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758년 발징화상, 정신, 양순 등 31명의 수도승들이 뜻을 모아 한국 최초로 염불만일회를 결성하고 장장 27년 5개월 동안의 긴 염불수행 대장정에 돌입해 마침내 붓다의 극락정토로 승천한 불사의 기적이 발생했던, 한국 불교의 성지 ‘등공대’는, 민통선 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 성결한 지위에 걸맞은 위상을 갖추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2008년부터 건봉사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약하고 있는 최점석(61) 씨는 “‘건봉사 등공대 해탈의 길’을 오르는 이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등공대의 성스러운 기운을 느끼고 불심이 발현된다”며 “이러한 불교의 성지가 하루 속히 성역화가 추진돼 그 신성함에 어울리는 모습을 갖추기를 소원한다”고 말했다.
사람 형상 닮은 ‘유적기념지탑’
건봉사지의 배꼽이자 꽃이라 칭송되는 등공대는, 1960년대 송강저수지 댐이 완공되면서 비로소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상서로운 지형으로 재탄생했다. 이곳에 오르면 동서남북 사방의 산봉우리들은 연꽃잎으로 승화된다. 저 멀리 동해바다의 수평선이 보이는데 송강저수지의 푸른 물은 마치 바다에서 퍼온 듯 맑고 깨끗하다. 연꽃은 꽃도 열매도 구비된 완만한 꽃이다. 이러한 꽃도 물 속 또는 물 밖에서는 피지 못한다. 수면에 떠오를 때라야 비로소 그윽한 향기를 만발하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한 때 사찰의 다비장으로 이용돼 ‘소신대(소신대석탑신축기, 조선불교총보 5호 수록, 1917년 8월, 삼십본산연합사무소 발행)’라 불리기도 했던 이곳에서 다비식이 거행될 때면 연기가 하늘 높이 솟구쳐 용오름 현상을 일으켰는데, 이를 지켜보는 주민들의 가슴엔 불심이 솟아올랐다.
‘삼십일인등공 유적기념지탑’은 멀리서 보면 사람의 형상을 닮았다. 유적기념지탑은 과거 사진 속에는 유골기념지탑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 석탑에는 수십발의 총탄 흔적이 남아있는데, 치열했던 격전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건봉산 전투’ 책자에 따르면, 1951년 4월 20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직전까지 2년간 국군 5, 8, 9사단과 미 10군단 장병들이 북한군 예하 12, 15, 45사단과 건봉산에서 16차례 맹렬한 공방전을 벌였다. 미 10군단이 퇴각하자 국군 5, 8, 9사단과 미 7함대 20여 척의 군함이 거진 앞바다에 정박, 합동작전을 펼쳐 최후의 반격을 가해 마침내, 중국군 1개 사단과 북한군 2개 사단을 건봉산 계곡에 몰아넣어 전멸시켰다. 등공대의 묘적동천에 있던 건봉사의 부속암 극락암도 이 때 소실되었다.
“‘건봉산’, 원래 명칭은 ‘금강산 감로봉’”
고성역사문화연구소 김광섭 소장은 “오랫동안 사료를 연구 검토한 결과 ‘금강산 감로봉’ 산자락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지금의 명칭 ‘건봉산’으로 불리게 됐다”며 “금강산 감로봉이라는 본래의 명칭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소장은 안석경의 동행기를 소개하며 “‘건봉산’은 ‘금강산 감로봉’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덧붙이며 “지자체가 적극 나서줄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안석경의 ‘동행기’는 저자가 1761년 4월 1일부터 원주 언산에서 출발해 그 해 5월 13일까지, 41일간의 금강산 유람을 기록한 기행문으로 건봉사는 4월 27일부터 5월 1일까지 방문했다.
다음은 안석경(安錫儆, 1718~1774)의 동행기(東行記) 내용을 발췌(한글 번역본)한 것이다.
