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 “너와 나의 관계의 세계 속에서 사람은 자기의 존재 및 보편적 존재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관계를 알며 ‘너’의 현존을 아는 사람만이 결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결단하는 사람만이 자유롭다. (…) 관계의 목적은 관계 자체, 곧 ‘너’와의 접촉이다. 왜냐하면 ‘너’와의 접촉에 의하여 ‘너’의 숨결, 곧 영원한 삶의 입김이 우리를 스치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 서 있는 사람은 현실에 관여한다. (…) 모든 현실은 하나의 작용이다. 나는 그것을 내 소유로 할 수는 없지만, 그 작용에 관여하고 있다. 관여가 없는 곳에는 현실이 없다. 자기 독점이 이루어지는 곳에 현실이 없다. 관여는 직접적으로 ‘너’와 접촉하는 것이며, 그럴수록 그만큼 더 완전하다.”라고 하였듯이 너와 나의 만남,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진정한 실존으로서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이 세계는 진정한 실재가 아니라 단순한 주관적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계의 배후에서 이 세계를 성립시키고 이끌어가는 근본적인 힘은 ‘맹목적 의지’이다. 그런데 무한한 의지에 비해 그 충족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이 세계는 최악의 곳이며 인생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이 고통스런 삶을 벗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모든 욕망을 끊는 철저한 의지의 부정(不定)으로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쇼펜하우어는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이나,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자기희생과 같은 것을 필요로 한다. 자기 집착과 아집, 어떤 상(相)이나 법(法), 어떤 욕망을 위한 의지에서 벗어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너와 나,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는 경계를 없애고, ‘이것은 진실이고 저것은 거짓이다’라는 좁은 생각과 식견을 버리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라는 인간이 만든 편견과 우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 기준이 꿈같고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왜곡된 잘못된 상, 머리를 짓누르는 큰 바가지인 번뇌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 더 가지는 데 집착하고 권위와 명예를 얻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어리석음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허상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자신의 뜻으로 판단하는 욕망과 의지에서 벗어나야 자유인으로서 참된 자아로 돌아갈 수 있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하였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인간이 먼저 세상에 실존하고, 인간이 정의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그것은 인간이 먼저 실존하고, 그 다음에 세계 내에서 우연히 만나고 세계 내에 그 모습을 드러낸 다음에야 비로소 정의가 내려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존주의에서 생각하는 인간이 정의 불가능한 까닭은 인간이 최초에는 그 어떤 이름을 지닌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중에야 비로소 인간이 되며 스스로 자신을 만드는 자가 된다. 인간의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실존주의자가 생각하는 인간은 정의될 수 없다. 인간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중에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이란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구상할 신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구상하는 무엇이며 스스로 원하는 무엇일 뿐이다. 인간은 이처럼 실존 이후에 스스로 구상하는 무엇이기 때문에, 또 인간은 실존을 향한 도약 이후에 인간 스스로 원하는 무엇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존재이다. “주체성이란 인간이 먼저 실존한다는 것,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던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 인간은 우선 주체적으로 자기의 삶을 살아가면서 기획하고 투신하는 존재”로 자신에 대해 책임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존주의의 원리이다. 주체성이 인간을 돌이나 탁자보다 더 존엄한 것으로 만든다. 인간은 미래를 향하여 던지는 존재요, 미래 속에 자신을 집어넣는 일을 의식하는 존재이다. 이처럼 사르트르는 인간은 신 없이 홀로 남겨진 상태에서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지려는 실존적 휴머니즘을 주장하며, 개인의 ‘주체적 결단’을 강조하고 있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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