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동해안에서 발생한 납북귀환어부 국가폭력 피해사건이 2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 이후 인권침해 사건으로는 처음으로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지난 2월 8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건설호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1건과 풍성호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3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건설호는 1968년 11월 7일, 풍성호는 다음날인 11월 8일 각각 동해안 어로한계선 인근 바다에서 북한 경비정에 의해 강제로 납북되었다가 다음해인 1969년 5월 28일 거진항으로 돌아왔다. 이 때 피납된 23척 어선과 150명 어부가 함께 귀환했다. 진실화해위는 건설호와 풍성호 선원들이 영장도 없이 불법 구금되어 구타와 고문 등 가혹행위를 받고 허위진술을 강요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납북귀환어부들은 형사처벌을 받은 후에도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군 보안대를 포함한 수사기관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감시와 사찰을 받았으며, 가족들도 취업 및 거주이전의 제한을 받는 등 공권력에 의해 심하게 인권침해를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진실화해위는 인권침해 사실에 대해 ‘개연성이 상당하다’라고 표현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가 건설호와 풍성호 납북귀환어부들과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재심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번 조사과정에서 납북귀환어부들에 대한 감시와 사찰을 입증하는 ‘사찰보고서’와 ‘심사자료’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진실규명 결정이 난 건설호와 풍성호 피해가족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확정하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 지난 1월말 현재 진실화해위원회에는 47건의 납북귀환어부 진실규명 신청이 접수되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1월 25일 모두 7건의 신청이 접수된 고성 아야진 승운호 피해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조사에 착수했다. 현재 승운호 사건 피해자는 15명이 확인되었다. <엄경선 전문기자>
동해안납북귀환어부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 운영위원들이 지난 1월 26일 진실화해위원회를 방문해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시민모임은 납북귀환어부 진실규명을 보다 빨리 진행해 줄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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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호 피해가족 김윤애씨 이야기
“주변 따가운 시선과 무시, 악으로 버티고 살았다”
이번에 진실규명 결정이 난 건설호 피해 가족인 김윤애(58)씨와 지난 2월 11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부친 고 김영곤씨와 가족들의 피해 이야기를 들었다. 경남 거제에 살고 있는 김윤애씨는 부친과 가족의 억울함을 풀고자, 지난해 1월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로서는 가장 먼저 진실규명신청서를 제출했다.
1968년 11월 7일 부친 김영곤씨가 탄 건설호를 비롯해 모두 어선 4척과 어부 32명이 북에 납치되었다. 북한 쾌속정이 우리 어선들을 덮쳐 총을 쏘면서 위협해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건설호도 북한군이 갈코리로 선장 목을 위협하면서 붙잡아 갔다. 온통 조업현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는데도 우리나라 경비정은 현장 가까이에 오지도 않았다.
납북 당시 아버지는 34살이셨다.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이발소를 하다가 사업이 안 풀려 결국 배를 타게 됐다. 고향을 떠나 온 가족이 고성 거진읍에 와서는 기름집 옆 달셋방에 세를 들어 살았다. 아버지가 북에 붙잡혀 가던 날, 어머니는 땅을 치며 통곡을 했다. 같은 날 수 십 명의 어부들이 납치되자, 거진항 부두는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 내 나이는 6살, 언니는 7살, 어린 여동생 둘까지 모두 딸만 넷이었다. 동네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어느 어른이 지나가면서 “아버지가 북에 붙잡혀 갔는데 철딱서니 없이 뛰놀고 있냐”라고 핀잔을 줬다. 수십년이 지났어도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납북되고 우리 가족은 다시 고향 통영 할아버지한테 내려왔다. 어머니는 굴을 까는 일을 했다. 몇 달이 지나 집안 어르신이 아버지가 탄 배가 북에서 돌아왔다고 뉴스에 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랑 막내 여동생만 데리고 부랴부랴 다시 거진항으로 찾아갔다. 아버지가 돌아온 지 이틀만에 거진으로 쫓아왔지만, 아버지를 만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북에서 돌아와 배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트럭에 실려 고성경찰서로 끌려갔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버지는 끌려가서 심한 구타와 고문을 받았다고 하셨다. 얼마나 맞았는지 입안이 다 터졌다. 맞지 않으려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협박을 받았다. 법원에 나가 진술할 내용을 미리 다 만들어놓고는 반복적으로 시키는데,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또 두들겨 팼다고 한다.
한 달 가까이 영장도 없이 구금되어 조사를 받고 나서야 구속영장이 나왔다. 그리고 1심 재판에서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아버지는 1백일 이상 갇혀 있었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다시 항소했다.
아버지는 다시 끌려가고, 어머니는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명태나 양미리를 머리에 이고 멀리 촌으로 가서 감자나 먹을거리와 바꿔왔다. 내가 7살, 막내 여동생은 2살 때였다. 그때 내가 동생에게 죽을 떠먹였다. 해가 저물어 매일 터미널에 나가 어머니를 기다렸다. 어떨 때는 어머니가 버스를 놓쳐 돌아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동생을 데리고 다시 집에 들어와서 식은 밥을 먹이고 재우기도 했다.
