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가 1882년에 그린 《울고 있는 노인》에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흐느끼고 있는 초라한 한 노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이 그림은 당시 자신의 슬픔을 표현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120여 년 전에 그린 그림이지만, 현대 노인의 소외를 상징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듯하다. 현대사회를 소외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주체성과 정체성을 잃고 사회조직과 기술 장치의 부품으로 전락해 버린 현실을 드러낸다. 이런 현실 속에 갇힌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할 때, 사람들은 서로 유대감과 연대 의식을 상실한 채 고립되고 원자화되어 간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를 “현대인의 고독감과 무력감은, 그의 모든 인간관계가 가지는 특성에 의해 훨씬 증대되었다. 개인과 개인과의 구체적인 관계는 직접적이고도 인간적인 특성을 상실했으며, 조작과 편법의 정신을 취하게 되었다. 모든 사회적, 개인적 관계 속에서 시장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다. 경쟁자들 간의 관계는 상호 인간적인 무관심에 근거해야 함은 명백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중 누구든 그의 경제적 과업(서로 싸우고 필요하다면 서로의 실제적인 경제적 파괴도 불사해야 하는)을 완수할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도 이러한 소외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인간은 상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팔며, 자신을 하나의 상품이라고 느낀다. 육체노동자는 그의 육체적 에너지를 팔고, 상인, 의사, 사무원은 그들의 ‘성격’을 판다. 그들이 자신들의 생산품과 서비스를 팔려면, 그들은 어떤 ‘성격’을 가져야만 한다. 이 성격은 호감이 가는 것이어야 하지만, 그 이외에도 다른 많은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는, 그의 특수한 지위가 요구하는 에너지와 독창성과 이러저러한 온갖 것들을 갖춰야만 한다.” 이럴수록 개인은 더욱 고독해지고 고립되었으며, 압도적으로 강한 외부의 힘에 의해 조종되는 도구가 되어간다고 보았다. 이것은 현대인의 삶이 갈수록 소외되어 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합리성은 하나의 신앙처럼 확고하게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이성의 중요성에 대해 “나는 이제부터 진리 탐구를 위해 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모두 버림으로써 전혀 의심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내 생각 속에 남아 있을 수 있는지를 보기로 했다.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진리는 아주 확고부동하기 때문에, (…) 나는 주저 없이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1원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자아가 우주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는 서양의 근대적 자아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세의 몰락과 함께 시작된 르네상스는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와 더불어 신앙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의 이성을 해방시켰다. 신앙의 제약으로부터 풀려난 이성은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통해 과학적 지식의 축적과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리고 과학기술 분야에서 거둔 이성의 눈부신 성과는 근대인들에게 이성에 대한 신뢰와 사회 진보에 대한 낙관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이성을 통해서 무한한 진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근대의 낙관주의는 이성에 기초한 근대화가 다양한 사회문제를 만들어 내면서 힘을 잃게 되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사회는 자신이 만들어 낸 바로 그 힘들을 제어할 수 없는 형편에 처해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 이룩한 생산 조직의 합리성은 사회적 측면의 경우 비합리성을 수반하고 있다. 경제 위기와 실업, 그리고 전쟁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건설하였다. 공장과 집을 세우고, 자동차와 옷을 생산하며, 곡식과 과일을 재배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손으로 생산해낸 산물로부터 소원해졌으며, 실제에 있어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이룩한 세계의 주인이 아닌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소외에 의한 비인간화 현상, 빈부 격차와 이로 인한 계층 갈등, 물질 만능주의와 같은 근대화의 문제점과 무엇보다도 전쟁의 광기 앞에서 이성에 대한 신뢰는 무력하게 무너졌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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