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을 마치고 우리나라 동해안 최남단에서 최북단을 걸으면서 참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정말 아름답고, 그래서 인생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교연 전 양양군 기획감사실장이 40년간의 공직을 마치고 지난 1월 1일 동해안 해파랑길 최남단인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부터 최북단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70km를 일시 종주하며 인생 2막을 뜻깊게 열어 화제다. 평소에도 근면 성실하기로 유명한 그는 퇴직 후 공무원으로서 인생 1막을 정리하고 처음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자 동해안 해파랑길 종주를 계획하고 새해 첫날 가족들의 따뜻한 원정 응원 속에서 해파랑길 종주에 나섰다.
‘뜨는 해를 파란 바다에서 누구랑 함께 걷는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해파랑길에 들어선 고 전 실장은 부산이라는 화려한 도시의 밤바다와 젊음의 해변을 생동감 넘치게 느끼며 1일차를 보낸 후 울산에서 2일차와 3일차를 거치면서 태화강 국가정원과 고래 조형물도 눈에 넣는 등 양양군의 미래비전과 비교하는 공부하는 해파랑길 걷기에 구슬땀을 흘렸다. 하루 평균 5만보 이상을 빠른 속도로 걷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에게는 오래전부터 ‘평소 가보지 않은 곳에서 나를 느끼고 우리 고장의 소중한 아름다움을 느껴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상기시키며 무거운 발걸음을 가벼운 마음으로 옮겨나갔다.
4일차에 방어진항을 걸으면서 연어길도 걷기 좋은 길이라고 생각한 그는 북상을 계속해 5일차에는 경주에 진입해 힘겨울 때면 디모테오 이광재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떠올렸고, 이튿날인 6일차에는 포항에 들어갔다. 7일차를 맞아 우리나라 지도의 꼬리에 위치한 호미곶에서 ‘상생의 손’을 보며 평화를 기원했고, 다시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를 흥얼거리며 영일만 둘레기를 거쳐 8일차 해파랑길 16코스를 주파했다.
포항을 뒤로하고 영덕으로 들어가 9일차를 맞은 그는 서서히 설악권 동해안과 비슷한 감성을 느끼면서 18코스를 마무리하고 이튿날인 10일과 11일차에는 강구항 대게거리를 거닐며 ‘쪽빛 파도, 빛과 바람, 푸른대게, 목은사색’이라는 네 가지 테마로 구성된 영덕의 명품 블루로드를 만끽한 후 강원도와 인접한 울진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해파랑길을 시작한 지 12일차 444.6km를 북상해 닿은 울진은 후포항과 월송정 등 23코스와 24코스의 진풍경이 흡사 설악권의 동해안과도 비슷한 정취를 보여 더 정감을 느끼게 했다.
“설악권 동해안 눈부시게 아름다워”
“동해안을 절반 걸으면서 우리가 사는 설악권의 동해안과 해파랑길이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인생을 느꼈고 삶의 소중함도 다시금 알게 됐습니다. 모든 것이 고맙고 소중합니다.”
이제 절반을 넘어 고향 강원도 인근까지 쉼 없이 걸어온 그는 13일차에는 온종일 그동안 수고해준 자신에게 휴식을 주며 모든 짐을 내려놓았다. 하루를 푹 쉰 고교연 전 실장은 다시 워킹화를 조여 맨 후 14일차 울진 죽변항을 지나 이튿날인 15일차에는 드디어 해양레저의 천국으로 불리는 강원도 삼척시에 도착해 지인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힘을 보충했다. 16일차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깎지 않은 수염은 ‘도사’처럼 길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발을 재촉해 어느덧 해파랑길 31코스 맹방해변 입구에 다다랐다.
마음은 물론이고 발도 빨라진 고 전 실장은 17일차를 맞아 동해역과 묵호역을 지나며 동해북부선 양양역이 세워질 날만을 간절하게 소망한 후 18일차에는 강릉 안인해변까지 도착했다. 이제 손만 닿으면 고향 양양이 지척이다. 그래도 볼 건 봐야 하기에 해파랑길 38코스를 거치고 나서 1월 20일 드디어 고향 양양에 이르러 ‘고맙다 양양’을 있는 힘껏 외치며 고향의 따뜻한 손길과 기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해파랑길 41코스부터 시작하는 양양구간은 43코스를 지나 손양면 송전리 본가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부산에서 고향 양양까지 꼬박 645.8km를 걸어 20일이 걸렸고, 이제 마지막 최북단 고성 통일전망대까지는 124.1km가 남았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사목회장도 역임한 그는 본가에서 단잠을 자고 21일차를 맞아 디모테오 이광재 제3대 양양성당 신부님의 성인시복시성을 기원하며 순례길을 걸었고, 45코스 설악해맞이공원을 거쳐 청호동 아바이마을에서 하루를 묵었다. 이튿날인 22일차에는 장사항을 지나 마지막 지역인 고성에 진입해 청간정, 청학정, 능파대 등 46코스를 만났고 가진항까지 47코스를 단숨에 내달렸다. 간성터미널 주변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1월 23일 동해안 해파랑길 23일차 아침, 가진항에서 옮긴 발걸음은 남천교와 북천철교 등 옛 동해북부선의 기억을 떠올렸고 49코스인 명태의 고장, 거진항에 도착해 해안도로를 따라 화진포의 성과 금강산콘도를 지나 명파해변과 제진검문소를 거치면서 종착지인 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 동해안 해파랑길 최남단 오륙도에서부터 시작한 ‘인간 고교연’의 종주가 10구간 50코스 770km의 거리를 23일 동안 주파하며 이날 오후 3시 30분 그렇게 완성됐다.
“정말이지 평소에도 걷고 싶었던 길인데, 이렇게 공직을 무사히 마치고 많은 응원 속에 건강하게 완주할 수 있어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꿈 같던 23일 지났지만 아직도 꿈을 꾸는 듯 인생길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코로나19 장기화 속에서도 누구보다 실천적이고 열심히 동해안 해파랑길을 걸으며 인생 2막을 시작한 고교연 전 양양군 기획감사실장은 어려운 시대를 건너는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있다.
김주현 기자 joo69523@hanmail.net
가족들이 동해안 해파랑길 시작점인 오륙도 일원에서 완주를 응원하고 있다.
고교연 전 실장이 해파랑길 종착지인 최북단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축하를 받고 있다.
송포초등학교 동문들이 고교연 전 실장의 완주를 기념해 단출한 모임을 가졌다.
고교연 전 실장
해파랑길 완주 증서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