통영으로 돌아와서도 우리 집은 늘 형사들이 찾아와 뒷조사를 했다. 아버지는 타지에 일이 있어 나갔다가 돌아오면 경찰서에 불려가서 날밤을 새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서 아는 친척까지도 피해를 입을까봐 어디 함부로 가지 못했다. 친척간 왕래도 없고 주변사람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그냥 우리끼리만 살았다. 우리 집에 형사가 뒷조사를 나오니까 마을에서는 아버지더러 간첩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이장과 반장이 동네몰이를 했다. 이장하고 아버지하고 심하게 싸우기도 했다. 아버지는 외양선을 타려고 했는데 선원수첩이 나오지 않았다. 이때부터 아버지는 삶을 내려놓으신 것 같다. 체격도 작고 외소한데, 힘든 노동일을 사흘 정도하고는 꼭 하루는 몸이 아파서 끙끙 앓았다. 큰 배는 못 타고 바닷가 배만 타야 했다. 1989년 11월에 돌아가셨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무시, 따돌림에 아버지와 우리가족은 그야말로 악으로 버티고 살았다.
언니는 공부를 잘해서 공무원이 되려고 시험을 봤다. 두 번씩이나 신원조회로 탈락했다. 나도 번듯한 회사에는 취직할 수가 없었다. 영세한 공장에 취직해야 했다. 말 못할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나 때문에 너희들이 고생한다”며 “내가 죽어야만 너희가 피해를 보지 않을텐데”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 고통을 알 수가 없다. 2020년 12월 10일부터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 신청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신청서 준비에 들어갔다. 국가기록원에서 판결문을 떼고 서류를 준비해 2021년 1월 진실규명신청서를 접수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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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성호 선장 고 황원식씨 이야기
형 살고 귀향 후에도 수시로 보안대 끌려가 고문
풍성호 인권침해 진실규명 신청은 모두 3건이 접수되었다. 필자는 지난 2009년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강릉에서 속초까지 찾아온 풍성호 선장 고 황원식씨로부터 통일부로 납북피해자 보상신청서 접수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 접수한 납북피해자 보상신청은 기각당했고, 이후 황원식씨는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생을 달리했다.
나는 고향 양양군 현남면 동산리를 떠나 1968년 11월 8일 거진항 소속 풍성호 선장으로 명태잡이 조업 중에 납북되어 다음해인 1969년 5월 28일 귀환했다. 납북 당시 어로한계선 인근에서 어로지도선 무궁화 13호와 함께 조업을 하고 있었는데 북한 쾌속정이 넘어와서 다가오기에 급하게 그물을 끌어올리고 도망을 치려던 중에 기관고장으로 배가 움직이지 못해 쾌속정에 끌려갔다. 당시 우리 지도선에 끌어달라고 요청했으나 외면하고 도주하였다. 당일 어선 7척과 어부 52명이 함께 피랍되었다.
1969년 5월 29일 귀환 후 고성경찰서에서 1차 조사를 받고 다시 속초경찰서로 넘어와 속초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고 기소되었다. 검찰정 지하에서 키가 크고 덩치가 큰 사람으로부터 하룻동안 고문을 받았다. 북으로부터 무슨 지령을 받아 왔느냐며 거꾸로 매달아 놓고 심문하였다. 이때부터 허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검찰 조사를 받고 같이 북에서 귀환한 배 선장 7명이 함께 기소되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며칠간 잠시 풀려났다. 그러나 다시 검찰이 항소하여 춘천교도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아 징역 1년 실형선고를 받고 대전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 수산업법과 반공법 등으로 처벌받은 것으로 안다.
고향 양양군 현남면 동산에 돌아온 후 경찰에서 수시로 집을 찾아왔으며, 지역을 벗어날 때는 반드시 신고해야 했다. 심지어는 어구를 사러 20~30분 거리의 인근 명주군 주문진읍에 갈 때도 관할서가 달라 담당경찰관에게 전화로 신고하고 돌아와서도 다시 신고해야 했다.
귀향 후인 1970년부터 2년간 수시로 보안대에 끌려가서 고문을 받았다. 이때 몸이 크게 망가졌다. 밤 10시경 보안대 사람들이 동산리 마을 입구에 군용짚차를 세워놓고 같이 가자고 불러내 차를 태우고 속초 청대산 밑 보안대로 끌고 갔다. 장소는 속초 청대산 밑이 틀림없다. 그 사람들은 자기 소속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아들이 한밤중에 끌려가니 이리저리 알아보니 보안대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북에서 받은 지령이 뭐냐, 북에 가서 아는 사람을 만났느냐고 추궁을 받았다. 거꾸로 매달아 놓고 코에 물을 부어넣었다. 심지어는 물에 고춧가루를 풀어 코에 붓기도 했다. 보통 심문은 2~3일 정도 진행되었으며, 밤에는 심문을 받고 낮에는 잠을 잤다. 이렇게 2년간 10여 차례 이상 고문을 받았다. 그 후 오른쪽 다리가 아프고 저려서 걷는 것도 불편하고 제대로 뛰지 못했다. 선착장의 배로 건너뛰지 못해 해경에서 배를 타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고문 후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으나 몸이 많이 아팠다. 다리는 통증이 심해 주문진 병의원에서 약을 타 먹었다. 1994년 뇌출혈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다행히 회복되었으나 이로 인해 몸 오른쪽에 마비가 왔으며, 언어장애와 당뇨, 시각장애도 함께 왔다. 고문 후유증으로 뇌출혈이 온 것이다. 조그만 배를 끌고 다녔으나 쓰러진 이후 관리를 하지 못해 수협으로부터 경매처분을 당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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