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가 태어난 게 엊그제 같은데, 내 나이 어느덧 칠순이 되었어요. 이 나이가 되면 막내가 일하는 곳에서 지인들을 불러 모아 칠순 잔치를 열어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잔치를 여는 대신, 얼마 전 펴낸 수필집 <감사가 낳은 행복>으로 책거리를 했지요. 고고한 학식이나 전문적인 지식이 담긴 내용은 아니지만, 소소한 저의 삶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황병인 작가는 자신의 책을 소개하며 지나온 삶을 이야기했다.
지난 1968년 찬바람이 불던 어느 가을날, 그의 아버지는 가난과 부양해야 할 가족들만을 남긴 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18세가 된 청년의 양 어깨에는, 어머니와 어린 4명의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버거운 삶이 지워졌다. ‘68해일’로 동해안 바닷가 마을이 초토화됐던 바로 그해, 그는 목숨만 부지한 채 모든 것을 잃었다. 13살 동생이 등록금이 없어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했을 때 그의 가슴은 찢어지게 아팠다. 이런 가난은 그에게, 하루빨리 돈을 벌어 동생들의 학비를 마련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처참했던 68해일 사건으로, 정부에서는 동해안 이재민들에게 시멘트를 공급해 주었다. 이런 지원 덕분으로 그는 조금 높은 지대에 시멘트 벽돌 집을 지었다. 그때 그는 생애 처음으로 ‘벽돌틀’을 구매해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 주변에 많았던 모래를 가져다 시멘트와 섞어 벽돌을 찍어 팔기 시작했다. 그렇게 돈을 벌어 생계를 꾸렸고 그 이듬해 동생을 중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었다.
“젊은시절 고단한 삶, 돌이켜보니 보람”
“68해일로 무너진 집을 제 손으로 다시 지었습니다. 이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들 공부시키고 결혼 후 가정을 꾸려 아이 셋을 낳아 키웠습니다.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던 젊은 시절의 삶은 매우 고단하고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보람되고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982년 봄, 농사와 공사 현장 미장일로 삶이 나아질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지병을 앓고 있는 노모와 어린 두 딸을 아내에게 남겨둔 채, 사우디아라비아 해외 근로 현장으로 외화벌이에 나서기도 했다.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그의 어머니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다. 가난했던 탓에 평생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어머니는 그 한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에 허리띠를 두 번 졸라 매며,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 그는,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그의 이름을 따 1990년 ‘유정순 장학회’를 설립했다. 유정순 장학회는 그 해부터 시작해 매년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오고 있다.
“제가 땀 흘려 번 돈의 많은 부분이 동생들과 자녀들 학교 등록금으로 지출됐습니다. 그래서 항상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있었지만, 불평 한번 하지 않고 저의 뜻에 따라준 아내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낍니다.”
황 작가의 아내 홍경표 씨는 “자식처럼 돌봐준 시동생들이 저에게 감사하다고 말할 때면, 제게는 힘들었던 그 시절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라며 사랑과 희생의 보람된 삶을 깨닫게 해준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다.
“저의 삶을 여러분과 나눕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황병인 작가는 하루하루 삶을 이어오며 꾸준히 일기를 썼다. 그는 소소하게 써 놓은 글들을 한 데 엮어 <벌>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2006년 처음 발간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지인들을 불러 모아 그의 시골집 마당에서 책잔치를 벌였다. 마을 어르신들은 책속의 자신들의 이름을 보고 신기해하며 기뻐했다. 그래서 그는 칠순이 되면 또다시 책을 내고 그동안 준비했던 서예작품도 전시하고 싶었다. <감사가 낳은 행복>이라는 책을 낸 후 맛있는 음식을 푸짐히 차려 놓고 한 번 더 마을 잔치를 열고자 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행사는 치르지 못했다. 대신 떡을 빚어 나누어 주며 책거리를 대신해 지인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2020년 뇌경색으로 글쓰기가 다소 힘들어진 그는 “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이지만, 그 평범한 삶을 글로 표현해 엮으니 책이 됐다”며 “‘저의 삶을 여러분과 나눕니다’라고 사인하며 책을 선물해 줄 때 참으로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감사한 마음과 즐거운 마음만 있으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감사하는 삶은 우리에게 새로운 치유의 힘과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 인간 삶 그 자체가 고마운 일인 것이다’(책 내용 발췌 ‘감사’ 187쪽). 황병인 작가의 책 <감사가 낳은 행복>을 읽고 싶은 독자는 작가(010 6749 5581)에게 문의하면 된다.
지산 기자 haareezee@hanmail.net
‘유정순 장학회’ 황병인 작가가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감사가 낳은 행복’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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