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률이 70%를 넘으면 단계적 일상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여러모로 답답한 상태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코로나 확산 방지 대책으로 인해 주요 해맞이 명소가 폐쇄되는 탓에 속초로 귀향 후 매년 이어오던 새해 해맞이 계획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렇다 해도 새해엔 또 다른 희망사항과 계획들로 한 해를 준비해 봐야지 하는 마음가짐이 생긴다.
이런 저런 계획을 가늠해 보다가 2020년 2월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관왕에 올랐던 한국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들이 떠올랐다. 영화 속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 줄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인생이. 그러니까 계획이 없어야해. 그래야 잘못될 일도 없고, 애초부터 계획이 없었으니까 상관없다 이 말이야”
영화 속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비루하고 남루한 처지를 변명하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영화 속 아버지처럼 그렇게 무계획으로 살아온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예전 회사 재직시절에는 연말이 다가올 즈음 새해 마케팅 계획을 세울 때는 반드시 중장기 전략과 단기 계획들을 구분해서 꼼꼼히 기획서를 작성하곤 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란 생각으로 살아온 건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영화 속 또 다른 장면에서는 어려운 가정환경을 탈피하고자 하던 아들이 친구의 도움을 받아 고액과외 자리를 소개받게 되자 서슴지 않고 졸업장을 위조하는 학력위조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이 이어진다. 여기서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정말 많이 인구에 회자되었던 이 영화의 명대사,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가 나온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영화 속 가족들과는 달리 세상에는 본인이 가진 것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단순 조건이나 무언가 하나의 결핍으로 인해 그것을 무마하거나 극복하기 위해 나쁜 짓을 하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다. 또는 이와 반대로 본인이 가진 것을 이용하여 가끔은 그것보다 더한, 더 불공평한 일들을 자행하며 우리가 쉬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일들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계획’을 떠올리면 긍정의 의미와 부정의 의미가 함께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삶에서 계획은 어떤 형태로든 필요한 것이리라. 택시를 탔는데 목적지를 말하지 않으면 제대로 출발할 수 없고, 항구에서 출항한 배가 목적지가 없으면 표류하게 되는 것처럼 이러저러한 각자만의 새해 계획을 세우는 일이 이맘때 해야 할 필수불가결한 일일 것이다.
필자 주변의 친구들이나 지인들 중에는 계획을 충실히 세워서 각 단계별로 하나하나 이뤄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어떤 이에게서는 이미 20대 초반에 벌써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은퇴 후 등 각 단계별로 타임 스케줄을 작성하여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씩 달성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기획력과 실행력을 보면 정말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새해가 되었고 우리는 또다시 각자 한 해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 하루하루를 살게 될 것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준비하고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라는 금언이 떠오르게 되는 요즘이다. 새해에도 코로나로 인해 여전히 힘든 상황이 이어지겠지만 ‘신은 문 하나를 닫으면 어딘가에 또 다른 문을 열어놓고 계신다’는 말을 되뇌며 긍정의 시간들로 가득한 한 해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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