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베네수엘라에서 8,573명이 동시에 악기를 연주해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저 별난 도전이 아니라 베네수엘라 음악교육재단인 ‘엘 시스테마’의 저력을 보여주는 연주였다. 엘시스테마는 1975년 베네수엘라 빈민가 청소년 11명으로 시작한 오케스트라로 현재는 35만명이 180개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할 정도로 성장했다. 가난과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빈민층의 아이들은 음악을 배우며 꿈을 키웠고, 구스타보 두다멜 같은 세계적 음악가를 키워내기도 했다. 이는 문화예술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강원도교육청에서는 ‘학교로 찾아가는 예술한마당’ 등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도내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전면적인 문화예술교육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공연장, 미술관 등 제반 문화예술 환경에 따라 접근성에 대한 격차가 존재하며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의 문화예술 체험 기회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공연이나 전시 등 직접 찾아가는 활동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방과후학교의 문화예술 활동마저 제약을 받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곧바로 가정의 경제력에 따른 문화·정서적 격차로 이어지면서 우울감을 경험하는 학생들이 급속히 증가하기도 했다. 이에 강원도교육청은 도내 모든 학생에게 공연, 도서 등 문화생활 지원을 위한 ‘슬기로운 문화생활’ 카드를 지급하였다. 한 번의 지원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문화생활로 특정지어 직접 지원하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고 학생과 학부모 반응도 매우 좋다.
‘아이들은 부모를 닮기보다 시대를 닮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존재를 둘러싼 세계는 그 자체로 최고의 교사다. 문화예술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일상이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늘 보고 자란 이웃들을 빵집이나 식당, 미장원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공연장이나, 전시회, 작업실에서도 만나야 한다.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사진 전시회를 여는 미용사, 시를 쓰는 조리사가 우리 이웃이라면 우리 아이들의 정서가 얼마나 부드러워질까? 문화예술 체험은 정서적인 면뿐만 아니라 아이의 모든 면의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문화예술 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면 교육청과 지자체가 함께 지역의 문화 자원을 점검하고 조직하면서 우리 아이들을 당당한 문화주체로 성장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기존의 학교 중심 방과후 문화예술교육은 실기 능력에 중점을 두고 있어 일부 소질이 뛰어난 아이들 말고는 쉽게 포기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문화예술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우리 아이들이 초보적인 문화예술 생산자를 넘어 당당하게 문화를 향유하는 안목 있는 시민비평가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문화예술은 그 시대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문학,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등을 융합해 인간의 ‘시적 감성’을 흔드는 통합적·창의적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한 때다.
마침 춘천, 원주, 강릉 3개 도시는 정부로부터 문화도시로 지정받아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다른 지자체들도 저마다 다양한 사업으로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자원을 학교와 접목해 문화예술교육을 더 깊고 넓게 펼쳐야 한다. 예술교육에 관심이 많은 교사나 문화예술 교과 담당교사가 중간지원조직에 소속되어 학교와 외부기관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체계적으로 수행한다면 문화예술교육은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방과후에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할 수 있도록, 학교 안팎에 문화·예술·체육 동아리 1만 개를 만들고 지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해본다. 동아리마다 지역의 시민 문화예술 전문가를 강사로 연결하고 해마다 자신들이 활동을 전시·발표하는 자리를 만들어 주면 어떨까. 이처럼 문화예술 교육 생태계가 튼튼히 구축되면, 우리 강원의 아이들이 훌륭한 안목을 갖춘 문화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은 물론, 그 중에서 BTS나 세계적인 웹툰작가, 영화·드라마 감독도 탄생하는 것 아닐까.
모든 아이는 특별하고 반짝반짝 빛나야 한다. 강원도 모든 학생이 차별 없이 문화 활동에 참여하고 자신을 빛낼 수 있는 기회를 누려야 한다. 교육과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깊고 풍부한 문화 생태계를 만드는 일, 결코 미룰 수 없는 강원교육의 과업이다.
강삼영
전 강원도교육청 기획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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