 목이 아프고 심장도 빨라지면서 후유증이 생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증상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져 외상 후 스트레스까지 찾아왔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재민들도 견디고 있는 상황에서 선행을 드러낼 수 없었던 그는 청심환 몇 개로 근근이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는 사이, 가스렌지를 비롯해 불을 보거나 바람이 불 때면 숨도 쉬기 어려워지고 심장이 빨라지는 데다, 환청까지 들릴 정도로 증상은 더욱 악화되면서 응급실에 실려 가기 일쑤였다.
그의 외상 후 스트레스는 1년이 넘어가면서 더 안 좋아져 공황장애까지 앓게 됐고 결국 지난해 8월 속초의료원에서 진단을 받은 데 이어 상급병원인 강릉아산병원에서도 같은 진단을 내렸다. 앞서 지난 2019년 4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12회 상담을 받았던 그의 증상은 더 나아지지 않은 채 정상 생활로의 복귀를 가로 막고 있다.
이렇다 보니 장창덕 씨의 가정도 더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무엇보다 아이들이 산불 발생 당시 “아빠는 우리보다 남들을 먼저 챙기는 게 우선이냐”고 했던 말이 항상 귓전을 맴돌아 가족을 잘 보살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우울증까지 와 상태는 더욱 악화하고 있다. 한 번 병원을 찾아 상담과 치료를 하면 20만원이 넘게 들어가는 병원비도 이제는 그에게 큰 부담이 되면서 경제상황도 안 좋아지고 있다.
“산불로부터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지금의 제 상황은 너무 힘들고 외롭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 제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했던 일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그 상황이 재현된다고 해도 저는 으레 그렇게 했을 겁니다. 주민들의 안전지킴이인 자율방범대원이기 때문입니다.”
2년 넘도록 정상 생활을 못할 정도로 마음과 몸이 피폐해진 장창덕 씨는 대형산불로부터 수많은 생명을 지켜냈지만, 정작 자신을 지켜내지 못하고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자괴감이 더 큰 상처로 남겨졌다. 불을 보거나 바람이 불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생각에 자신이 선행을 베풀어 수많은 생명을 구했던 곳은 이제 더 이상 지나다닐 수 없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지역에서는 이 같은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듣고는 의사상자로 추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산 기자 haareezee@hanmail.net
장창덕 씨가 평소 자율방범대원으로 활동하며 주민들의 안전을 지켜내고 있다.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