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5월, 속초공설운동장에서 무슨 일이?
필자가 속초고 3학년 관악부원으로 활동을 했던 1976년, 공설운동장에서는 정말 어마어마한 행사가 치러졌었다. ‘제6회 강원도교련실기대회’라는 행사였었다.
요즘 세대들은 ‘교련’이 무엇인지 잘 모를 것이다. 교련(敎鍊)이란 ‘학생군사훈련’을 말하는데, 군사정권 시절이었던 1970년대에 교련은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필수 과목이었다. 고등학생인 경우는 일주일에 2시간씩 3학년 1학기까지 수업을 받았었다. 제식훈련, 집총체조, 총검술, 사격술, 화생방교육, 각개전투 등등 기초군사교육 과정이 총망라되어 있었는데, 마지막 과정은 군부대에 1박 2일 일정으로 입영하여 실탄사격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교련 과목은 수업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었다. 각 학교마다 ‘교련검열’이라는 것을 받아야 했다. 검열단은 군부대에서 직접 나왔었다. 그래서 모든 고등학교는 해마다 교련검열을 준비하느라 난리법석을 떨었는데, 소중한 점심시간이 반 토막 나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 상황이 그랬으니 교련실기대회는 정말 어마어마한 행사였던 것이다. 그런 행사였던 것만큼 행사 당일 공설운동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었다. 도내 모든 고등학교 교련 교사와 해당 학교 기수단이 총집합했고, 관중으로 참여한 속초시민들만 해도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였었다. 우리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도 여러분 오셨었다. TV도 아주 귀했던 시절이었으니 그 행사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구경거리였던 것이다.
속초 관내 고등학교의 응원전도 아주 치열
행사는 꼬박 이틀 동안 치러졌었다. 교련대회는 체육대회와는 성격이 달랐지만, 그래도 대회는 대회였다. 우승에 욕심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각 학교별 응원전도 매우 치열했는데, 속초고는 ‘총화 안보’라는 문구의 카드섹션까지 했었다.
그런데 ‘밴드왜건’이란 말도 있듯이, 응원전은 관악부 있는 학교가 무조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속초고가 가장 유리했다. 속초고 관악부는 그 행사의 공식 의식곡(국민의례, 열병식·분열식용 음악 등등)은 물론 응원용 연주곡도 여러 곡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속초여고는 큰북‧작은 북‧심벌즈 등 타악기로 편성된, 일종의 리듬 악대가 있었다.(그 악대에 맞추어, ‘여고졸업반’, ‘길가에 앉아서’ 등 당시 인기 가요곡들을 부르던 속초여고 응원석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속초고 응원석과 속초여고 응원석은,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속초상고만 악대가 없었다. 그 대회를 앞두고 속초 관내 고등학교가 모두 공설운동장에 모여서 예행연습도 지겹도록 했었는데, 악대가 없는 속초상고 쪽은 늘 조용하기만 했다.
1970년 ‘속초실업고’라는 이름으로 개교를 한 설악고는, 교련대회가 있던 1976년에는 ‘속초상업고’로 개칭이 되었다. 그런데, 개교 당시에는 학교 건물이 미처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었다. 그래서 속초초등학교 건물 한 동(棟)을 빌려(?) 거기서 몇 달 동안 수업을 했었다. 필자가 당시 속초초등 6학년생이어서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 반 교실과 속초실업고 임시 교실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화장실(실외)도 같이 사용했었다.
지금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실업고 형아들이 교련 수업을 받는 장면이다. 대위 계급장을 단, 군복 차림의 당시 교련 선생님은, 어린 내 눈에 상당히 무서워 보였었다. 아주 다부진 몸매에, 인상은 불독 같이 험상궂었다. 거기에 구령 소리도 어마어마하게 컸었다. 제식훈련 때 그 선생님의 쩌렁쩌렁한 구령 소리가 우리 반 교실까지도 들려왔었다. 좌향좌, 우향우, 앞으로이 갔!…. 반 친구들은 그 소리에 담임 선생님 눈치를 보면서 키득키득 웃곤 했었다.
속초상고 관악부가 첫선을 보이던 날
각설하고. 당시 속초상고는 역사가 짧은 학교였었다. 그래서 재정 부담이 큰 관악부 창단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이었는데, 속초상고에도 관악부가 생겼다는 소문이 들렸다. 교련대회를 위해 급히 조직했다고 했다. 악기들은 이웃 학교에서 모두 빌려왔다고 했다. 지도 강사는 악사 출신 한 분을 계약직으로 초빙했다고 했다.(당시 음악 선생님이 안 계셨던 속초고도 대회를 위해 군악대 출신의 강사 선생님을 계약직으로 초빙을 했었다.) 연습은 완전히 스파르타식으로 한다고 했다.
마침내 속초상고 관악부가 첫선을 보이던 날이었다. 그날 행사장이 완전히 뒤집어지고 말았다. 속초상고 관악부의 악기 소리는, 급조된 관악부답게 정말 기본이 안 되어 있었다. 완전히 생소리였다. 특히 트럼펫 파트 소리가. 하지만 연주곡은, ‘여고졸업반’, ‘뷰티풀 선데이’ 등등 당시 최고 인기 가요곡들이었고, 실력은 부족하지만 사력을 다해 연주하는 모습에 관중들은 뜨겁게 환호했다. 심벌즈 주자의 현란한 연주 동작과, 연주곡에 맞추어 상고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율동을 하는 모습도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속초여고 응원석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대회 기간에 시내 퍼레이드도 했었는데, 속초상고 관악부가 지나갈 때는 졸업생 선배들이 손을 흔들면서 아주 뜨겁게 환호하고 격려를 했다.
속초상고 관악부에 비해 속초고 관악부 연주곡들은, 아주 다양했다. 하지만 대부분 비대중적인 곡들이었다. 가요곡이라곤 ‘처녀 뱃사공’ 단 한 곡뿐이었다. 그나마 탱고 리듬의 번안곡 ‘아마다미아’와 ‘연심(사랑의 마음)’ 등이 비교적 대중적인 곡이었다. 그래서 속초고 관악부 친구들은, 우리도 인기곡들을 연주했으면 좋겠다며 필자에게 편곡을 좀 해오라고 했다. 그래서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급히 가요곡 몇 곡을 편곡했었다. 하지만 기존의 곡도 소화해내기에 바쁜 상황이라, 새로 편곡해온 곡은 제대로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급조되었던 속초상고 관악부는, 그 후 1980년대 초반 무렵에 정식으로 창단되어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관악부로 자리 잡게 된다.
<계속>
임수철
작곡가·전 음악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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