“외수재(外水岾)에서 남쪽으로 간 것이 산이 깊고 험하여 휘고 꺾이어 봉우리가 되고, 언덕이 되고, 고개가 되고, 골짜기가 되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데 감로봉(甘露峰)을 최고로 일컫는 이유는 건봉사를 감싸 안고 있기 때문이다. 감로봉은 건봉사의 주산(主山)이 되는데 그 한 줄기가 나뉘어 북쪽으로 산회하여 왼쪽으로 여러 골짜기의 물을 끼고 고성으로 들어간다. (원문 : 而外水岾之南行者。岪鬱而屈折。爲峰。爲巒。爲嶺。爲壑。不可勝悉。而最甘露峰有稱。以抱乾鳳之寺之故也。峰旣爲乾鳳寺所主。而分一枝。北旋左挾衆壑水。而入高城。遶郡治而赴海。是爲南江。支岡之北之也。可百餘里。其右麓之東。蟠杆城。及於高城者。多包奇賞。)”
“1929년 사진대로 건봉사 복원되길”
건봉사 주지 현담스님은 “‘금강산 감로봉’은 참선도량이며 염불만일회를 최초로 창시해 불사의 기적이 일어난 한국 불교의 성지 ‘금강산 건봉사’를 감싸 안고 있는 산에 가장 적합한 명칭”이라고 말했다. ‘감로(甘露)’는 천상에 있는 신들이 항상 마시는 영묘한 술(또는 약)로 산스크리트어로 아므리따(amṛta), 빨리어로 아마따(amata)를 한역(漢譯)해 불교 문헌에서 단 이슬 즉, 감로라고 했다. 이 술을 마시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고 하여 불사(不死)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붓다의 말씀을 감로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붓다의 말씀이 중생의 몸과 마음을 기르는 묘한 맛을 지녔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의 4대 사찰이었고 31본산의 하나로 명성을 떨쳤으며, 보림암, 봉암암, 극락암, 백화암 등 124칸의 부속암과 642칸 당우가 있었던 가람 건봉사는 6.25전쟁으로 ‘불이문’만을 남긴 채 전소되고 말았다. 전쟁 이후 사찰은 민통선 내에 위치해 4월 초파일에만 한시적으로 민간에 개방돼 오다, 지난 1989년 1월 20일, 35년 만에 자유 출입이 허용됐다. 이후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건봉사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마침내 1994년 대웅전이 복원된 이후 염불도량의 복원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고성의 제1경 금강산 건봉사를 방문한 신실한 불자들은 불사의 기적이 일어났던 불교의 성지 등공대에 올라 기도하고자 갈망했다. 이러한 염원은 2005년이 돼서야 비로소 실현됐다. 한 관광객은 “등공대 해탈의 길을 오르며 청정수행의 마음을 느꼈고, 민통선을 가로지르는 오솔길 양가에 쳐진 철조망을 통과하면서 분단의 애달픈 현실이 가슴 시리고 아프게 다가왔다”며 “통일에 대한 열망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또 “등공대에서 최점석 해설가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 옛날 염불 수행을 하던 고승들과 불자들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듯 하다”고 덧붙였다.
현담 스님은 “불심이 약해진 불자들의 신심이 발현되고 증폭될 수 있는 곳이 바로 등공대”라며 “한국문화유적 불교성지 등공대가 그 지위에 걸맞은 위상을 갖추고 성역화 되어 이곳을 찾는 세계의 많은 불자들과 관광객들에게 그 위대한 성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성군 김용택 과장은 “작년 4월 건봉사지 100만m²에 대한 ‘군사시설 보호구역 해제 요청’ 서류를 제출해 국방부에서 검토 중”이라며 “1929년 사진대로 건봉사 복원이 이루어져 호국 사찰 본산 가람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산 기자 haareezee@hanmail.net
1929년 촬영된 건봉사 모습.
불교성지 등공대 삼십일인등공 유적기념지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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