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앉아 있는 연인들이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손에 든 휴대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모습이 이제는 이상하지 않습니다. 놀이터에 온 초등학생 친구들이 뛰어노는 게 아니라, 휴대폰을 가지고 게임에 빠져 있는 모습도 너무나 흔한 풍경입니다.
그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스마트폰, 컴퓨터, 태플릿 PC 등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이기 때문입니다.
<까망이와 하양이>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SNS 시대에 어떻게 해야 서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까망이와 하양이는 온라인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둘은 몇 년 동안이나 하루 종일 소통하지만 실제로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림책에서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 둘의 얼굴에는 형체가 없습니다. 하지만 둘이 실제의 세상에서 만나기 시작하면서 눈이 생기고, 푸른 들판에서 꽃향기를 맡은 후에는 코가 생기고, 물속에서 헤엄치며 촉감을 느낀 후에는 입이 생깁니다. 이렇게 둘이 자연을 함께 탐색한 다음에는 얼굴에 또렷한 형체가 나타납니다.
필자가 이 그림책을 보면서 첫 번째 만난 세상은 관계 맺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코로나 펜데믹으로 사람 만나는 것이 더 힘들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만남의 의미와 방식이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만나서 차 한 잔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술 한 잔에 인생과 철학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던 시절은 옛날이야기로 남았습니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만남은 휴대폰 화면으로 전환되고, 대화는 목소리가 아닌 카톡이나 메시지의 문자로 나누는 게 더 편리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만남과 대화는 진짜 관계 맺음일까요?
또한 우리 아이들은 친구와 우정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낼지도 책 읽는 내내 궁금했습니다. 몸으로 부딪는 놀이가 아닌 가상세계에 만들어진 게임 세상에서 만난 그들은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두 번째 만난 세상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소통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림책에서 까망이는 하양이 집에 들어가지만 하양이를 보지 못합니다. 하양이 또한 까망이 집에 들어가지만 까망이를 보지 못합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를 보지 못할 수 있을까요?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검정색과 하얀색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색은 국가, 종족, 습관, 종교, 생각, 인생관, 정치적 성향 등등….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색깔만을 인식하고, 익숙한 것에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낍니다. 반면 자신이 선택한 것과 다른 색깔에는 선입견과 편견으로 마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까망이와 하양이가 서로를 보지 못하듯, 나와 다른 색깔의 피부를 가진 이들을 보지 못하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은 덜 가진 사람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단순히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다채롭고 다양한 모양을 가진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까망이와 하양이가 소통하고, 관계 맺음을 가지면서 흑백의 세상이 조금씩 다양한 색깔로 변화하는 그림을 읽어낼 줄 아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
<까망이와 하양이>가 보여 준 또 다른 세상 이야기입니다.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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