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재발견, 화진포를 다시 찾았다. 오랫동안 쉬었던 산악회를 재출범하면서 비교적 무난한 화진포 응봉에 올랐다. 높이가 해발 122미터에 불과하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다. 등반도 산행도 아니고 산책에 가깝다. 산 정상 가까이 몇 걸음만 조금 숨 가쁠 뿐이다. 그러나 응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대한민국 최고의 절경이다. 천혜의 경관에 모두가 감탄할 때 필자는 가지고간 메가폰을 들고 배낭에서 ‘닥터 홀의 조선회상’을 꺼내 625쪽을 펼쳤다.
“관용을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 군부였는데 원산 해변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약 16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아주 이상적인 장소를 선정하여 선교사들에게 대신 제공하여 주었다. <중략> 새 휴양지는 정면은 바다, 다른 한쪽은 호수, 남쪽은 구릉이었다. 그 구릉에 올라서면 서쪽으로는 호수가 내려다보이고, 동쪽은 바다에 닿는 암벽으로 되어 있다. 일본인들은 이곳을 ‘가신호’라 부르고 조선말로는 ‘화진포(花津浦)’라고 한다. 이 호수는 스위스의 루체른 호수를 연상시켰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남쪽 구릉은 틀림없이 응봉일 것이다.
또 ‘조선회상’ 630쪽에는 ‘화진포의 성’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베버씨와 조선인 청부업자는 자신들의 창작물에 대해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중략> 우리 별장은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조그만 막사가 아니라 그야말로 작은 성이었다. 회색돌로 지은 성은 뒤의 푸른 나무숲과 잘 어울렸다. 라인강 가에 있는 성들의 모양과 다를 바가 없었다. 베버씨는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독일의 성을 온 정성을 다해 재현한 것이었다.”
이렇게 지어지고 명명되었는데 강원도 고성군은 올해 4월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을 ‘김일성 별장’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괄호 안에 병기했던 것을 아예 단독표기로 바꿨다. 그러면서 북한 의복 등 전시물품들이 안방을 차지하고, 원래주인의 기념공간은 이름과 함께 뒷방으로 밀려났다. 한동안은 ‘화진포의 성(셔우드홀 별장, 김일성 별장)으로 표기한 적도 있었다.
이것을 예견 했는지 ‘교수신문’은 “화진포의 성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세워졌다. 중일전쟁을 준비하던 일제가 비행장을 지으려고 원산의 선교사들을 이곳으로 쫓아냈다. 히틀러를 피해 망명 온 독일인 베버(H.Weber)가 선교사였던 셔우드 홀(Sherwood Hall)을 위해 2층짜리 성을 쌓은 것이 바로 화진포의 성이다. 38선이 그어지고 화진포는 북쪽에 포함됐고, 1948년 여름에는 김일성의 가족이 머물렀다. 그로 인해 김일성 별장으로 불린다. 아주 잠시 머물다간 김일성의 이름은 화진포의 성을 점령해 버렸다.(2018년 2월 8일자)”고 했다.
“고성 어디까지 가봤니?”(조선일보 2021년 6월 12일자)는 “건축당시 외국인 휴양촌의 예배당으로 사용됐다”고 전했다. 거룩한 처소가 ‘김일성 별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면 셔우드 홀은 누구인가? 1893년에 한국에서 태어나 결핵퇴치를 위해 복십자마크(☨) 크리스마스 씰(seal)을 처음 도입한 2대째 헌신한 캐나다선교사이다. 1932년 최초 크리스마스 씰에 거북선을 그렸다가 일제에 압수당해 남대문으로 변경했으나 결국 1940년 스파이 누명을 쓰고 강제 추방당했다. 이후 인도에서 정년까지 결핵퇴치에 힘쓰다가 91세로 소천하였고, 유언에 따라 한국에 돌아와 1991년 대한결핵협회 장(葬)으로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었다. 현재 양화진 제1묘역에는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 어머니 로제타 홀, 셔우드 홀의 딸과 여동생 이디스 마거릿, 셔우드 홀, 1991년 9월 19일 별세한 아내 메리언 애텀리 등 홀가(家) 6명이 잠들어 있다. 지극한 조선 사랑이며, 그 흔적이 ‘화진포 성’에 남아있는 것이다.
고성군은 ‘김일성 별장’으로 명칭을 변경하게 된 이유를 관광상품으로 부각시킬 필요성 때문이라고 했다(강원도민일보 2021년 3월 22일자). 그러면 과연 관광객들이 ‘화진포의 성’보다 ‘김일성 별장’의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것일까? 단언하건데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 ‘김일성 별장’도 있지만 무엇보다 산과 바다 호수가 어우러진 화진포의 비경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셔우드 홀이 최초 명명한 ‘화진포의 성’이 최고의 경쟁력이다. 반드시 원래 이름으로 되돌려져야 마땅하다.
최철재
경동대 평생교육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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