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자예프의 《노예냐 자유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이 빠지기 쉬운 온갖 형식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사회와 인간과의 관계에 나타나는 노예성이다.”라고 진단하고, “인간은 ‘사회적 최면상태’ 속에 살고 있으므로 인간이 사회 전체의 요구에 반대하여 자기의 자유를 확립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나는 당신과의 결합, 인격과 인격과의 결합뿐만 아니라, 우리 곧 사회와 결합하고 있다. (…) 우리는 집단적인 주체나 실체가 아니다. 우리는 실존적인 의의를 갖고는 있지만 실존적인 중심은 아니다. 실존적인 중심은 우리와 그, 너와 우리에 대한 관계 속에서 발견된다. 나와 너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 대한 관계야말로 실로 실존적인 사회적 현실의 근원인 것이다.”라고 했다. 소통의 단절을 사회적 관점으로 본다면 ‘인간소외’로 정리할 수 있다. 현대사회가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사회구조 속에 말려들고, 나아가 인간이 만든 제도 및 기계에 봉사하는 가치전도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사회는 기술문명, 조직의 거대화 및 관료제화, 집단관계의 분화 없이는 사실상 존속하기 힘든 사회로 이러한 것들이 인간소외를 촉진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소외와 단절의 삶 속에서 고통스러워하지만 구조적 모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쉽지 않다. 우리 사회는 외형적으로 거대한 조직과 관료주의, 성장, 효율성의 가치가 지배 논리로 작동되어 빠른 속도로 경제적 풍요 등 물량적 규모를 키워왔지만, 사회의 내면에는 개인의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삶의 질이 오히려 피폐해져 불신과 무력감, 상실감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 상호간의 소통이 단절된 사회는 아무리 집단화된 가치와 정치·경제 질서가 강고하더라도 개별인간들의 도덕적·문화적 의식이 파괴되기 때문에 결국 뿌리를 잃고 부패하게 된다. 에리히 프롬은 《건전한 사회》에서 “인간은 정해진 제도와 사회구조 속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는 인간으로 사느냐가 최대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즉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가지며 이 사회에서 얼마나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느냐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의 자아의식은 사랑하고 생각하는 개인으로서의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그의 역할에서 비롯된다. (…) 자기 자신을 자신의 본질로부터 소외된, 사회적 체제에서 어떤 기능을 충족시키고 있는 텅 빈 존재로서 자신을 경험하는 것이다.”라고 하듯이 현대사회의 개인은 각자의 학력·학벌, 능력, 배경 등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며 자신을 그러한 기준에 맞추는 데 온 힘을 다한다. 그는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나는 사무직원입니다”라고 기계가 응답하는 것과 같이 대답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 대한 진정한 소중한 가치는 나에 대한 진정한 본질인 ‘주관적 자아’ 형성에 더 많은 관심과 고민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여지는 자아인 ‘객관적 자아’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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