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아득하기만 한 인생을,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내게 됐어요.”
산을 좋아해 산악인으로도 불리는 방순미 시인이 20년 전, 일행 3명과 함께 40일 동안 백두대간을 일시 종주한 기록을 담아낸 신행기 <백두대간, 네가 있어 황홀하다>(도서출판 산악문화)를 출간해 화제다.
방순미 시인은 개인 시집 2권 출간에 이어 이번에 3번째로 산문집을 내면서 20년 전의 백두대간 종주가 극한 상황과 내면의 변화를 가감 없이 선보이는 것이라 감회가 새롭다고 소회했다.
특히, 당시 종주에 함께 했던 고 최명길 시인이 지난 2015년 백두대간 봉우리마다에서 지은 시를 모아 낸 유고시집 <산시 백두대간>과 숨결이 느껴져 더욱 아련하다고 떠올렸다.
‘새로움과 도전’ 열정으로 의기투합
방 시인의 백두대간 종주 산행기는 20년 전, 관동산악회를 이끌던 산악인 김영기 회장과 스승인 고 최명길 시인, 최종대 작가 등 자유로운 영혼 4인이 좋은 인연으로 만나면서 시작된다. 관동산악회 회원으로 뭉친 이들 4인방은 지난 2002년 6월 17일 지리산 천왕봉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국토의 등줄기인 백두대간 일시 종주에 첫발을 뗐다. 저마다 살아온 삶이 다르듯, 성격도 달랐지만 새로움과 도전에 대한 열정 단 하나만으로 의기투합했다.
“제멋대로 살아가는 여자,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 당시 40일 동안을 집을 떠나 산행에 나선다는 이야기를 듣고 좋아할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만, 방 시인은 고 최명길 시인, 김영기 산악인, 최종대 만화가와 함께 20kg 배낭 하나를 짊어진 채 젖줄 남대천 둔치에서 출정식을 마치고 백두대간 종주의 첫걸음을 그렇게 내디뎠다.
일행은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에 올라 신신제를 올리고 고 최명길 시인의 백두대간 서시 낭송을 들으며, 그리움 짙은 낮달을 품었다. 이어 노고단을 넘어 성삼재휴게소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 8강전도 보면서 피로에 지친 심을 달랬고, 다시 말머리를 돌려 백두대간 중 유일한 마을인 고기리 마을을 지나 첫 야영의 행복감도 맛봤다. 봉화산에서 능선을 바라보며 황홀경에 빠졌고, 백운산과 영취산을 넘으며 지나온 학창시절을 회상했으며, 덕유산에서는 우중 산행으로 고행길이라는 것을 실감도 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일행은 또 발걸음을 재촉했고, 힘든 중간중간 고 최명길 시인의 시 낭송을 들으며 그렇게 용기를 얻어 화주봉 구간에서 10박을 했다. 당시 고 최명길 시인은 비닐로 움막을 만들어 별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보내 방 시인은 그 풍경을 떠올려 ‘최명길 선생님의 하얀 구름집’으로 불렀다.
‘인연’ 되새기며 ‘인생’ 발걸음 옮겨
어느새 추풍령 고개를 넘어 폐교한 인성분교에 기대어 양양에서 온 친구 현순 씨와 조우하며 다시 힘을 얻어 백두대간길을 나섰다. 4인방은 비로봉과 문수봉, 밤티재를 넘어 늘재에 도착해 수박 파티도 하며 힘겨움을 이겨내고 있었다. 일행의 배낭에는 달리기하는 양양송이 캐릭터가 부착돼 힘들 때면 위안을 얻곤 했다. 18박 구간인 촛대봉에서는 방 시인과 고 최명실 시인이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위급한 상황도 맞았지만, 동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벗어났고, 산행은 계속됐다. 희양산 정상을 오르고 난 뒤 반환점에서 20박을 한 일행은 조령산을 넘어 포암산과 관음재를 통과하면서 ‘행복한 각설이’ 모양으로 또 길을 재촉했다. 황장산을 내려오며 힘이 들어 도반들과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중 정말 우연히도 동우대 산악부 학생들을 만나 다시금 힘을 얻고 ‘인연’을 되새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묘적봉에서 야영한 후 25박은 관동산악회 지원팀들과 함께하며 우리나라의 월드컵 4강 진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일행은 어판장 곰치 늘어지듯 소백산 천문대와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을 지나 박달령으로 내달렸고, 태백산 정상에 올라 아득함을 다시 느끼며 산새와 노루가 지나는 길목에서 30박을 했다. 방 시인은 덕항산을 지나 댓재에서 산행 중 그토록 꿈에 그리던 남편과 아들을 이산가족처럼 상봉하며 눈물을 흘렸고, 일행과 함께 다시 막바지 강행군에 나섰다. 삽당령에서는 주민들이 내어준 온돌방에서 잠시나마 피곤함을 잊었고, 대관령 휴게소와 진고개휴게소를 거치면서 이제 고향, 양양이 손에 잡힐 듯 들어왔다. 구룡령휴게소에서 36박을 한 일행은 조침령과 오색 북암령을 거쳐 시리도록 아린 눈물 속에서 39박을 하면서 설악산 대청봉의 일출을 가슴 깊이 담아냈다. 이제 더 이상 시간도 없고 휴전선이 가로막혀 갈곳도 없다는 생각에 일행은 희운각, 나한봉, 마등령, 저항령, 황철봉을 쏜살같이 지나 마침내 백두대간 일시 종주 40일을 맞아 신성봉, 백두대간령, 마산봉을 거쳐 종착지 최북단 고성군의 진부령에 도달했다. 도상거리 670km, 실제거리 814km의 백두대간을 꿈꾸듯 40일 동안 주파한 일행은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출발 때와는 달리, 다 함께 “백두대간 만세”를 세 번이나 외치며 자신들의 도전을 그렇게 자축했다.
번뇌 내려놓자, “아득함이 행복으로”
저마다의 꿈을 좇아 백두대간을 종주한 4인방은 욕심, 책임, 절실, 그림 등 각자 그동안의 삶에서 내재해오던 번뇌를 내려놓으며, 그제야 아득했던 마음이 ‘인생’이라는 데 공감하며 5년이 지난 2007년 7월 오색 북암령에 다시 모여 당시 종주를 회상하는 기념 산행을 했다. 이어 백두대간 종주 15년 만인 2016년 10월에는 김영기 회장과 방순미 시인이 민간인이 갈 수 없는 향로봉을 운 좋게 올라, 그동안 함께하며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통일되면 우리 모두 꼭 이어서 가보자”라고 했던 고 최명길 시인을 그리워했다.
산행기 갈무리에서 이대의 시인은 “이 책은 자연과 사람에 대한 진솔하고도 아름다운 40여일의 고백”이라며 “바람과 폭염과 비와 배고픔과 갈증을 견디고 마침내 황홀경을 몸으로 읽은 화엄경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승태 여행작가는 “산봉우리 정신으로 걸어온 40일간의 기록은 하루하루 치열했고,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가슴에 내려앉았다”고 평했다. 지난 13일 책이 출간된 후 방순미 시인은 친구 현순 씨가 운영하는 양양시내 싸전 앞 느티나무 식당에서 당시 함께 종주에 나섰던 영원한 벗 김영기 회장과 최종대 작가와 함께 조촐한 출판기념 만남을 갖고 스승인 고 최명길 시인을 그리며 다시 20년 전, 40대로 돌아가 당시를 회상했다.
“아직도 아득한 인생이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만이 삶이고, 20년을 지나 오늘 이렇게 벗과 함께하며 잔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황홀합니다. 남편의 지극한 마음 있어 더 행복합니다.”
산악인자 시인인 저자는 1962년 당진의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란 후 양양으로 시집와 정착했고, 2010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후 <매화꽃 펴야 오것다> <가슴으로 사는 나무> 등 2권의 시집을 펴냈다. 지난 2002년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네팔 히말라야, 중국 황산·태항산 등 6개 봉우리, 티베트 카일라스, 러시아 비단산 등 세계 명산을 두루 등산하기도 했다. 책은 현재 양양 대아서점과 속초 문우당서림에 입고돼 절찬리 판매 중이다.
김주현 기자 joo69523@hanmail.net
고 최명길 시인과 함께 조령산에 올랐던 순간.
방순미 시인이 백두대간 종주를 함께 했던 김영기 산악인과 최종대 작가와 함께 양양시내 느티나무식당에서 발간을 축하하며 고 최명길 시인의 빈자리를 회상하고 있다.
방순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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